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 직장인 이씨는 2007년 난생처음 서울 강북에 있는 84㎡의 소형 아파트를 구매했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을 때 이씨와 아내는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며 뛸 듯이 기뻐했다. 아파트값은 취·등록세까지 포함해 4억 원 정도였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를 채워 절반가량을 주택담보대출로 충당했다. 그때는 마침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던 때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부동산값은 그때가 꼭짓점이었다. 이씨는 3년 만에 손을 들었다. 취·등록세 납부일도 지나기 전에 떨어지기 시작한 아파트값은 계속 추락했고, 원리금 균등상환으로 은행에 다달이 내는 돈은 100만 원을 넘어섰다. 아파트를 내놨지만 팔리지 않았고, 전세로 집을 옮긴 지 2년이 지난 올해 들어서야 급매로 처분할 수 있었다. 이미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은행에서 신용대출과 보험사에서 약관대출을 받은 뒤였다. 이씨는 “막연하게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었던 것이 잘못”이라면서 “집은 내가 매매했는데, 은행과 보험사만 부자가 됐다”고 말한다.
막판에라도 기대를 버리고 아파트를 처분해 빚을 갚은 이씨는 그나마 행운아다. 그동안 들인 돈이 아깝다거나 한 번은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에 대출 부담을 그대로 지고 가는 주택 소유자는 그 수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다. 중산층과 서민의 대출 문제를 상담하는 (사)희망살림의 송주홍 상담사는 “부동산담보대출에서 비롯한 다중 채무를 상담하러 오는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빚지는 데 예외는 없다
주택담보대출은 그나마 담보로 잡힐 아파트라도 소유하고, 제1금융권 언저리에서 돈을 빌릴 신용도 갖췄기에 가능하다. 카드사의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제2금융권과 무수한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채무자는 극한에 몰렸다. 빚은 보통 사람과 먼 얘기가 아니다.
40대 후반의 주부 최씨는 요즘 잠을 못 잔다. 카드 결제일에 갚아야 할 금액이 1000만 원을 넘어선 이후부터다. 최씨 집은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중학교 3학년인 딸의 학원비, 과외비로만 다달이 100만 원이 들어간다. 남편 월급으로는 4명 가족 생활비, 부모 용돈, 집 살 때 받은 대출금을 갚기도 빠듯하다. 게다가 최씨 남편은 아이들 학원비로 100만 원이나 써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최씨는 남편 몰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배우자가 회사에 다니고 아파트에 거주하면 주부도 카드를 만들 수 있다는 말에 뿌듯한 마음으로 발급받은 카드다.
현금서비스를 처음 받을 때는 꺼림칙했는데, 아무에게도 손 벌리지 않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빼내는 것이 좋았다. 다음 달에는 최대한 절약하고, 남편 상여금으로 메꾸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최씨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최씨 혼자 절약할 수 있는 생활비에는 한계가 있었고, 예상치 못한 경조사도 많았다.
카드 한 개에 50만 원이던 현금서비스는 순식간에 세 개 100만, 200만, 500만 원이 됐고 1000만 원이 넘어서면서는 계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용금액의 부분 결제가 가능한 ‘리볼빙’ ‘페이플랜’ 등을 이용한 지도 수개월째다. 그것도 제때 갚지 않은 빚일 뿐이라는 사실을 최씨는 애써 외면한다. 현금서비스 이자 구조는 모르지만 남편의 성질만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카드 결제일이 돌아오는 것과 남편에게 발각될지 모른다는 두 개의 시한폭탄을 안고 산다.
60대 김씨는 1년 전 큰아들을 결혼시켰다. 며느릿감을 데려온다기에 기뻐했지만 결혼을 코앞에 두고 마음이 상했다. 스스로 월급 관리를 잘하는 줄 알았던 아들에게 물어보니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이었다. 유지비 부담은 생각지도 않고 덜컥 자동차부터 구매해 다닐 때부터 단속했어야 하는데, 아들을 너무 믿은 것이 탈이었다.
