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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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장악하려는 中… 미국·일본·필리핀 ‘3각 동맹’으로 맞서

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충돌에 美 필리핀 뒷배 역할 자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04-1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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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중국해가 미·중 패권 다툼의 전략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남중국해 해양 교통로는 생명선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만큼 에너지와 원자재, 상품 수출입 통로 확보에 국가 사활이 걸려 있다. 남중국해는 세계 해상 물동량의 30%가 오가는 해상 교통로다. 미국이 남중국해를 봉쇄한다면 중국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굴복할 수밖에 없다. 남중국해를 장악해야 태평양과 인도양에 적극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중국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야심 차게 추진해온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태평양·남중국해 접한 필리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일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환담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일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환담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을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칫 남중국해와 연결된 태평양 지배권을 상실할 수 있고, 동남아와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도 크게 약화될 수 있어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기존 국제질서가 무력화될 우려도 있다. 동남아와 동북아를 통한 반도체·원자재 공급망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남중국해에는 원유 2130억 배럴, 천연가스 3조8000억㎥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가스하이드레이트도 대량 매장돼 있다.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 지배권을 놓고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의 남중국해 패권 다툼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는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대륙 사이에 자리 잡은 710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군도(群島) 국가다. 섬 대부분이 무인도이고, 사람이 사는 곳은 880개뿐이다. 이름이 붙여진 섬도 2700개밖에 되지 않는다. 이 섬들은 남중국해에 흩어져 있다. 필리핀은 지정학적으로 태평양과 남중국해의 교차점에 자리한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자국 바다로 만들기 위해 제1다오롄(島鏈·Island Chain)과 제2다오롄을 설정하고 이를 통제하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제1다오롄은 일본 열도-난사이제도-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으로 이어지는, 중국 연안에서 1000㎞ 떨어진 지역이다. 제2다오롄은 오가사와라제도-이오지마제도-마리아나제도-야프군도-팔라우군도-할마헤라섬으로 이어지는, 중국 연안에서 2000㎞ 거리의 지역이다. 중국 목표는 제1다오롄을 내해화(內海化)하고, 제2다오롄의 제해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전략에서 최대 걸림돌은 제1다오롄에 걸쳐 있는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중국이 주장해온 이른바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발해왔다. 중국은 면적 350만㎢에 달하는 남중국해의 9곳을 지정해 알파벳 ‘U’ 모양의 남해구단선을 일방적으로 그은 뒤 그 안쪽 바다가 자국 영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필리핀은 국제상설재판소(PCA)에 이를 제소했고, PCA는 2016년 중국의 영해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중국-필리핀 6차례 충돌

    3월 23일 중국 해경선이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접근하려는 필리핀 보급선에 물대포를 쏘고 있다. [필리핀군 제공]

    3월 23일 중국 해경선이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접근하려는 필리핀 보급선에 물대포를 쏘고 있다. [필리핀군 제공]

    그럼에도 중국은 남중국해에 있는 암초와 산호초 사이에 인공섬 7개를 만들고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말 그대로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 전술이다. 인공섬들은 사실상 항공모함 기능이 가능해 남중국해를 무력으로 장악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중국은 필리핀이 실효 지배하는 섬과 암초, 산호초들도 자국 영토로 만들고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과 필리핀은 지난 8개월간 남중국해 스플래틀리제도의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 필리핀명 아융인) 등에서 6차례나 충돌했다. 3월 23일 중국 해경선이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주둔하는 해병대원에 물자를 지원하려던 필리핀 보급선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해 최소 4명의 선원이 부상하고 선체가 훼손된 사건이 대표적 예다. 세컨드 토머스 암초는 필리핀 해안에서 160㎞ 떨어져 있다.



    필리핀 정부는 중국의 강압적인 위협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발생한 중국과 충돌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중국 해경의 불법적이고 강압적이며 공격적이고 위험한 공격들에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점은 미국이 필리핀을 적극 편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맞서는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에 대해 동맹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필리핀이 1951년 8월 30일 미국 워싱턴에서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은 “외부의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양국이 협력해 서로 방위를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약은 한미상호방위조약처럼 무기한 효력을 발휘한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을 저지하고자 해군 함정 등을 동원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여왔다. 이 작전만으로는 중국 정부의 야심을 저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이 필리핀의 뒷배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은 4월 11일 백악관에서 일본, 필리핀과 처음으로 3국 정상회담을 가진다. 이 회담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참석한다. 지난해 8월 한국·미국·일본의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 이어 미국·일본·필리핀의 정상회담이 열리는 셈이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강화하고자 동아시아에서 2개의 3각 동맹 구축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국 정상은 중국의 강압 행위에 맞서기 위해 남중국해 공동 해군 순찰에 합의할 방침이다. 미국과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공동 순찰을 진행한 사례가 있지만, 일본까지 공동 행동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백악관은 “3국 지도자는 깊은 역사적 우정, 강력하고 성장해가는 경제 관계, 공동의 민주적 가치에 대한 자랑스럽고 단호한 헌신,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에 대한 공동 비전을 기반으로 3자 동반자 관계를 진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3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필리핀과 군사·경제 협력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미국은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자국 군이 사용할 수 있는 필리핀 군사기지를 기존 5곳에서 9곳으로 확대했다. 필리핀은 미국 자본의 지원을 받아 대만과 인접한 섬에 항구를 건설할 계획이다. 새 항구가 들어설 곳은 바타네스제도의 바탄섬으로 대만 남부에서 200㎞,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860㎞ 떨어져 있다. 바타네스제도가 있는 바시해협은 서태평양 및 남중국해를 오가는 상선과 해저 통신 케이블이 지나는 길목이다. 괌 기지를 출발한 미 공군 항공기와 해군 군함이 대만해협에 이르는 최단 경로에 위치한 해상로이기도 하다. 미군과 필리핀군은 지난해 4월 바타네스제도 인근에서 1만7000명이 참가한 발리카탄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이 이곳의 새 항구를 사용할 경우 전략적 요충지인 바시해협 장악력을 높이고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비할 수 있다.

    미·일·필 중요 공급망 구축 합의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을 단장으로 한 미국 경제 대표단이 3월 11~12일 마닐라를 방문해 미국 기업들이 필리핀에 반도체, 인공지능(AI), 태양광, 원자력 등 분야에서 10억 달러(약 1조3500억 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3국은 3국 정상회의에서 니켈 등 중요 광물의 공급망 구축에 합의할 예정이다.

    일본도 필리핀과 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11월 필리핀을 방문해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 파병을 용이하게 하는 ‘상호접근협정(RAA)’을 체결했다. RAA는 양국 군대가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거나 재해 지원 등 인도주의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상대국을 방문할 때 병사들의 입국, 무기·장비 반입 절차를 간소화하는 조약을 말한다. 일본과 RAA를 체결한 국가는 호주, 영국, 필리핀 등 3개국이다.

    일본은 또한 필리핀에 6억 엔(약 53억 원) 상당의 연안 감시 레이더 5기를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지난해 4월 우호국에 방위 장비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정부안전보장능력강화지원(OSA)’ 제도를 신설했는데, 첫 적용 국가가 필리핀이다. 일본 측 의도는 필리핀 안보 능력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육상·해상 자위대는 미군, 필리핀군과 함께 섬 상륙작전 훈련, 잠수함전, 해상보급 훈련을 실시할 방침이다. 일본이 역내 안보에 적극 개입하려는 것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일본·필리핀의 3각 동맹 대 중국의 힘겨루기로 남중국해 파고는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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