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을 막론하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세계인에게 운전면허증은 필수요소다. 좀 더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춰야 하는 게 운전면허증이다. 현재 운전면허증은 나라마다 자국 법과 규율에 따라 발급, 관리된다. 그런데 면허증 취득 후 일정 기간마다 반드시 갱신해야 하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한 번 취득하면 별도로 테스트나 운전능력 검사를 받지 않고 평생 사용이 가능하다. 면허증 갱신에 대한 불편은 없지만 이에 따른 사건사고가 늘어나자 프랑스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평생 운전면허증 덕을 톡톡히 보는 사람이 바로 앙리 할아버지다. 1907년생인 그는 올해 105세로 프랑스 최고령 운전자다. 모시고 살겠다는 자녀들의 제안을 뿌리친 그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혼자 살며 일주일에 한 번 마켓에 들러 장을 본다. 물론 15분 거리를 직접 운전해 이동한다. 가끔 멋있는 레트로풍의 자가용을 몰고 드라이브도 나간다. 집에서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그에게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는 일은 유일한 낙이자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한다.
역주행·신호 무시 위험한 질주
그러나 프랑스 대표적 고발 프로그램 ‘특파원’이 집중 취재해 방송한, 운전대를 잡은 앙리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시력은 현격히 떨어져 눈으로 확인 가능한 거리가 일반인에 비해 많이 짧았다. 게다가 차선을 인지하는 능력도 떨어져 2차선 도로에서 역방향 주행을 하고, 원형 교차로에서는 느린 속도로 차선을 바꿔 교통흐름을 마비시켰으며, 신호등이나 일시정지 표시판을 보지 못한 채 지나치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 내가 한창 운전할 때는 시내에 신호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요즘도 가끔 번화가에 나오면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가볍게 말하는 등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앙리가 운전하는 차량에 동승한 ‘특파원’의 기자는 “앙리는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방향을 즉각 결정하지 못해 한동안 핸들을 이리저리 틀었다”고 말했다. 반대차선에서 교차로로 진입하는 대형트럭이 등장하자 아예 주행을 멈추거나 제한속도 110km인 고속도로에서 60km로 달리는 상황도 벌어졌다. 고령 운전자를 위한 의학 테스트나 주행검사를 실행하지 않는 프랑스의 운전면허 시스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앙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 같은 늙은이한테는 그나마 자동차 운전이 생활의 유일한 비상구다. 운전을 못 하게 되면 마음대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자식들이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기만을 기다리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긴 싫다. 갱신이 필요 없는 프랑스 운전면허증은 참 좋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우리 같은 노인네가 운전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는데, 어디를 가든 천천히 달리는데 위험할 것이 뭐 있나”라고 반문했다. 여전히 자가운전을 고집하는 프랑스 고령 운전자들은 대부분 앙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어디를 가든 천천히 달리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은 과연 올바를까.
고령 운전자는 공공의 적?
프랑스 운전면허증은 벌점제도로 운영된다. 면허증 취득과 동시에 총 12점이 주어지며, 각종 법규 위반에 따라 점수가 깎인다. 과실치사나 음주운전, 허위표지판 부착 등은 1회 위반당 6점, 일방통행 위반이나 고속도로 유턴 시에는 4점, 고속도로 주차나 제한속도에서 20~30km/h가 넘는 과속은 2점, 중앙선 침범이나 안전벨트 미착용은 1점이 감점된다. 즉, 주어진 12점을 유지하면 연령제한 없이 평생 운전할 수 있다.
렌 지방 교통단속반의 기 알바네스 경사는 고령 운전자 문제는 이러한 벌점제도로는 해결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고령 운전자 대부분은 속도를 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과속으로 단속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시야도 흐릿하고 운전 테크닉도 없어 매우 위험하지만 위법이 아닌 이상 단속할 수도, 면허를 정지시킬 수도 없다”면서 “최근 고령 운전자가 초래하는 교통사고율이 급격히 늘었다”고 말했다.
