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게를 처음 먹은 것은 전남 목포를 출발해 흑산도로 향하는 배에서다. 열한 살이던 나는 그때까지 아빠가 입에 넣어주는 것은 뭐든 먹고 보는 아이였다. 떡볶이로 시작해 소의 생간, 등골, 선지, 천엽은 물론 군소, 개불, 산낙지까지 거리낌 없이 먹어치웠다. 성게도 마찬가지였다. 뾰족뾰족 밤송이같이 생긴 바다 생물을 반 갈라 작은 숟가락으로 떠주는데 감귤맛 아이스크림처럼 보였다.
한입 먹었을 때 그 찡한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이 찔끔 감긴다. 비릿한 향, 뭉글뭉글한 감촉, 농후한 맛이 났다. 낯설고 기묘한 것이었지만 삼키고 보니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먹는 성게는 보라성게, 분홍성게, 말똥성게, 북쪽말똥성게 등이다. 종류에 따라 생김새와 맛, 색, 제철이 조금씩 다르다. 성게는 영어 이름이 ‘sea urchin’으로, ‘바다의 부랑아’라는 의미다. 온갖 해조류를 마구 먹어치워서 붙은 이름인가 싶은데, 그 왕성한 식욕 덕에 우리가 성게를 풍족하게 맛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해녀에게 폭식가 성게는 포획 대상 1순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성게 부위는 ‘알’이 아니라 생식소다. 암성게의 난소, 수성게의 정소다. 성게는 5월부터 가을까지 산란한다. 그래서 여름에 속이 꽉 차고 영양가가 높으며 맛도 좋다. 제주 성게는 장마철부터 수확량이 늘어난다. 싱싱한 성게는 바로 손질해 간하지 않고 그대로 먹어도 맛있다. 옅은 바다 내음을 품은 향기로운 꽃이 입안에서 녹는 것 같다. 물회에도 반 숟가락만 넣으면 신선한 허브를 더한 듯 향이 좋아진다. 싱싱한 성게를 뜨거운 쌀밥에 올리고 참기름만 살짝 둘러 비벼 먹는 맛은 단연 최고다. 여기에 오이, 양배추, 상추, 김 등을 넣으면 아삭아삭함과 고소함이 더해진다.
성게는 냉국으로도 먹는다. 끓는 물에 성게를 살짝 데쳐 건져 두고 국물은 차게 식힌다. 미역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 식혀 둔 국물에 성게와 함께 넣고 국간장으로 간해 훌훌 마신다. 가볍게 익어 순두부처럼 몽글몽글 뭉친 성게가 입안에서 툭툭 터진다. 비슷한 재료를 활용해 뜨끈하게 끓여 내는 성게미역국의 시원하고 진한 맛은 또 다른 매력이다.
제주에서는 성게를 소금에 살짝 절여 하루 이틀 정도 숙성시켜 먹는다. ‘구살젓’이라 부르는데, 어차피 오래 보관할 수는 없어 그때그때 담가 먹는 별미다. 소금 양을 늘리고 설탕과 술 종류를 넣어 더 오래 숙성시켜 먹는 성게젓도 있다. 성게젓은 반찬으로 먹거나 김, 미역, 생선회 등과 함께 술안주로 즐긴다. 이 밖에도 성게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죽, 밥, 국수, 초밥, 샐러드, 파스타 등 무궁무진하다.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성게를 못 말리게 좋아했다고 한다. 이 취향은 ‘껍데기를 부숴야만 꿈과 기억이라는 불가시적 실체에 다다를 수 있다. 이것이 달리의 초현실주의 미학’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 맛, 성게와 무척 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