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나치당은 합법적 과정을 통해 정권을 잡았다고 주장하고자 ‘권력 장악’이라는 말보다 ‘권력 인수’라는 말을 썼다. 나치는 사악한 행위에 상냥한 이름을 붙여 겉보기에 그럴싸하게 위장했다. ‘전쟁 준비’를 ‘평화 확보’로 바꿔 불렀다. ‘시민(Bu‥rger)’ 대신 ‘국민 동지(Volksgenossen)’라는 말을 새로 만들어 국민을 대접(?)했다. ‘오스트리아 점령’을 ‘제국의 품으로’(하임 인스 라이히: Heim ins Reich=Back Home to the Reich)로 바꿔 불렀다. 나치 수용소에서 사망자가 만(萬) 단위로 집계되는 가운데 희생자는 오직 통계상 숫자로만 존재했다. ‘가스실 살인’을 ‘특별대우’로, ‘유대인 절멸’을 ‘유대인 철수’로, ‘절멸 계획’을 ‘최종 해결책’으로, ‘죽음 캠프(death camp)’를 ‘집결 캠프(concentration camp)’로 바꿔 말했다.
여우가 새색시로 둔갑하는 것과 같은 얄미운 어법을 ‘정치 언어(doublespeak)’라고 한다. 조지 오웰은 ‘정치와 영어’(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1946)라는 글에서 “정치 언어는 거짓말을 참말로 들리게 하고, 살인을 훌륭한 일로 둔갑시키며, 기체인 바람을 고체로 보이도록 고안된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이나 북한은 최고지도자를 일컬을 때 ‘대통령(great commander)’ 대신 ‘president(사회자)’에 부합하는 ‘주석(主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국가주의적 개념인 ‘국민’ 대신 ‘인민(人民)’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사실 ‘인민’은 영어 ‘people’의 가장 적확한 한자 번역어다. 국명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명보다 더 민주적이며 인민 친화적(people-friendly)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내용은 ‘일당독재 국가’인데!
광복회 회장이 최근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영상 메시지에서 “해방 이후 들어온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는 당시 소련군 포고문은 “조선인이 독립과 자유를 되찾은 것을 참 축하드린다. 조선 해방 만세”라고 돼 있던 반면, 미군(맥아더) 포고문은 “우리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다. 앞으로 조선인은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내 말을 안 들으면 군법회의에 넘겨 처벌하겠다”는 것이 뼈대라고 말했다. 소련군 포고문은 존댓말로 번역돼 있고 미군 포고문은 명령체로 돼 있다. 미군은 점령군 이미지를, 소련군은 해방군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식민지 총독’ ‘38선 분단 집행관’으로 서슬 퍼렇게 보인다.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명찰을 달고 공산주의를 경계하는 북한 주민을 회유했다. 소련군이 양민을 약탈하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만행이 빈발하자 여기저기서 반발했다. 소련군 포고문은 이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낸 것이었다.
1945년 9월 9일자 맥아더 사령관 명의로 된 포고문 제3조는 이렇다. “All persons will obey promptly all my orders and orders issued under my authority. Acts of resistance to the occupying forces or any acts which may disturb public peace and safety will be punished severely.” 해당 내용은 당시 한반도에 “住民은 本官 及 本官의 權限下에서 發布한 命令에 卽速히 服從할 事 占領軍에 對하야 反抗行動을 하거나 또는 秩序保安을 攪亂하는 行爲를 하는 者는 容恕업시 嚴罰에 處함”이라고 번역됐다. 이를 현시점의 우리말로 옮기면 “주민은 나의 명령 및 나의 권한 하에서 발포된 모든 명령에 즉각 복종해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반항 행위 혹은 공공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는 엄하게 벌한다”는 것이다.
‘will’은 격식 명령체 조동사로 촉구·설득·권유(~합시다) 요소가 강하다. ‘obey’를 ‘준수하다’로 번역했다면 본래 뜻을 더 잘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훌륭한 번역은 원문(source language)과 번역어(target language) 간 조화가 이뤄질 때 가능하다. 타 문화체계를 자문화체계로 적절하게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종합대를 ‘multiversity’가 아닌, ‘university’라고 옮긴다.
북한지역 점령 시 점령정책의 원칙은 1945년 9월 20일자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의 훈령을 따랐다. “북조선 지역에 소비에트 정권을 구축하지 말고 조직의 광범위한 블록(bloc·연합)을 기초로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라”는 지침이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공산주의 좌익소아병’(“Left-Wing” Communism: An Infantile Disorder·1920)이라는 글에서 “다른 세력일지라도 기본 목표 수행에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세력이면 동맹군으로 삼고 주적을 압박하는 우회 공격 임무를 수행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스탈린은 “공산당이 아직 정권을 잡지 못한 어려운 시기에는 우선 이용가치가 있는 계층이 싫어할 구호를 미리 성급하게 내걸지 말고 그들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구호를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여러 정치세력과 연대하자고 하면서 실제로는 뒤통수를 쳐 공산주의 국가를 세울 궁리를 했던 것이다.
