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국민회의 이만섭총재권한대행은 자신이 권한대행으로 임명되자마자 정부 세종로 청사로 김종필총리를 찾아갔다. 환한 웃음으로 이대행을 맞이한 김총리는 지난 64년 자신의 외유를 회고하며 “그때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표현을 (신문에) 처음 쓴 사람이 (당시 기자였던) 이대행이었다”고 덕담을 건넸다. 그러자 이대행 역시 “김총리가 1차 외유를 떠날 때 같이 가자고 한 적도 있다”며 김총리와의 친밀함을 강조했다. 정치부 기자와 정치인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어찌 보면 한 번도 김총리를 찾아가지 않은 전임 김영배대행과 달리 이대행이 김총리를 찾아간 것도 정치부 기자 출신다운 순발력일지도 모르겠다.
이 일화에도 나타나듯 이만섭대행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와 주미-주일특파원을 거쳐 31세의 나이에 공화당 전국구로 정계에 진출했다. 이처럼 취재를 하는 기자에서 취재를 ‘당하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람들은 15대 국회의원 중에도 전국구를 포함해 33명이나 된다. 전체 299명 중 11%로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당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민회의: 손세일 임채정 김진배 장성원(이상 동아일보) 박범진(조선일보) 이영일(동양통신) 정동채(합동통신) 조세형(한국일보) 정동영(MBC) 이협(중앙일보)
△자민련: 이긍규(신아일보) 이동복(한국일보)
△한나라당: 이부영 이경재 김형오 강성재(이상 동아일보) 김윤환 서청원(이상 조선일보) 김철(동아일보-조선일보) 안택수 김종하 박원홍(이상 한국일보) 박성범 이윤성(이상 KBS) 하순봉(MBC) 맹형규(연합통신-SBS) 신상우(부산일보) 신경식(대한일보) 강삼재(경남신문) 강용식(TBC) 김중위(사상계)
△무소속: 홍사덕(중앙일보) 이웅희(동아일보)
이들 중 상당수가 정치부 기자를 거쳤으며 정치부장 출신도 적지 않다. 이긍규의원은 한국기자협회장을 5회 연임하기도 했다. 이들 대부분이 취재 활동을 통해 맺은 관계를 발판삼아 정치권에 진출했다. 특히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역대 정치권의 단골 영입 대상이었다. 3공화국과 유신 시절까지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상당수가 정치권으로 진출한 반면, 5공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그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3공화국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언론계에 남아 있는 인사를 찾기 어려울 정도. 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서울신문 사장과 문공부 장관을 지낸 이진희씨를 필두로 유혁인 이웅희 최영철 박경석(이상 동아일보) 임삼(한국일보) 정재호 정남 윤상철(이상 경향신문) 김용태 이종식(이상 조선일보) 선우연 이자헌(이상 서울신문) 문태갑(동양통신) 권숙정 김준환(이상 대한일보) 등 20여명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이들 중 이종식 이진희 임삼 최영철 정재호 문태갑씨 등은 유정회 1기였다. 사실상 각사에서 한명씩 선발한 셈이다.
이들 중 71년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진출한 유혁인씨(전 공보처장관)는 80년까지 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자신의 동아일보 동료 후배들인 유경현(전 의원) 황선필(전 MBC사장) 최재욱(전 환경부장관) 이종률(전 의원) 이상하(전 의원) 등이 정계로 진출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를 하던 중 곧바로 청와대나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긴 예도 적지 않다. 5공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 중에서는 한나라당 하순봉사무총장이 대표적인 예. 하총장은 MBC 정치부 차장으로 청와대를 출입하던 중 민정당에 들어가 총리비서실장과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을 거쳐 현재는 이회창총재의 측근 인사가 되었다. 현 정부에서는 김현섭 청와대정무기획비서관이 대표적인 경우. 김비서관은 경향신문기자로 청와대를 출입하던 중 청와대로 직행, 사내에 적지 않은 파문을 남겼다.
정당 쪽에는 국민회의에 김원기상임고문 김충근총재대행특보(이상 동아일보)와 김재일부대변인(시사저널)등이 있다. 자민련에는 심양섭(조선일보) 김창영부대변인(코리아타임스), 한나라당에는 윤여준여의도연구소장(경향신문) 고흥길(중앙일보) 이원창총재특보(경향신문) 구범회부대변인(연합통신)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모두 내년 총선출마를 기대하고 있다. 관계에도 언론계 출신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우선 청와대의 경우 △공보비서실에 박준영 공보수석(중앙일보), 김대곤 국내언론(동아일보), 박정호 해외언론(서울신문), 김성진 보도지원(국민일보), 고도원 연설담당비서관(중앙일보) △정무비서실에 서형래 정무1비서관(문화일보) △정책기획비서실에 이병완 국정홍보조사비서관(한국일보) △교육문화비서실에 조은희 문화관광비서관(경향신문)이 있다.
이처럼 현 정부의 청와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언론인 출신이 많은데, 이는 김대통령의 성향과도 무관치 않은 듯하다. 40명 비서관 중에서 9명(22.5%)이 언론인 출신으로, 김영삼정부 47명 비서관 중 3명에 비하면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또한 행정관만 하더라도 공보비서실에 김기만(동아일보), 정무비서실에 김현종(중앙일보), 정무기획비서실에 최진씨(시사저널) 등이 있다. 현 정부와 언론탄압시비를 하고 있는 중앙일보 출신이 청와대에 가장 많이 진출한 것이 이채롭다.
국정홍보처에는 정보사테러사건으로 유명한 오홍근처장(중앙일보)과 이규석차장(동아일보) 유종필분석국장(한겨레신문) 등이 있다. 서울시에는 박병석정무부시장(중앙일보)이 있다. 국정원에는 황재홍공보보좌관(동아일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