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7

2021.07.09

中, 2049년 ‘세계 최강국’ 선언… 100년 굴욕 끝 富强의 꿈

[조경란의 21세기 중국] 공산당 붕괴, 희망일 뿐 … 新냉전 전략 짤 때

  •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입력2021-07-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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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 [뉴시스]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 [뉴시스]

    미국과 중국의 ‘신(新)냉전’은 짧으면 50년, 길면 100년은 이어질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체제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 샤오캉(小康) 목표를 이뤘고 2049년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21세기 ‘새로운 중국’ 만들기 전략은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시진핑에 이르는 세계 패권을 향한 대장정이다.

    ‘정신승리법’으로 중국 봐선 안 돼

    한국은 가까운 미래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국의 최종 목표는 천하질서 속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회복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대부분 중국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자칫 대문호 루쉰(魯迅)이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꼬집은 ‘정신승리법’으로 흐를 수 있다.

    우선 현재 중국이 만들고자 하는 미래 중국 모습에 주목해야 한다. ‘희망사항(wishful thinking)’이 아닌 ‘현실적 사고(realistic thinking)’로 중국을 바라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 정치체제는 서방의 바람과 달리 서구식 민주주의로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 ‘민주화’를 기대하는 이들은 중국공산당이 단기간에 무너질 것이라고 희망한다. 즉 중국이 소련처럼 되리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중국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중국이 서구 민주주의 길로 간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공산당이 내부 합의로 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 결정하는 것, 둘째, 공산당 체제가 내부에서 붕괴하는 것이다. 현재로선 두 시나리오 모두 현실성이 낮다. 첫번째 전망을 살펴보자. 현재 중국공산당은 자국의 정치체제가 서방보다 우월하다고 자부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식 정치 모델에 대한 확신은 더 강화됐다. 시진핑의 책사로 알려진 정융녠(鄭永年) 홍콩중문대 선전캠퍼스 교수는 중국 정치 시스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감을 드러냈다.

    6월 28일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공연 ‘위대한 여정(偉大征程)’. [뉴시스]

    6월 28일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공연 ‘위대한 여정(偉大征程)’. [뉴시스]

    “서방 정치경제학의 발전 과정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 과정이고, 이 과정은 지금까지도 서방 사회의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는 서방 경제발전의 근원이기도 하고, 사회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반면 동방, 특히 중국은 원래 경제활동이 정부 책임의 내재적 부분으로 정의된다. 정부는 경제발전을 추동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삼고 있으며, 동시에 이로부터 정권통치의 합법성을 획득했다.”



    캐나다 출신 중국학자 대니얼 A. 벨 산동대 교수도 “중국의 현능주의(賢能主義·meritocracy) 시스템은 지난 30년간 중국 경제를 성공시킨 열쇠다. 이 성공이야말로 중국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해준다”고 짚었다.

    두 번째 공산당 체제 붕괴 시나리오는 어떨까. 과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할 때 그나마 시민사회 세력이 국가 혼란을 타개했다. 현재 중국엔 공산당을 대신할 이렇다 할 대안 세력이 없다. 공산당 질서가 무너질 가능성도 낮거니와, 체제 붕괴는 민주주의 수립이 아닌 대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중국 사회가 부정부패, 빈부격차 문제에 시달려도 조국을 G2 반열에 올린 공산당을 향한 인민의 지지율은 90%가 넘는다. 외부에서 중국 인민을 향해 “뭘 모른다”고 손가락질 할 수만은 없다. 이 또한 민심이기 때문이다.

    열강 침략에 민족적 치욕감

    중국의 국가 발전을 끌어가는 원동력은 뭘까. 아편전쟁으로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열강 침략 때 받은 민족적 치욕감이다. 그 탓에 지난 한 세기 부강(富强)은 중국, 중국인의 지상 목표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위정자와 청년 지식인은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접하면서 부강을 중국이 나아갈 길로 삼았다. 스펜서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인간 사회에 적용해 풀이한 인물이다. 자본주의가 눈부시게 발전하던 19세기 미국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 사유재산을 가진 개인 간 경쟁을 합리화하는 데 그의 이론은 유용했다.