‘해방군’이라던 소련군의 지도로 북한은 남침을 했다. 1950년 6월 24일 밤 11시 20분(우리 시각 25일 낮 1시 20분) 당시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북한군이 남한을 전면적으로 공격했다”고 보고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즉각 “그 개자식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We’ve got to stop th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고 응답했다. 미국의 즉각 개입이 이뤄졌다. 미 해군과 공군을 6·25전쟁에 투입하는 결정이 전쟁이 일어나고 이틀 만에 이뤄졌다. 6월 30일 트루먼 대통령은 지상 병력 투입도 결정했다. 클레멘트 애틀리 당시 영국 총리(노동당)는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루먼 대통령을 압박했다. 한국을 포기하고 미군을 철수시켜 유럽 방어에 투입하자는 제안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이렇듯, 사실은 소련군이 점령군, 미군이 해방군이었다!
일당독재 ‘인민공화국’
1949년 3월 당시 김일성(오른쪽에서 두 번째 중절모 쓴 인물) 북한 수상이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과 회담하고자 모스크바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동아DB]
광복회 회장이 최근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영상 메시지에서 “해방 이후 들어온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는 당시 소련군 포고문은 “조선인이 독립과 자유를 되찾은 것을 참 축하드린다. 조선 해방 만세”라고 돼 있던 반면, 미군(맥아더) 포고문은 “우리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다. 앞으로 조선인은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내 말을 안 들으면 군법회의에 넘겨 처벌하겠다”는 것이 뼈대라고 말했다. 소련군 포고문은 존댓말로 번역돼 있고 미군 포고문은 명령체로 돼 있다. 미군은 점령군 이미지를, 소련군은 해방군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식민지 총독’ ‘38선 분단 집행관’으로 서슬 퍼렇게 보인다.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명찰을 달고 공산주의를 경계하는 북한 주민을 회유했다. 소련군이 양민을 약탈하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만행이 빈발하자 여기저기서 반발했다. 소련군 포고문은 이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낸 것이었다.
1945년 9월 9일자 맥아더 사령관 명의로 된 포고문 제3조는 이렇다. “All persons will obey promptly all my orders and orders issued under my authority. Acts of resistance to the occupying forces or any acts which may disturb public peace and safety will be punished severely.” 해당 내용은 당시 한반도에 “住民은 本官 及 本官의 權限下에서 發布한 命令에 卽速히 服從할 事 占領軍에 對하야 反抗行動을 하거나 또는 秩序保安을 攪亂하는 行爲를 하는 者는 容恕업시 嚴罰에 處함”이라고 번역됐다. 이를 현시점의 우리말로 옮기면 “주민은 나의 명령 및 나의 권한 하에서 발포된 모든 명령에 즉각 복종해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반항 행위 혹은 공공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는 엄하게 벌한다”는 것이다.
‘will’은 격식 명령체 조동사로 촉구·설득·권유(~합시다) 요소가 강하다. ‘obey’를 ‘준수하다’로 번역했다면 본래 뜻을 더 잘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훌륭한 번역은 원문(source language)과 번역어(target language) 간 조화가 이뤄질 때 가능하다. 타 문화체계를 자문화체계로 적절하게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종합대를 ‘multiversity’가 아닌, ‘university’라고 옮긴다.
“무슨 수 써서라도 막아라”
김원웅 광복회 회장. [동아DB]
‘해방군’이라던 소련군의 지도로 북한은 남침을 했다. 1950년 6월 24일 밤 11시 20분(우리 시각 25일 낮 1시 20분) 당시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북한군이 남한을 전면적으로 공격했다”고 보고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즉각 “그 개자식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We’ve got to stop th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고 응답했다. 미국의 즉각 개입이 이뤄졌다. 미 해군과 공군을 6·25전쟁에 투입하는 결정이 전쟁이 일어나고 이틀 만에 이뤄졌다. 6월 30일 트루먼 대통령은 지상 병력 투입도 결정했다. 클레멘트 애틀리 당시 영국 총리(노동당)는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루먼 대통령을 압박했다. 한국을 포기하고 미군을 철수시켜 유럽 방어에 투입하자는 제안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이렇듯, 사실은 소련군이 점령군, 미군이 해방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