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을 보다 보면 작품 자체보다 ‘이런 걸 생각해낸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눈이 아프게 함 진(22)의 작품들을 들여다 보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마른 멸치 머리에 번데기로 몸통을 붙이고 또다른 멸치들에는 반짝이는 사슴뿔과 다리를 붙여 ‘네 발 달린 짐승’을 만들었다. 작품 제목은 ‘멸치와 번데기의 전쟁’. 또 다른 작품 ‘똥이 되는 풍경’은 1cm 남짓한 세개의 인형에서 팔 하나씩이 나와 하나는 변기통이 되고, 또다른 하나에는 휴지가 달려 있으며, 또다른 손은 똥이 돼 가위바위보 하듯 모여 있다. 이 모든 풍경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돋보기를 들이대야 겨우 보인다. 도대체 이처럼 편집증으로 가득한 세계를 만들어낸 작가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작가 함 진의 첫번째 개인전 ‘공상일기’는 인사동 찻집에서 전시 공간으로 바뀐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의 창작지원금을 받은 첫번째 전시다. 작가는 배관이 그대로 드러난 거친 콘크리트 벽 구멍들에 제각각 다른 이야기들을 불어넣어 약 4000개의 작품을 전시했다.
‘마이크로한 세계’에 대한 관심은 그의 어린시절과 관련이 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던 아이는 찰흙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때로 외로운 혹성이기도 하고 참혹한 전쟁터이기도 했나보다. 지금도 함 진의 작품에는 꼬치에 끼워지거나 크리스마스 트리에 찔려 ‘찔끔’ 피를 흘리는 형상들이 나타난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작은 ‘작업’을 하잖아요. 소꿉장난을 하거나 모래성을 쌓고 전쟁놀이를 하는 거지요. 저는 나이 들어 그걸 다시 시작한 셈이죠.”
“초등학교 때까진 거의 자폐증에 걸린 아이처럼 지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싸움질 잘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였다는 그는 대학에 입학한 뒤 비로소 ‘조그마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매달릴 수 있게 됐다.
‘겨우’ 대학 4학년생인 함 진이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올해 한국문예진흥원이 기획한 ‘99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에 초청되던 즈음이다. 그는 상상력의 자유로움에서 단연 돋보였다. 발랄한 아이디어로 보는 순간 시선을 끄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그의 꼬물꼬물한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상당한 수고를 요구하면서 작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제공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작은’ 작업들을 하는 작가들은 간혹 있다. 그러나 그런 작가들 대부분이 작은 오브제들을 대규모로 설치함으로써 온전한 의미를 전달하는 데 비해 함 진은 그 만화 같은 ‘장면’ 하나로 완결된 세계를 이루기 때문에 관객들이 끼여들 틈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인스턴트 식품을 먹듯 빨리 완성된다.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굳어가는 본드에서 재빨리 ‘실’을 뽑아 낸다든지 촛농 덩어리를 살짝 불에 굽는 등 물질의 성질을 가지고 놀다 생기는 ‘우연’한 형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시장에서조차 잘 보이지 않는 그의 작품들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배고픈 배짱이’로 살아가야 하는 예술가의 곤혹스러움과 미안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이 시대에 예술가란 있는 듯 없는 듯 벽에 납작하게 붙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나마 발에 밟혀 부서지기 십상이긴 하지만. 11월19일까지, 문의 02-733-0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