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장관의 정책보좌관이 비정부단체, 그것도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으로 ‘직진’했다는 사실에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이력이 그러할 뿐,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것이라고 말한다.
“4월 초 처음 제의를 받고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바로 거절했다. 그런데 8월에 다시 아직 공석이니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기에 갈등했다. 인권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해보진 않았지만, 농사꾼 아들로, 또 기자로 살아온 내 삶을 돌아볼 때 자기 힘으로 인권을 챙기지 못하고 국가가 챙겨주지도 못하는 약자의 벗이 되는 것이 크게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다.”
갈 사무국장은 기자 시절이던 1998년 일요신문·서울문화사 파업에 참여했다. 엄동설한에 35일간 진행한 이 파업에서 노조 조직국장이자 사수대장이던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고, 동료들과의 연대의식도 돈독히 다졌다. 노사가 원만히 해결해 한 달여 만에 파업은 끝났으나, 경영진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그는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났다. 이후 몇 년간 학원 강사로 일하고, 뒤늦게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최 장관을 만난 건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를 할 때다. 당시 최 장관은 고려대 내 학문소통연구회 부회장이었다. 그가 최 장관으로부터 정책보좌관 제의를 받고 고민하자 지인들은 “정권에 몸을 싣지 않고, 영혼을 팔지 않으며, 정부에서 일하면서 정책결정 과정을 지켜본다면 네 삶에 큰 실익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회원 수 10만 명 늘리기도 추진
그가 최 장관을 떠나면서 주고받은 이야기가 있다. “국제앰네스티 전통과 관행상 정치권력과 맞서야 하고, 이명박 정권의 인권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더라도 장관께서 양해해달라”는 그의 말에 최 장관은 “3개월간 업무파악이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업무파악을 한 달로 줄이고 서둘러 목소리를 낼 생각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한국 인권이 후퇴했다”는 게 국제앰네스티의 공식 의견인 만큼, 현 정권의 인권탄압으로 고통 받는 많은 사람을 두고 허송세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국제앰네스티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양심적 병역 거부와 무기거래 조약, 빈곤, 사형제도는 물론, 노동과 인권침해의 관계를 한국과 국제적 차원에서 들여다볼 계획이다. 또한 국제앰네스티와 뜻을 같이하는 국회의원들과 접촉해 입법 및 정책 반영도 적극 추진할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행적이 마치 국제앰네스티에서 일하려고 준비해온 것처럼 됐다.
올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설립 4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까지 자체 건물은커녕 인권교육을 위한 공간조차 없다. 사무국 직원 33명도 모두 적은 임금의 부족분을 보람으로 채우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현재 1만6500명인 회원 수를 임기 4년 안에 10만 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힌 그가 인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한국 인권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