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판교에 있는 디스플레이테크(DTC) 본사와 DTC가 생산 하는 모바일용 LCD 모듈(원 안).
DTC는 액정표시장치(LCD) 모듈을 설계·생산하는 업체로,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노트북, 태블릿PC 등에 사용하는 중소형 LCD 패널 후공정 및 모듈화 작업도 맡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휴대전화는 매달 4000만 대 정도가 생산되는데,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를 사용하는 프리미엄급 1000만 대를 제외한 LCD 제품 3000만 대 가운데 약 15%가 DTC를 거친다고 보면 된다.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벤처 설립
DTC는 2003년 처음 삼성전자에 흑백 LCD를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거래처를 삼성전자로 단일화했고,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11월 6일 DTC가 공시한 바에 따르면, 3분기 매출액은 671억73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1% 늘었다. 영업이익도 46억95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3.7%나 증가했다.
박 대표는 1988년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전자(현 KEC)에 입사했다. 반도체 연구원이자 프로젝트 총책임자로 5년간 일했는데, 그 무렵 회사가 LCD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LCD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LCD 제조라인 근무를 자청했다. 액정에 번쩍번쩍 나타나는 화상에 한마디로‘꽂혔던’ 것이다. LCD 매력에 푹 빠진 그는 LCD 패널에 숫자와 문자, 그래픽 등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LCD 모듈을 직접 개발했다.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LCD 구동용 집적회로(IC)와 백라이트를 작고 가볍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유리에 직접 장착할 수 있는 칩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2년여 동안 LCD ‘한 우물’만 판 끝에 거둔, 일본 기업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쾌거였다.
업계 스타가 된 그는 더 큰 도전을 위해 1996년 당시 대우 계열사 오리온전기로 옮겼다. 그런데 이듬해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98년 오리온전기 내 LCD사업부 자체가 없어졌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것이다.
LCD가 선보일 환상적인 미래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벤처기업 DTC를 설립했다. LCD 모듈에 관한 한 그가 최고 실력자임을 아는 중소 휴대전화 사업자들의 권유가 크게 작용했다. LCD 모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최초의 벤처기업으로 매출은 꾸준하게 이어졌으나, 문제는 대금 회수였다. 휴대전화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중소·중견기업이 난립하던 때라 매출의 10% 넘게 대금을 회수할 수 없었다.
개발 단계부터 꾸준히 기술 교류
그러던 차에 삼성전자가 손을 내밀었다. 2003년 대형 LCD만 생산하던 삼성전자가 모바일용 박막트랜지스터(TFT) LCD 시장에 뛰어들면서 작지만 실력 있는 DTC에게 파트너 제의를 한 것이다. DTC가 자체 개발한 흑백 LCD 모듈을 삼성전자에 납품하고, LCD 패널 후공정도 맡기로 했다. 삼성전자 위탁가공회사가 되면서 박 대표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삼성 외의 크고 작은 거래처를 단계적으로 정리하고 삼성전자에 ‘올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모바일시장에 뛰어든 중소업체가 많았지만, 그는 기술력이나 대금 회수 실적 등에 비춰볼 때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리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거의 맞아떨어졌다.
삼성전자와의 거래를 위해 박 대표는 삼성전자와 맺은 납품계약서를 들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안성에 공장을 짓고, 설비를 사들였다. 그는 “당시 삼성전자가 직접 투자자금을 대주진 않았지만 투자비용을 충분히 고려해 물량을 주문하고 거래를 계속 이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삼성전자가 업계에 떠도는 DTC에 대한 평판만 믿고 거래 제의를 했을까. 그럴 리는 없다. DTC는 앞서 삼성전자에 사내 무선전화기(DECT)를 월 5000대 정도 2년간 납품한 적이 있다. DTC 전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았지만, 박 대표는 “당시 납품실적이나 품질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자부한다. 사업부가 다르더라도 구매 담당자끼리는 통하게 마련이다. TV와 노트북용 LCD만 생산하던 삼성전자는 소형 LCD 사업을 시작하면서 마땅한 위탁가공회사를 물색했는데, DECT 구매 담당자가 “기술 좋고 신뢰할 만한 기업이 있다”며 DTC를 추천했던 것이다.
박 대표는 “현재는 삼성이 요구하는 생산 및 개발 능력을 갖추기도 힘에 부친다”며 “당분간 삼성전자에만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당분간이란 “삼성이 DTC를 버리지 않는 한”이다. 그는 삼성전자가 DTC를 버릴 수 없을 거라는 데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다.
“LCD 위탁가공은 단순히 부품을 사고파는 거래와 차원이 다릅니다. 개발 단계에서부터 꾸준히 기술 교류를 해야 하죠. 기술력과 품질 면에서 삼성전자가 우리를 이만큼 키워놨는데, 쉽게 차버리진 못하죠. 우리도 삼성전자라는 파트너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도록 계속 노력할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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