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원전 전경. 국내 최대 규모 원전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와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는 국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원전은 규모 6.5의 지진과 0.2g(지·중력에 의한 가속도 값을 나타내는 단위)의 지반 가속도(지진으로 실제 건물이 받는 힘)에도 안전하도록 내진설계가 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
교과부 원자력안전과 백민 과장은 “우리나라 원전은 규모 6.5의 지진이 원전 바로 밑에서 나도 냉각수 등의 유출이 전혀 없는 상태를 안전 기준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판 경계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강진이 일어날 위험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의 원전 내진설계로도 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1978년 지진계기 관측을 시작한 이래 규모 5 이상의 지진은 모두 5차례밖에 일어나지 않았을 정도로 중강도 규모 이상의 발생률이 낮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의 의견은 다르다. 먼저, 한반도에서 규모 6 이상의 강진이 일어날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송종순 교수는 “일본 역시 과거의 지진 기록을 참고해 규모 7.1~7.2 정도(0.37g)의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원전을 만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규모 9.0의 강진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규모 6.5 지진에도 끄떡없다?
원전은 한번 폭발하면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이 때문에 단순히 과거 기록에만 의존해 내진설계 기준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홍태경 교수는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 기록을 보면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일본 원전 폭발의 직접적 원인은 지진이 아닌 쓰나미(지진해일)라는 점이다. 일본 원전은 사실상 규모 9.0의 강진도 버텨냈다. 다시 말해 내진설계가 부실해 원전 폭발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뜻. 일본 마쓰야마대학에서 원자력 정책을 강의하는 경제학부 장정욱 교수는 “원전은 지진이 일어나면 제어봉이 원자로에 들어가서 자동적으로 핵분열이 정지된다”며 “후쿠시마 원전은 여기까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설명했다.
비등경수로형 vs 가압경수로형
문제는 쓰나미다. 원자로가 작동을 멈춘 뒤에도 우라늄 핵연료에서는 잔열이 나온다. 쉽게 설명하면, 타고 있는 연탄을 화로 밖으로 꺼내도 연탄이 한동안 열을 내며 타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이 때문에 원자로에 물을 공급해 이를 냉각시켜야 한다. 하지만 쓰나미로 발전소 일대에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물을 공급할 수 없게 됐다. 심지어 비상 상황에 대비해 마련한 디젤발전기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작동하지 않았다. 현재 일본은 바닷물을 넣어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상태. 송종순 교수의 주장이다.
“원자력발전소 입지를 선정할 때, 어느 나라나 기본적으로 과거의 지진 기록, 단층 존재 유무 등을 파악해 안전한 곳을 택한다. 하지만 이번 일본 원전 사태는 지진뿐 아니라 쓰나미가 큰 문제를 일으켰다. 한마디로 원투 펀치가 온 거다. 지진과 쓰나미가 동시에 덮쳤을 때 원자로뿐 아니라 주변 시설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서해는 수심이 낮아 대형 쓰나미가 올 가능성이 적다. 동해안의 쓰나미 높이도 3m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본다”며 “쓰나미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수 있는 동해안에 자리한 울진 원전은 해발 10m 부지에 지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했다.
현재 고리 원전 1, 2호기를 제외한 나머지 원전은 해수면으로부터 10m가량 높은 곳에 건설했고, 고리 원전 1, 2호기는 7.5m 높이의 호안방벽을 원전 앞에 설치했다. 하지만 한 원자력 전문가는 “원전 안전체계가 뛰어난 일본 역시 과거 기록에 의존해 쓰나미 대비 수준을 6.5m로 잡았다. 하지만 10m 높이의 쓰나미가 일어났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원전의 폭발 가능성은 없을까? 교과부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수력원자력은 국내 원전의 발전 방식이 후쿠시마 제1 원전의 발전 방식과 비교해 폭발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후쿠시마 원전은 비등경수로형(BWR·Boiling Water Reactor)이고, 우리나라 원전은 월성(중수로)을 제외하고 모두 가압경수로형(PWR·Pressurized Water Reactor)이다.
두 원전 방식의 가장 큰 차이는 ‘증기발생기’가 있는지 여부다. 전기를 생산하는 터빈을 돌리려면 고압의 증기가 필요한데, 비등경수로형은 원자로 내에서 직접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든다. 이 수증기는 격납용기 밖으로 나가 터빈을 돌리고 다시 물로 바뀌어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 원자로를 식힌다. 그런데 만약 전기 공급이 차단되면 물을 원자로 안으로 들여보내는 펌프가 작동하지 않는다. 물이 순환하지 않으니 원자로 내부 온도가 올라가고, 원자로 안에 있던 물이 끓으면서 수증기로 변해 핵연료봉이 물 밖으로 노출된다.
반면 가압경수로형은 원자로 밖에 있는 증기발생기가 물을 수증기로 바꾸는 기능을 한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원자로 내에서 뜨거워진 물이 증기발생기로 가고, 증기발생기에서 이를 수증기로 만들어 격납용기 밖 터빈으로 보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처럼 전원 공급이 중단돼 물을 순환시키는 펌프가 작동하지 않더라도 ‘자연 순환’이 된다고 강조했다.
100% 안전 말하기 힘든 미완성의 기술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자연 순환’이 되더라도 시간을 얼마나 더 벌 수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 한 원자력 전문가는 “일본처럼 전원 공급이 차단되고, 비상용 전원장치까지 작동하지 않을 경우 우리도 상황은 똑같다”고 말했다. 장 교수 역시 “전원 공급이 안 돼 펌프가 작동하지 않거나, 물이 순환하는 배관이 끊기는 등 물 공급이 안 되면 결국 위험한 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아예 안전성을 구분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환경운동연합 소속 안재훈 씨의 설명.
“비등경수로형과 가압경수로형은 발전 방식이 다를 뿐, 안전성을 구분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가압경수로형을 쓰지만,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두 방식 모두 비슷한 비율로 쓴다. 또한 일본도 비등경수로형이 안전하다고 주장해왔고, 냉각장치에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해 대비하지 못했다.”
각계에서는 국내 원전의 설계를 강화하고 점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원전의 내진설계를 강화할 뿐 아니라, 쓰나미 등 지진과 함께 일어날 수 있는 재해에 대비한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 송 교수는 “원전 안전이 잘됐다고 알려진 일본도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 원전의 내진설계는 물론, 주변 시설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장 교수의 분석은 더 날카로웠다.
“일본은 원전 안전에 대해 제도적으로 가장 엄격한 나라다. 이번 사태는 원전 기술은 100% 안전을 말하기 힘든 미완성의 기술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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