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의 문화사
스파이크 버클로 지음/ 이영기 옮김/ 컬처룩/ 448쪽/ 2만2000원
브라질(brazil)은 무엇일까. 국가 이름이라고 답했다면 절반만 맞은 것이다. 원래는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소목(蘇木)에서 추출한 붉은 염료를 가리킨다. 유럽은 동양에서 이 나무를 수입해 붉은색을 추출했다. 이후 남미로 진출해 식민지로 삼았을 때 같은 나무가 발견됐고, 그 지역을 브라질이라고 불렀다.
다음은 영어 실력 테스트. red line은 금지선, red lights는 장애물에 직면했다는 뜻이라는 건 다 알 테니 패스. 그럼 red tape는? 영어 공부를 좀 한 사람이라면 형식적 관료주의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테다. 과거 영국에서 공문서를 붉은 끈으로 묶은 것에서 유래했다.
난도를 좀 높이면 red handed, paint the town red, red mist 등이 있다. 각각 현행범, 술집을 돌며 흥청망청 놀다,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뜻이다. 기자가 처음 들어본 것으로는 red herring(붉은 청어)이 있다. 전혀 짐작이 안 되는 이 관용구는 잘못된 결론을 유도하거나 논리상 오류에 빠지게 만든다는 의미란다. 청어를 훈제하면 빨간색이 되는데 그때 지독한 냄새가 나 사냥개가 이 냄새를 맡으면 혼란을 일으켜 사냥을 못 하게 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 책은 이렇게 ‘빨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신화, 종교, 언어학, 고고학, 인류학, 미술 등을 통해 세밀하게 전해주는 ‘빨강의 풍경화’ 같다.
빨 강의 역사를 추적하다 보면 의외의 사실을 많이 만난다. 예를 들면 자연에서 얻던 빨간색 염료를 19세기 들어 화학기술의 발전 덕에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중 독일 염료 개발자와 상인이 합작해 만든 기업이 ‘알리자린’이란 붉은 염료를 개발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기 시작했다. 1874년 노동자 64명이 이 기업에서 일했는데 1913년엔 그 수가 1만 명에 달했다.
이 기업은 우리가 잘 아는 바이엘이다. 화학업체 바스프도 이때 염료업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이들은 알리자린 레드 등을 대량생산하는 시스템과 새로운 거래 질서를 만들었다. 빨간색 염료가 오늘날 거대한 다국적 제약회사와 화학회사를 탄생시킨 기폭제가 된 것이다.
문화적으로 보면 빨강은 야누스적인 색깔이다. 아니, 정말 다양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메두사와 같다고나 할까.
오래전부터 빨강은 고귀한 색이어서 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깐다는 것은 그만큼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붉은 장미는 사랑을 고백할 때 쓰이고, ‘I ♥ YOU’의 하트는 늘 빨간색이다.
반면 홍위병, 빨갱이란 단어에는 증오와 반감이 서려 있다. 악마의 트레이드마크 색도 빨강이다. 또 성욕을 상징하기도 한다. 홍등가라는 표현이나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의 ‘물랭루즈’도 빨강과 연관돼 있다.
에르빈 바르트 폰 베른알프는 ‘색을 위한 투쟁’(1937)에서 “빨강은 생명과 사랑, 그리고 열정의 색이다. 빨강은 생명을 이루는 두 요소-활활 타오르는 태양과 불의 열기-를 가진 색”이라고 주장했다. 선사시대에 그린 동굴벽화에서 소는 대부분 빨간색이고, 전 세계 국기의 80%는 빨간색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빨강은 그 어느 색보다 인류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박물관 산하 해밀턴커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수많은 자료를 인용해 책을 썼지만 머리 싸매고 읽을 필요 없이 빨강의 모든 것이 쏙 들어오도록 잘 정리했다. 비록 아시아에서 붉은색이 갖는 의미를 거의 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빨강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성경의 노래(전 6권)
김영진 지음/ 김천정 그림 / 성서원/ 479쪽/ 2만5000원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성경의 1189장 각 장마다 시를 짓고 찬송가로 만들었다. 20여 년에 걸친 노작으로, 저자는 1998년 ‘성경 말씀으로 시를 지어 즐거이 주를 노래하자’는 시편 95장 2절을 읽고 작업을 시작했다. 성경 모든 장을 4연 4행의 시로 바꿨으며 200자의 해설 메시지, 300자의 시작 노트를 덧붙였다. 오소운 목사가 시를 개작한 후 곡을 붙여 찬송가로 만들었고 김천정 화백이 일러스트로 표현했다.
경제와 민주주의의 하모니
이홍규 지음/ 소담출판사/ 416쪽/ 1만6000원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건 나라가 정말 위기에 서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저자가 서문에 쓴 말이다. 1975년 행정고시 합격 후 통상 및 산업 전문 관료로 일하고 현재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인 저자는 지난 1년간 ‘국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고 한다. ‘과거의 빛은 사라져 캄캄한데 새로운 빛은 켜지지 않은’ 듯 보이는 지금, 우리 경제를 다시 달리게 하려면 ‘좋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불량 변호사
존 그리샴 지음/ 강동혁 옮김/ 문학수첩 / 552쪽/ 1만4000원
1989년 첫 장편 ‘타임 투 킬’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3억 권 넘는 소설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가 새로운 법정 스릴러를 들고 돌아왔다. 사기, 납치, 유괴, 탈옥, 살인 등 어떤 변호사도 맡지 않으려고 하는 5대 사건을 맡은 괴짜 변호사 서배스천 러드가 주인공. 러드는 결백한 의뢰인을 위해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는 ‘정의의 변호사’다. 러드를 통해 법의 사각지대에 몰린 피의자를 짓밟는 사법제도의 어두운 면을 고발한다.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
오쓰카 에이지 지음/ 선정우 옮김/ 북바이북/ 312쪽/ 1만6000원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와 애니메이션 감독의 작품이 왜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는지 분석했다. 저자는 이들이 ‘스타워즈’처럼 ‘출발-통과의례-귀환’이라는 영웅신화 구조를 충실히 따라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야기 구조를 따랐다고 베낀 것은 아니며 작가의 창작성에 따라 얼마든지 독창적인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서에는 없지만 최근 출간된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저자의 서평도 담겨 있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