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두고 집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견적을 내러 다니고 알 수 없는 건축용어들과 온갖 자재를 보는 일도 고역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시련은 공사를 위해 짐을 정리하는 거였다. 웬만한 가구와 가전제품은 다 폐기처분하기로 했다. 살림이 비교적 단출해 다른 짐은 큰 걱정이 아니었다. 걱정은 오직 하나, 1만 장 넘는 콤팩트디스크(CD). 듣지 않을 음반은 때때로 버려왔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이사할 때마다 전보다 훌쩍 늘어나 있곤 했다. 그리고 나는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1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상자를 수십 개 구한다.
2 며칠에 걸쳐 CD를 알파벳이나 가나다 혹은 히라가나 순으로 상자에 담는다.
3 이사를 한다.
4 몇 시간에 걸쳐 CD를 다시 장에 꽂는다.
5 몇 주에 걸쳐 알파벳이나 가나다 혹은 히라가나 순으로 다시 꼼꼼히 정리한다.
한 10년 동안 이 짓을 할 때마다 마치 피트니스클럽에서 개인 레슨이라도 받은 것처럼 팔과 등, 하체 근육이 욱신거리곤 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건 덤이다. 그나마 예전에는 이게 다 재산이라며 스스로에게 희망고문이라도 시전할 수 있었다. 스트리밍이 대세가 된 지금은 그런 희망고문도 안 먹힌다. 짐이자 업보다.
때 이른 폭염으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다시 이 과정을 거쳤다. 상자를 모으고 CD를 포장했다. 여느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왜였을까. 이 짓의 부질없음을 깨달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음악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디오를 먼저 포장해버린 것이다. 그 흔한 블루투스 스피커도 챙기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음량에 만족해야 했다. 일이 끝난 후 녹초가 돼 여자친구 집으로 갔다. 찬물로 샤워를 마치자마자 음악을 틀었다. 캐나다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의 신곡이었다. 요 근래 들은 음악 가운데 이렇게 꿀맛이 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잠수 후 들이켜는 산소와도 같은 맛이었다.
음악 없이 시시포스적 행위를 하다 음악과 재회한 순간, 5년 전 여름을 떠올렸다. 2012년 8월 27일 밤 나는 제주에 있었다. 태풍 볼라벤이 북상해 한국을 강타한 바로 그 밤이었다. 글 쓰는 사람에겐 좋은 경험이라고 허세를 떨며 부둣가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우산이 뒤집혔고 우비도 산산조각이 났다. 조금만 더 가면 글을 쓰기 위한 경험은커녕 사망 체험을 할 것 같아 바로 들어왔다. 과연 자연의 힘은 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숙소 지붕이 뜯겨나가고 사람 몸뚱이만 한 바위가 도로로 날아들었으니 전기는 물론, 각종 시설 또한 무사할 리 없었다. 아침이 되자 통신도 끊겼다. 숙소 거실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의 눈빛은 불안했고 호흡은 무거웠다. 완전한 고립이 주는 두려움의 공기 비슷한 것이 공간을 채웠다.
뭘 할 수 있을까 하다 전기가 끊기기 전까지 충전해뒀던 블루투스 스피커 생각이 났다. 휴대전화 배터리도 충분했다. 휴대전화와 스피커를 연결했다. 그땐 다행히 스트리밍 서비스를 쓰기 전인지라, 휴대전화에 꽤 많은 음악이 저장돼 있었다. 음악을 틀었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경쾌한 전주에 이어 김광석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고막을 타고 몸속으로 흘렀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 순간 누그러지던 중압감을. 생기가 돌아오던 눈빛을. 비로소 활기를 찾던 호흡을. 그 순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냉장고 속 음식을 모두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그나마 잦아든 바람을 뚫고 슈퍼마켓으로 가 막걸리도 잔뜩 사 왔다.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은 그렇게 아침부터 술판을 벌였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낮 내내 취했다. 불안을 깨고 태풍을 특별한 경험으로 만드는 물꼬를 튼 것 역시 음악이었다. 공기처럼 당연히 존재하게 된 음악, 끊길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