김씨는 며느리가 원치 않는 시집살이를 시켜야 하나 고민하다 적어도 1억 원은 마련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형제들에게도 조금씩 돈을 빌렸다. 빚지기가 싫어서 지금 사는 집을 구매할 때도 받지 않았던 대출이다. 아들은 아들대로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경기도에 전셋집을 마련했다. 현재 김씨가 받은 주택담보대출에서는 매월 24만 원 정도 이자가 나간다. 아들 부부는 부모 용돈이라며 25만 원씩 부치는데, 김씨는 ‘용돈’이라는 말에 실소가 나왔다고 한다. 자녀 교육, 주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최씨와 김씨처럼 사실상 자녀가 져야 할 빚을 대신 지는 부모가 늘어갈 것이다.
잠깐 쓰고 금방 갚으면 되지?
결혼 3년차 30대 초반 김씨는 예금담보대출을 1000만 원 정도 쓰고 있다. 김씨의 대출 시작도 미미했다. 남편이 이직하면서 6개월 동안 김씨가 비정규직으로 외벌이를 한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두어 달은 둘이 살기에 어렵지 않았지만, 시집 쪽으로 병원비 들어갈 일이 생겼다. 김씨는 적은 금액이지만 빚을 내기보다 결혼할 때 가입한 예금을 해지하기로 결심하고 은행에 갔다. 애초 살다 어려울 때 쓰려고 비축한 돈이기도 했다.
창구 직원은 몇백만 원 때문에 목돈을 해지하는 것이 아깝다며 예금담보대출을 권했다. 4.5% 이자면 다음 달에 5000원도 안 되는 이자가 나간다고 설득했다. 김씨는 폰뱅킹이나 인터넷뱅킹으로 신청하면 더 싸다는 말에 창구에 앉아서 직원 지시에 따라 폰뱅킹을 이용했다. 그때 손쉬운 대출에 감탄했던 김씨는 이제 신용카드 결제일마다 인터넷뱅킹으로 예금담보대출을 신청하고 있다. 다시 직장을 구한 남편의 월급으로 대출금을 조금씩 갚아나가지만, 신용카드 결제일이 되면 다시금 현금이 얼마간 부족해지는 것이다.
예금 만기일이 다가올수록 줄어든 예금액에 대해 남편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도 답답하다. 김씨는 “처음 결심한 대로 그냥 예금을 해지하고, 일부는 다시 예치해 묻은 뒤 나머지 돈으로 아껴서 살았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지 않고 대출을 권하는 은행도 잘못이라는 생각에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빚더미에 앉은 경우도 있다. 지방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다니는 류씨는 대학교에 다니던 2007년부터 학자금대출을 받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부모가 감당해야 할 빚이 몇억 원대를 넘어섰기에 본인이 대학 학자금과 생활비를 전부 충당해야 했다. 류씨가 대학교와 로스쿨을 다니는 동안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학자금 대출은 원금만 5000만 원이다.
그나마 대학교 때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지만, 로스쿨 기간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성적 장학금을 받는데도 월세, 책값, 식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류씨에게는 마지막 보루인 가계신용대출, 일명 마이너스통장이 있었다. 모 은행에서 로스쿨 입학생에게 찾아와 2000만 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을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의 상환 능력이 아닌 미래 소득을 예상해 대출해주는 것은 금융기관이 파놓은 빚의 함정이다.
그러나 류씨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류씨는 “로스쿨에 다닌다고 해서 여유롭게 사는 학생이 아니다”라며 “대출 원금과 이자를 볼 때마다 내년 초 변호사자격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법무법인에 취직하지 못할까봐 두렵다”고 심정을 밝혔다.