    중국에 사회진화론을 소개한 옌푸(嚴復). [위키피디아]

    중국에 사회진화론을 소개한 옌푸(嚴復). [위키피디아]

    베이징대 초대 총장을 지낸 사상가 옌푸(嚴復)는 1877~1879년 영국 유학 시절 접한 스펜서의 이론을 중국에 소개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개인 간 경쟁을 중시한 스펜서와 달리 사회진화론을 국가 간 경쟁에 대입하자는 것이었다. 옌푸가 중국 사회에 던진 핵심 메시지는 “중국은 더는 세계 중심이 아닌 일개 국가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청일전쟁 패배의 충격 속에서 사회진화론 메시지는 중국 사회를 강타했다. 다른 국가와 경쟁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강박은 중국의 국가 전략이 됐다. 필자는 부강 패러다임이 20세기 중국을 지배했다고 본다. 1949년 공산당이 통일한 후에도 중국을 사로잡은 것은 마르크스주의라기보다 사회진화론이었다. 대약진운동 시기 ‘15년 안에 영국을 따라잡는다’는 슬로건은 위정자와 인민 저변에 흐르던 부강 논리를 잘 보여준다.

    중국 경제의 개혁·개방도 부강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92년 덩샤오핑은 남순강화(南巡講話: 우한·선전·상하이 등 중국 남부를 시찰하고 경제개혁·개방정책을 재천명)로 자본주의 경제체제 도입을 가속화했다. 1989년 텐안먼사태 때 민중 저항에 놀란 공산당 원로들은 사회주의 질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덩샤오핑은 중국의 부강을 이루기 위해 개혁·개방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봤다. 이후 중국 경제는 간단없이 발전했다.

    중국의 미래 구상은 부강을 토대로 중국 고유의 역사와 사상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와 사상은 무엇인가. 강대한 다민족국가다. 마이클 필스버리 미국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 소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토의 완정성’이다. 청말 캉유웨이(康有爲)가 주장한 ‘보전 중국’과 일맥상통한다. 중국사는 혼란스러운 분열과 이를 잠재운 평화로서 통일이 반복됐다. 그만큼 통일은 중국 인민의 염원이자 위정자의 급선무다.

    국제 정세 판단 시 定義 있어야 선진국

    통일을 이루려면 안팎의 적을 제압하고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세워야 한다. 중국 역사와 사상에서 중요한 개념인 ‘천하질서’다. 시진핑 정권은 ‘중국몽(中國夢)’과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양대 프로젝트 삼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중국 지식인들은 이를 천하질서의 새로운 형태로 정의한다. 요수쥔(尤淑君) 저장대 교수는 “전통적 천하질서는 더는 그대로 존재하지 않아도 지금의 중국 정치문화, 특히 외교정책 속에 여전히 강력하게 살아 있다”고 짚었다. 중국사 분야 석학 거자오광(葛兆光) 푸단대 석좌교수도 “중국 정치의 전통은 대내적으로 일통 관념, 대외적으로는 천하 관념이다. 이 같은 전통적 국가체제가 현 정치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7월 3일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여러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다만 선진국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국제 정세를 명확히 읽고 판단할 자국만의 정의(定義: 의미 규정)가 있는지 여부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려면 적어도 100년 동안 자국이 어떤 국제질서를 꾸려나갈지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은 이웃한 중국의 급부상을 ‘지금, 여기서’ 목도하고 있다. 적어도 중국의 생각과 전략이 무엇인지 내다봐야 한다. ‘선진국’ 대한민국에 이렇다 할 ‘중국 싱크탱크’ 한 곳 없어서야 되겠는가. 중국을 알아야 중국과 공존한다.

    조경란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회 위원. 중국현대사상 · 동아시아 사상 전공. 홍콩중문대 방문학자 · 베이징대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초빙교수 역임. 저서로는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 신좌파·자유주의 · 신유가’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 전통 · 근대 · 혁명으로 본 라이벌 사상가’ ‘국가, 유학, 지식인 :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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