주로 80~95세 운전자가 각종 사고의 원인이 된다. 가벼운 사고가 많은 편이지만, 가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상황도 벌어진다. 얼마 전 투르 지방에서 발생한 사고가 대표적이다. 영국 출신 95세 메리 할머니는 교차로에서 일단정지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교차로 평행방향에서는 직진 신호를 받은 오토바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메리의 차는 그대로 오토바이와 충돌했고, 36세 윌리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사고 후 메리를 잘 알고 지내던 마을 주민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웃들 증언에 따르면, 메리는 평소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사고 전에도 크고 작은 사고로 그의 차량 곳곳에 충돌 흔적이 많았다고 한다. 메리는 현재 고향인 영국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데, 그와 가깝게 지냈다는 이웃사촌 피에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민 모두 메리가 운전할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말렸지만 항상 고집을 부렸다. 충돌사고도 자주 일어났는데, 그는 그런 사실을 숨기고 가까운 지인에게 몰래 자동차를 고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고령 운전자의 위험한 주행에 대한 해결책은 정말 없을까. 프랑스는 유럽국가 가운데 운전자에 대한 정기적인 테스트를 하지 않는 보기 드문 나라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운전자에 대한 정기 테스트를 실시하며, 아일랜드나 스위스에서는 6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고령 운전자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은 ‘고발’뿐이다. 도로에서 위험을 초래한다고 판단되는 운전자를 누군가가 정부에 알려야만 단속하는 것이다. 고발당한 운전자는 직접 출두해 국가에서 시행하는 테스트를 받는다. 이 테스트 결과에 따라 향후 운전 가능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나 대부분 고발을 꺼린다. 주변에 문제를 일으키는 고령 운전자가 있는 줄 뻔히 알지만, 그들의 자유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죄책감 때문에 망설인다. 운전을 고집하는 나이 드신 분을 가까운 사람이 고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프랑스 정부는 왜 대책을 세우지 않을까. 2003년 새로운 운전면허증 갱신 시스템을 도입하려다 막판에 포기했다. 프랑스 북부 크리스티앙 바네스트 의원은 “당시 운전면허증 갱신 시스템 도입 안건을 처리했어야 하는데, 마침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국무총리 장피에르 라파랭은 고령 유권자들 표를 두려워했다”면서 “이는 프랑스 정치의 어두운 단면이며, 프랑스가 이런 기본적인 시스템을 외면한다는 사실 자체가 유감”이라고 말했다. 프랑수아 올랑드가 대통령으로 당선해 우파 집권체제에서 벗어나 좌파의 옷으로 갈아입은 프랑스가 오랜 논쟁거리인 운전면허 갱신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65세 이상 운전자 800만 명이 매일 도로 위를 달린다. 2050년에는 1800만 명이 넘으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프랑스 운전면허증이 고령자의 자유와 권리를 배려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각 개인의 주행능력과 건강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한다면 운전자 당사자는 물론, 다른 운전자의 도로 위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105세 앙리 할아버지는 외출하려고 낡은 애마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
평생 운전면허증 덕을 톡톡히 보는 사람이 바로 앙리 할아버지다. 1907년생인 그는 올해 105세로 프랑스 최고령 운전자다. 모시고 살겠다는 자녀들의 제안을 뿌리친 그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혼자 살며 일주일에 한 번 마켓에 들러 장을 본다. 물론 15분 거리를 직접 운전해 이동한다. 가끔 멋있는 레트로풍의 자가용을 몰고 드라이브도 나간다. 집에서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그에게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는 일은 유일한 낙이자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한다.
역주행·신호 무시 위험한 질주
그러나 프랑스 대표적 고발 프로그램 ‘특파원’이 집중 취재해 방송한, 운전대를 잡은 앙리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시력은 현격히 떨어져 눈으로 확인 가능한 거리가 일반인에 비해 많이 짧았다. 게다가 차선을 인지하는 능력도 떨어져 2차선 도로에서 역방향 주행을 하고, 원형 교차로에서는 느린 속도로 차선을 바꿔 교통흐름을 마비시켰으며, 신호등이나 일시정지 표시판을 보지 못한 채 지나치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 내가 한창 운전할 때는 시내에 신호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요즘도 가끔 번화가에 나오면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가볍게 말하는 등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앙리가 운전하는 차량에 동승한 ‘특파원’의 기자는 “앙리는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방향을 즉각 결정하지 못해 한동안 핸들을 이리저리 틀었다”고 말했다. 반대차선에서 교차로로 진입하는 대형트럭이 등장하자 아예 주행을 멈추거나 제한속도 110km인 고속도로에서 60km로 달리는 상황도 벌어졌다. 고령 운전자를 위한 의학 테스트나 주행검사를 실행하지 않는 프랑스의 운전면허 시스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앙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 같은 늙은이한테는 그나마 자동차 운전이 생활의 유일한 비상구다. 운전을 못 하게 되면 마음대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자식들이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기만을 기다리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긴 싫다. 갱신이 필요 없는 프랑스 운전면허증은 참 좋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우리 같은 노인네가 운전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는데, 어디를 가든 천천히 달리는데 위험할 것이 뭐 있나”라고 반문했다. 여전히 자가운전을 고집하는 프랑스 고령 운전자들은 대부분 앙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어디를 가든 천천히 달리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은 과연 올바를까.