빚 안 내면 바보, 못 갚으면 죄인
지난해 한국 가계저축률은 2.7%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0년대 말 20%를 넘었던 것이 2000년 들어 10%까지 떨어지며 급기야 거의 0(Zero) 수준에 가까워진 것이다. 착실히 직장을 다니거나 일하면서 돈을 저축하고, 그 저축으로 점점 집을 넓히는 것은 이제 까마득한 전설이 됐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내일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사람들은 낮은 이자만을 바라보고 돈을 묶어두지 않는다.
‘자기 돈으로 투자하면 바보’라는 말로 금융기관은 사람들을 부추겨왔다. 원금 보전이 안 되는 주식과 펀드에 무조건 투자하고, 전세와 담보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일을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이라고 불렀다. ‘남자는 자동차가 있어야 결혼한다’ ‘자식이 결혼할 때는 부모가 집을 해줘야 한다’ ‘사교육 없이 대학 못 간다’ 등의 변명거리를 대며 생계형 대출이나 소비 대출을 늘리는 구조를 만들 때는 모두가 공범이었다.
빚을 안 내면 바보 취급하던 사회가 이젠 못 갚으면 죄인 취급하는 쪽으로 돌아선 듯한 느낌이다. 대출자들은 분수에 맞지 않게 빚을 낸 죄인이라는 후회와 불안의 감옥 속에 살아간다. 빚을 낼 때는 전화로, 인터넷으로 간편하기만 했는데 갚을 때는 대출자를 도와주는 곳이 그 어디에도 없다.
카드사는 카드론을 받아 결제금액을 충당하라고 안내한다. 자동차회사가 소개해준 캐피털에서는 할부금을 독촉하는 문자와 누구나 손쉽게 대출 가능하다는 문자를 번갈아 보낸다. 보험사 약관대출로 보험료를 내야 하는 부조리한 일도 생긴다. 빚을 갚으려 다시 빚을 내라는 소리다. 연체까지 하면 답도 없다. 독촉받는 일 자체도 스트레스지만, 주변에서 알까 봐 전전긍긍하는 나날이 계속된다. 빚을 독촉받고 회수할 때에야 대출자는 금융기관의 냉정한 본모습을 보게 된다.
가계대출 문제의 심각성이 이미 오래전에 알려졌는데도 정부, 금융기관, 연구소의 진단과 처방은 제각각이다.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하면 금융기관이 부실화할 수 있다는 엄포가 있는가 하면, 저소득층에게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대책을 내놓기도 하지만 현재 부채로 고통 받는 개개인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얘기다. 대출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빚을 갚고 싶다고 속으로만 절규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부동산값은 그때가 꼭짓점이었다. 이씨는 3년 만에 손을 들었다. 취·등록세 납부일도 지나기 전에 떨어지기 시작한 아파트값은 계속 추락했고, 원리금 균등상환으로 은행에 다달이 내는 돈은 100만 원을 넘어섰다. 아파트를 내놨지만 팔리지 않았고, 전세로 집을 옮긴 지 2년이 지난 올해 들어서야 급매로 처분할 수 있었다. 이미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은행에서 신용대출과 보험사에서 약관대출을 받은 뒤였다. 이씨는 “막연하게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었던 것이 잘못”이라면서 “집은 내가 매매했는데, 은행과 보험사만 부자가 됐다”고 말한다.
막판에라도 기대를 버리고 아파트를 처분해 빚을 갚은 이씨는 그나마 행운아다. 그동안 들인 돈이 아깝다거나 한 번은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에 대출 부담을 그대로 지고 가는 주택 소유자는 그 수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다. 중산층과 서민의 대출 문제를 상담하는 (사)희망살림의 송주홍 상담사는 “부동산담보대출에서 비롯한 다중 채무를 상담하러 오는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빚지는 데 예외는 없다
주택담보대출은 그나마 담보로 잡힐 아파트라도 소유하고, 제1금융권 언저리에서 돈을 빌릴 신용도 갖췄기에 가능하다. 카드사의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제2금융권과 무수한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채무자는 극한에 몰렸다. 빚은 보통 사람과 먼 얘기가 아니다.
