20세기에 사회 발전을 주도한 과학기술로는 생명공학과 전자공학이 손꼽힌다. 두 기술은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인간의 능력을 향상 또는 확장시킨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생명공학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몸을 다루는 능력을 향상시킨 반면에 전자공학은 컴퓨터기술을 통해 마음의 능력을 확장시켰다.
21세기에 두 기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휴하여 몸과 마음의 능력을 더욱 증대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두 기술의 융합으로 모습을 드러낸 제3의 기술은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미국의 과학 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이 기술을 ‘바이오닉스’(bionics)라 명명했다. 영어로 생물학과 전자공학을 합쳐 만든 단어다. 바이오닉스는 본디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오랫동안 잊힌 상태로 있다가 부활된 셈이다.
바이오닉스는 생물학의 원리를 적용하여 몸과 마음의 기능을 확장시키는 장치를 만드는 기술이다. 대표적인 보기는 생물체의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장기이다. 인공장기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인체의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개발되고 있다. 인공뼈 인공관절 인공조직은 신체의 기능에 버금갈 정도이며 인공치아나 의수족은 물론이고 인공유방이나 인공성기 역시 완벽한 기능을 보여준다. 인공장기 중에서 생명과 직결된 인공신장과 인공심장은 성능이 계속 보강되고 있다.
인공장기에 의해 인체의 손상된 부위가 대부분 보완되고 있지만 신경계의 보철(補綴)기술은 초보단계에 머물고 있다. 신경계의 정점인 뇌의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보철의 목표는 신경계의 결손 부위를 대체하는 전자장치를 개발하는 것이다. 신경계의 활동을 인위적으로 제어함으로써 손상된 감각이나 운동 기능을 복구 또는 보완하는 장치를 말한다. 인공눈과 인공귀, 마비된 근육 자극장치, 심장박동조절기 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분야는 감각에 관련된 신경보철이다. 감각신경보철의 핵심 연구분야는 시각 및 청각장애이다.
시각장애는 뇌의 시각피질이나 눈의 망막에 이상이 있을 때 발생한다. 맹인의 80%는 시각피질, 나머지 20%는 망막의 수용기가 손상돼 있다. 시각피질에 이상이 있는 장님은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시각피질에 수백개의 미세전극을 이식하여 전기적 자극을 가함으로써 이미지를 지각하게 한다. 온전한 시신경을 갖고 있지만 망막의 수용기가 손상된 맹인은 인공망막을 이식하면 시각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인공망막 이식하면 맹인도 시각 회복 가능성
한편 청각장애는 대부분 와우각(蝸牛殼)에 있는 유모(有毛)세포의 결손에서 비롯된다. 남자의 경우 65세가 되면 출생 당시 유모세포의 40% 가량이 소멸된다. 노인들이 보청기를 끼는 까닭이다. 그러나 청각장애를 근복적으로 치유하려면 와우각 이식이 필요하다. 청각장애자는 유모세포가 없더라도 청신경은 대개 살아 있으므로 인공 와우각으로 청신경을 자극하면 뇌가 소리를 듣게 된다.
망막 이식이나 와우각 이식은 뇌 이식(brain implant)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뇌의 특정 부위에 미세전극이나 반도체 칩을 심은 뒤에 할 수 있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령 성욕을 관장하는 부위라면 하루 종일 단추를 눌러 오르가슴을 만끽한다. 플러그로 다른 사람의 뇌와 연결하면 신속하게 생각을 주고 받을 수 있다.
바이오닉스에서는 뇌 이식과 함께 머리 이식(head transplant)을 꿈꾼다. 심장이나 콩팥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교체하듯이 머리를 통째로 바꾸어 보자는 아이디어다. 물론 뇌가 함께 바뀌는 것이다. 어디 뇌뿐이겠는가. 뇌에 담긴 마음이 고스란히 남의 몸으로 옮겨진다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진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