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3

2012.11.19

‘수송 외길’ 한진의 남다른 경쟁력

글로벌 수송기업으로 성장, ‘백년대계’ 경영철학 실천

  •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입력2012-11-19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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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송 외길’ 한진의 남다른 경쟁력

    한진그룹 창업주 고(故) 조중훈 회장(오른쪽)과 조양호 회장 부자.

    11월 17일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10주기를 즈음해 한진그룹의 대를 이은 ‘수송’ 외길이 주목받고 있다. 40여 년 전 정부로부터 부실덩어리 대한항공을 인수해 ‘수송보국’의 경영신조를 내걸었던 한진그룹은 국제화물수송 세계 2위, 국제여객수송 세계 14위의 글로벌 수송기업으로 성장했다.

    “밑지면서도 계속해야 하는 사업이 있으며, (대한항공) 공사 인수는 국익과 공익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소명이다.”

    조중훈 창업주가 회고록 ‘내가 걸어온 길’에서 밝힌 대로, 당시 그는 대한항공 인수에 반대하는 회사 중역들을 이렇게 설득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1968년 여름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를 방문한 조 창업주는 “대한항공을 인수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 대한항공은 금융부채만 27억 원으로 동남아 11개국 항공사 중 경쟁력 꼴찌였다. 그럼에도 조 창업주는 자본금 15억 원을 분할 납부하고 부채를 그대로 떠안는 조건으로 대한항공을 인수했다.

    수송전업도 90%, 명실공히 수송 전문기업

    대를 이어 2003년 2월 13일 취임한 조양호 회장은 수송보국의 유훈을 한층 확대, 발전시켰다. ‘세계 항공업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항공사’ 비전을 제시하고 유니폼 교체, 기내 시설 및 장비 업그레이드, 최첨단 항공기 도입 등 세계 일류 항공사로 도약하기 위한 변화와 투자를 계속한 것. 그 결과 2012년 11월 현재 대한항공은 항공기 147대를 보유하고, 42개국 122개 도시를 운항한다. 이와 함께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 벌크선, LNG선 등 200여 척, 약 1000만t의 선박으로 전 세계 60여 개 정기항로와 부정기항로를 운영하는 세계적인 선사로 발돋움했다. 이로써 한진그룹은 연 매출액 24조 원의 종합물류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조중훈 창업주는 남의 흉내 내는 것을 질색했으며, 모르는 분야에 뛰어들어 사업을 확장하는 무모한 행동을 철저히 자제했다. 평소 지론이 ‘낚싯대를 열 개, 스무 개 걸쳐놓는다고 거기에 다 고기가 물리는 게 아니다’였다고 한다. 이 같은 선친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조양호 회장 역시 “모르는 사업보다 아는 것에 집중하고, 특히 수송 관련 분야라는 한 우물만 파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친의 유산”이라고 강조한다.

    기업 특성상 환율과 유가, 국제정세에 유독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진그룹이 외환위기와 9·11 테러, 고유가 같은 파고를 무난히 넘을 수 있었던 것도 수송 외길의 뚝심 덕분이라고 평가된다. 기업이 시장에서 안정궤도에 접어들면 몸집을 불리려고 한눈을 팔기 쉬운데, 한진그룹은 수송과 무관한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데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 수송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이 되려고 내실을 다졌던 것. 한진그룹은 외환위기 직후 전체 매출에서 수송부문 비중이 70%로 당시에도 우리나라 대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그 비중이 90%를 넘는다. 수송 부문 전문화를 일관되게 추진한 결과다.

    조양호 회장은 “모르는 것에 투자하지 마라”는 창업주의 뜻을 이어 평소 “기업들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섣불리 도전했다가 아예 기업이 사라져버리는 사례가 많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수송 부문에서는 멀리 내다보고 과감히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1년 9·11 테러로 유나이티드항공, 아메리칸항공 등 미국 최대 항공사들이 파산위기에 몰리고 그로 인해 보잉, 에어버스 등 항공기 제작사들도 경영난에 부닥쳤을 때 조 회장은 A380, B787 등 차세대 항공기 도입을 결정했다.

    세계 항공산업이 공황상태라고 할 만큼 위기를 맞았는데, 조양호 회장은 오히려 침체기를 지나 증가하게 될 항공 수요와 항공기 시장 판도 변화를 한발 앞서 내다본 것이다. 실제로 2006년부터 항공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섰으며, 항공사들은 앞다퉈 차세대 항공기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항공기 수요가 몰리면서 항공사들은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대한항공은 일찌감치 주문한 덕에 지난해 6월 A380을 도입해 미주와 유럽 등 장거리 노선에서 경쟁력을 높였다.

    ‘수송 외길’ 한진의 남다른 경쟁력

    1969년 김포공항에서 열린 대한항공공사 인수식.(왼쪽) 1973년 5월 747 점보기 태평양 노선 취항 기념식.(오른쪽)

    위기가 기회, 불황 속 신(新)시장 발굴 박차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조양호 회장의 ‘백년대계’ 경영철학은 계속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있으나 조 회장은 오히려 새로운 수요 발굴을 위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성장가능성이 높은 시장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1월 베트남 다낭을 시작으로, 6월 케냐 나이로비, 9월 미얀마 양곤에 신규 취항했으며, 11월 9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와 제다를 잇는 직항편을 띄웠다. 인천공항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도착해 다시 2시간 거리인 제다로 향하는 노선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직항노선이 다시 열린 건 1997년 이후 15년 만이다. 대한항공은 12월부터 스리랑카 콜롬보와 몰디브에도 취항할 계획이다. 이렇듯 신(新)성장동력 개발을 위해 잠재시장 발굴을 계속하는 대한항공은 2019년까지 취항도시를 140개로 늘리는 게 목표다.

    조양호 회장은 2009년 대한항공 창사 40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창사 5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고품격 서비스, 최첨단 항공기, 글로벌 신시장 개척 등을 통해 국제항공 여객수송 순위 10위권 내 진입, 화물은 15년 연속 1위 유지 목표”를 밝혔다. 국익 도모를 기업 소명으로 여기고 수송 외길을 고집한 한진그룹의 미래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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