40대 후반의 주부 최씨는 요즘 잠을 못 잔다. 카드 결제일에 갚아야 할 금액이 1000만 원을 넘어선 이후부터다. 최씨 집은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중학교 3학년인 딸의 학원비, 과외비로만 다달이 100만 원이 들어간다. 남편 월급으로는 4명 가족 생활비, 부모 용돈, 집 살 때 받은 대출금을 갚기도 빠듯하다. 게다가 최씨 남편은 아이들 학원비로 100만 원이나 써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최씨는 남편 몰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배우자가 회사에 다니고 아파트에 거주하면 주부도 카드를 만들 수 있다는 말에 뿌듯한 마음으로 발급받은 카드다.
현금서비스를 처음 받을 때는 꺼림칙했는데, 아무에게도 손 벌리지 않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빼내는 것이 좋았다. 다음 달에는 최대한 절약하고, 남편 상여금으로 메꾸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최씨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최씨 혼자 절약할 수 있는 생활비에는 한계가 있었고, 예상치 못한 경조사도 많았다.
카드 한 개에 50만 원이던 현금서비스는 순식간에 세 개 100만, 200만, 500만 원이 됐고 1000만 원이 넘어서면서는 계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용금액의 부분 결제가 가능한 ‘리볼빙’ ‘페이플랜’ 등을 이용한 지도 수개월째다. 그것도 제때 갚지 않은 빚일 뿐이라는 사실을 최씨는 애써 외면한다. 현금서비스 이자 구조는 모르지만 남편의 성질만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카드 결제일이 돌아오는 것과 남편에게 발각될지 모른다는 두 개의 시한폭탄을 안고 산다.
60대 김씨는 1년 전 큰아들을 결혼시켰다. 며느릿감을 데려온다기에 기뻐했지만 결혼을 코앞에 두고 마음이 상했다. 스스로 월급 관리를 잘하는 줄 알았던 아들에게 물어보니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이었다. 유지비 부담은 생각지도 않고 덜컥 자동차부터 구매해 다닐 때부터 단속했어야 하는데, 아들을 너무 믿은 것이 탈이었다.
김씨는 며느리가 원치 않는 시집살이를 시켜야 하나 고민하다 적어도 1억 원은 마련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형제들에게도 조금씩 돈을 빌렸다. 빚지기가 싫어서 지금 사는 집을 구매할 때도 받지 않았던 대출이다. 아들은 아들대로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경기도에 전셋집을 마련했다. 현재 김씨가 받은 주택담보대출에서는 매월 24만 원 정도 이자가 나간다. 아들 부부는 부모 용돈이라며 25만 원씩 부치는데, 김씨는 ‘용돈’이라는 말에 실소가 나왔다고 한다. 자녀 교육, 주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최씨와 김씨처럼 사실상 자녀가 져야 할 빚을 대신 지는 부모가 늘어갈 것이다.
잠깐 쓰고 금방 갚으면 되지?
한 금융기관의 대출 창구.
창구 직원은 몇백만 원 때문에 목돈을 해지하는 것이 아깝다며 예금담보대출을 권했다. 4.5% 이자면 다음 달에 5000원도 안 되는 이자가 나간다고 설득했다. 김씨는 폰뱅킹이나 인터넷뱅킹으로 신청하면 더 싸다는 말에 창구에 앉아서 직원 지시에 따라 폰뱅킹을 이용했다. 그때 손쉬운 대출에 감탄했던 김씨는 이제 신용카드 결제일마다 인터넷뱅킹으로 예금담보대출을 신청하고 있다. 다시 직장을 구한 남편의 월급으로 대출금을 조금씩 갚아나가지만, 신용카드 결제일이 되면 다시금 현금이 얼마간 부족해지는 것이다.
