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현장, 썩는 냄새 삶의 흔적에 짠하죠](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11/03/21/201103210500010_1.jpg)
김씨가 건넨 명함에는‘유품 정리 및 사고현장 청소’라고 적혀 있다. 유품 정리 업체는 흔하다. 중고 매입 업체 등을 중심으로 돈 되는 유품을 챙겨 재활용하거나 판매하는 업체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도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거나 피범벅이 된 곳, 시체를 파먹은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곳은 피한다. 김씨는 “우리는 이런 업체가 엄두를 못 내는 곳도 청소한다. 잔인한 영화에서 피가 튀거나 사지가 잘려나간 시체를 볼 수 있지만 진짜 지독한 것은 냄새다.‘송장 썩은 냄새’란 표현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10월부터 60여 건의 현장을 청소했다.
은밀하게 흔적 지우는 일
장례 사업이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한 김씨는 10여 년 전 장례식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부 대학에 장례지도학과가 생기는 등 시장이 팽창하던 때였다. 처음에는 시신을 보고 도망가기도 했고 유족이 울 때면 따라 울기도 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자 곧 담담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유족들이 다른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부패한 시체 냄새 때문에 집이 못 쓰게 됐다”는 얘기였다.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장례식장 일을 접고 본격적으로 특수청소부로 나섰다. 현재 이런 일을 하는 이는 그가 유일하다.
김씨의 작업은 아무도 모르게 진행된다. 숨진 뒤 오래 방치된 시체는 대부분 주변과 연락을 끊고 살던 저소득층이라 유명을 달리해도 주변에선 잘 알아채지 못한다. 특히 이들 중엔 월세를 사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이 세상을 등지고 나면 제일 곤란해지는 게 집주인들이다. 어쨌든 방을 다시 세놓아야 하는 집주인으로선 소리 소문 없이 일을 해주기 원하게 마련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출근하고 퇴근하기 전 또는 모두가 잠든 밤에 일을 한다. 김씨에겐 “제대로 치워라” “조용히 일해라”라고 하는 그들의 잔소리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작업의 시작은 냄새의 근원인 시체 주변을 치우는 일. 그 뒤 큰 짐부터 시작해 모든 물건을 꺼낸다. 큰 장롱이 있을 경우 이를 분리해 트럭 짐칸에 둘러 세워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다. 처리가 가장 곤란한 물건은 침대다. 시체가 침대 위에서 부패하면 그 썩은 물이 고스란히 스며들기 때문. 그는 고인의 일기장이나 통장, 귀금속만 유가족에게 돌려주고 나머지 물건은 모두 폐기한다. 값비싼 전자제품도 전원을 다시 넣으면 열 때문에 배어 있던 시체 썩은 냄새가 나오기에 버려야 한다. 문고리부터 형광등 하나하나까지 모두 닦은 뒤에야 작업은 끝난다. 시체가 심하게 부패됐던 집은 벽지를 모두 벗겨내고 새로 도배를 해야만 흔적을 지울 수 있다. 이제 이 일이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청소한 집에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와 불이 켜진 것을 볼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
김씨가 장례업계에서 일한 지 어언 10여 년, 이젠 그도 ‘달인’이 다 됐다. 문을 열고 들어가 냄새만 맡아도 시체가 방치된 지 얼마가 됐는지 안다. 때로는 시체를 두고 경찰과 다른 의견을 낼 때도 있다. 한 야산에서 노인의 시체가 발견됐을 때 같이 출동한 경찰은 시체의 뒤통수에 있는 상처를 보고 살인 사건으로 추정했지만 그는 단순 실족사로 봤다. 감식 결과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경찰이 현장을 보고 살인이다, 자연사다 미리 판단한 뒤 수사를 진행할 때가 있다”며 아쉬워했다. 현장 보존도 문제다.
“경찰이 먼저 현장을 수습해야 하는데 많이 부패해 악취가 심하면 문만 열어주고 장례지도사 등을 먼저 들여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소 전화 한 통이면 험한 모습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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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유품 정리 업체가 냄새가 고약해 돌아간 한 고시원도 김석훈 씨의 손길이 닿자 깔끔하게 변했다.
“고독사로 숨진 집에는 고인이 가족을 그리워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가족사진을 여러 장 걸어두고 노트나 쪽지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 미안함, 섭섭함 등을 적어둡니다. 유가족은 이를 받아 들고 후회하거나, 반대로 ‘봐서 무엇하겠느냐’며 외면하기도 합니다. 고인과 사이가 안 좋은 가족 중에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는 이도 있어요. 가족관계마저 단절되는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가슴 아픈 사연도 많다. 뜨거운 전기장판에서 숨져 부패가 유독 심했던 한 노인은 딸이 조금만 신경 썼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경우다. 해외출장을 가기 위해 출국 전날 아버지에게 안부 전화를 했던 딸은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이 걱정은 됐지만 ‘잘 계시겠지’ 하며 다음 날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선물을 들고 일주일 만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고, 부검 결과 밝혀진 사망 시각은 딸이 전날 전화를 건 얼마 후였다. 김씨의 동료인 이성환(28) 씨는 “어른들께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전화를 해야 하고 전화를 안 받으면 들러서 확인해야 한다. 방치된 홀몸노인의 경우 시체가 2~3주 만에 발견되면 빠른 편이다. 결국 관심의 문제다”며 안타까워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홀몸노인이 100만 명을 돌파하자,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안부 확인전화를 걸고 직접 방문하게 하는 등 고독사 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김씨도 앞으로 한 복지재단과 함께 무의탁, 무연고 노인이 고독사로 숨질 때 사후처리를 도와줄 예정이다. 그는 “돈 벌려고 특수 청소일을 시작했지만, 유족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에 유품을 정리해주니 고맙다고 인사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금껏 많은 철학자가 죽음을 말했지만 그것은 책상에서 만들어진 인공물이었다. 김씨는 현장에서 있는 그대로의 죽음을 마주한다. 그가 생각하는 죽음이 궁금했다.
“현장에서 일할 때마다 유럽의 한 공동묘지에 적혀 있는 ‘오늘은 나, 내일은 너’란 문구를 되새깁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재확인하지요. 고인이 남긴 물건을 보면 어떻게 살았는지 보입니다. 폐지를 모으며 성실하게 산 사람부터 각종 음란물, 성행위 기구를 모으며 성도착증 증세를 보인 사람까지 다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