고령 운전자는 공공의 적?
장거리운전 중 휴식을 취하는 뉴질랜드의 한 노부부. 뉴질랜드는 노인 교통사고가 늘기 시작하자 1992년 이들을 대상으로 교통안전교육제도를 도입했다.
렌 지방 교통단속반의 기 알바네스 경사는 고령 운전자 문제는 이러한 벌점제도로는 해결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고령 운전자 대부분은 속도를 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과속으로 단속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시야도 흐릿하고 운전 테크닉도 없어 매우 위험하지만 위법이 아닌 이상 단속할 수도, 면허를 정지시킬 수도 없다”면서 “최근 고령 운전자가 초래하는 교통사고율이 급격히 늘었다”고 말했다.
주로 80~95세 운전자가 각종 사고의 원인이 된다. 가벼운 사고가 많은 편이지만, 가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상황도 벌어진다. 얼마 전 투르 지방에서 발생한 사고가 대표적이다. 영국 출신 95세 메리 할머니는 교차로에서 일단정지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교차로 평행방향에서는 직진 신호를 받은 오토바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메리의 차는 그대로 오토바이와 충돌했고, 36세 윌리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사고 후 메리를 잘 알고 지내던 마을 주민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웃들 증언에 따르면, 메리는 평소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사고 전에도 크고 작은 사고로 그의 차량 곳곳에 충돌 흔적이 많았다고 한다. 메리는 현재 고향인 영국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데, 그와 가깝게 지냈다는 이웃사촌 피에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민 모두 메리가 운전할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말렸지만 항상 고집을 부렸다. 충돌사고도 자주 일어났는데, 그는 그런 사실을 숨기고 가까운 지인에게 몰래 자동차를 고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고령 운전자의 위험한 주행에 대한 해결책은 정말 없을까. 프랑스는 유럽국가 가운데 운전자에 대한 정기적인 테스트를 하지 않는 보기 드문 나라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운전자에 대한 정기 테스트를 실시하며, 아일랜드나 스위스에서는 6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고령 운전자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은 ‘고발’뿐이다. 도로에서 위험을 초래한다고 판단되는 운전자를 누군가가 정부에 알려야만 단속하는 것이다. 고발당한 운전자는 직접 출두해 국가에서 시행하는 테스트를 받는다. 이 테스트 결과에 따라 향후 운전 가능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나 대부분 고발을 꺼린다. 주변에 문제를 일으키는 고령 운전자가 있는 줄 뻔히 알지만, 그들의 자유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죄책감 때문에 망설인다. 운전을 고집하는 나이 드신 분을 가까운 사람이 고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프랑스 정부는 왜 대책을 세우지 않을까. 2003년 새로운 운전면허증 갱신 시스템을 도입하려다 막판에 포기했다. 프랑스 북부 크리스티앙 바네스트 의원은 “당시 운전면허증 갱신 시스템 도입 안건을 처리했어야 하는데, 마침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국무총리 장피에르 라파랭은 고령 유권자들 표를 두려워했다”면서 “이는 프랑스 정치의 어두운 단면이며, 프랑스가 이런 기본적인 시스템을 외면한다는 사실 자체가 유감”이라고 말했다. 프랑수아 올랑드가 대통령으로 당선해 우파 집권체제에서 벗어나 좌파의 옷으로 갈아입은 프랑스가 오랜 논쟁거리인 운전면허 갱신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65세 이상 운전자 800만 명이 매일 도로 위를 달린다. 2050년에는 1800만 명이 넘으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프랑스 운전면허증이 고령자의 자유와 권리를 배려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각 개인의 주행능력과 건강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한다면 운전자 당사자는 물론, 다른 운전자의 도로 위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105세 앙리 할아버지는 외출하려고 낡은 애마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