예금 만기일이 다가올수록 줄어든 예금액에 대해 남편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도 답답하다. 김씨는 “처음 결심한 대로 그냥 예금을 해지하고, 일부는 다시 예치해 묻은 뒤 나머지 돈으로 아껴서 살았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지 않고 대출을 권하는 은행도 잘못이라는 생각에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빚더미에 앉은 경우도 있다. 지방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다니는 류씨는 대학교에 다니던 2007년부터 학자금대출을 받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부모가 감당해야 할 빚이 몇억 원대를 넘어섰기에 본인이 대학 학자금과 생활비를 전부 충당해야 했다. 류씨가 대학교와 로스쿨을 다니는 동안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학자금 대출은 원금만 5000만 원이다.
그나마 대학교 때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지만, 로스쿨 기간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성적 장학금을 받는데도 월세, 책값, 식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류씨에게는 마지막 보루인 가계신용대출, 일명 마이너스통장이 있었다. 모 은행에서 로스쿨 입학생에게 찾아와 2000만 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을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의 상환 능력이 아닌 미래 소득을 예상해 대출해주는 것은 금융기관이 파놓은 빚의 함정이다.
그러나 류씨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류씨는 “로스쿨에 다닌다고 해서 여유롭게 사는 학생이 아니다”라며 “대출 원금과 이자를 볼 때마다 내년 초 변호사자격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법무법인에 취직하지 못할까봐 두렵다”고 심정을 밝혔다.
빚 안 내면 바보, 못 갚으면 죄인
지난해 한국 가계저축률은 2.7%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0년대 말 20%를 넘었던 것이 2000년 들어 10%까지 떨어지며 급기야 거의 0(Zero) 수준에 가까워진 것이다. 착실히 직장을 다니거나 일하면서 돈을 저축하고, 그 저축으로 점점 집을 넓히는 것은 이제 까마득한 전설이 됐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내일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사람들은 낮은 이자만을 바라보고 돈을 묶어두지 않는다.
‘자기 돈으로 투자하면 바보’라는 말로 금융기관은 사람들을 부추겨왔다. 원금 보전이 안 되는 주식과 펀드에 무조건 투자하고, 전세와 담보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일을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이라고 불렀다. ‘남자는 자동차가 있어야 결혼한다’ ‘자식이 결혼할 때는 부모가 집을 해줘야 한다’ ‘사교육 없이 대학 못 간다’ 등의 변명거리를 대며 생계형 대출이나 소비 대출을 늘리는 구조를 만들 때는 모두가 공범이었다.
빚을 안 내면 바보 취급하던 사회가 이젠 못 갚으면 죄인 취급하는 쪽으로 돌아선 듯한 느낌이다. 대출자들은 분수에 맞지 않게 빚을 낸 죄인이라는 후회와 불안의 감옥 속에 살아간다. 빚을 낼 때는 전화로, 인터넷으로 간편하기만 했는데 갚을 때는 대출자를 도와주는 곳이 그 어디에도 없다.
카드사는 카드론을 받아 결제금액을 충당하라고 안내한다. 자동차회사가 소개해준 캐피털에서는 할부금을 독촉하는 문자와 누구나 손쉽게 대출 가능하다는 문자를 번갈아 보낸다. 보험사 약관대출로 보험료를 내야 하는 부조리한 일도 생긴다. 빚을 갚으려 다시 빚을 내라는 소리다. 연체까지 하면 답도 없다. 독촉받는 일 자체도 스트레스지만, 주변에서 알까 봐 전전긍긍하는 나날이 계속된다. 빚을 독촉받고 회수할 때에야 대출자는 금융기관의 냉정한 본모습을 보게 된다.
가계대출 문제의 심각성이 이미 오래전에 알려졌는데도 정부, 금융기관, 연구소의 진단과 처방은 제각각이다.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하면 금융기관이 부실화할 수 있다는 엄포가 있는가 하면, 저소득층에게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대책을 내놓기도 하지만 현재 부채로 고통 받는 개개인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얘기다. 대출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빚을 갚고 싶다고 속으로만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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