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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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 배려하던 사람도 큰돈 앞에선 약탈자로 돌변

[돈의 심리] 취리히대 ‘대강도 게임’ 연구… 좋은 사람이 왜 수십억 횡령했는지 규명

  • 최성락 경영학 박사

    입력2024-02-1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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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를 보면 큰돈을 횡령하는 사람이 참 많다. 금융회사 고위직 간부가 고객들이 예금한 돈을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우고, 위험이 높은 금융상품을 금융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에게 판매해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명시적으로 불법은 아니라 해도 부당하고 불공정한 행위를 통해 고객 돈을 가져간다. 전세 사기범은 작정하고 전세 세입자 수백 명을 대상으로 사기극을 벌인다. 회사 내에서도 직원들에게 가야 할 돈을 챙겨 큰 이익을 얻는 횡령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투자금을 모은 후 써버리는 유사수신행위는 잡아도 잡아도 또 생겨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이렇게 큰 금융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손실을 끼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막상 이런 사건의 피해자들 말을 들어보면 범죄자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른 이를 잘 배려하고, 다른 이들에게 돈도 공정하게 잘 쓰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하긴 그렇게 좋은 사람이니 금융기관에서 고위직까지 올랐을 테고, 회삿돈을 다루는 직위를 맡았을 것이다. 또 그렇게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기에 큰돈을 맡겼을 테다. 항상 돈, 돈 하는 사람, 다른 이를 금전적으로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람에게 큰돈을 맡기지는 않는다.

    큰돈을 횡령한 사람, 큰돈을 사기 친 사람은 평소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구걸하는 이에게 돈을 적선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구호단체에 기부금을 잘 내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착한 사람이 다른 이들의 돈을 착복한다. 돈 욕심을 부리는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은 주위에 몇 명의 피해자만 만들어낼 뿐이다. 하지만 평소 착한 사람이 거대한 금융범죄를 일으킨다. 이런 사람은 그동안 자신의 참모습을 숨기고 다른 이들을 속여왔던 것일까. 몇십 년간 본모습을 숨기면서 큰돈을 움직일 수 있는 자리에 오를 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살아온 것일까.

    사람들은 큰돈 앞에선 욕을 먹더라도 돈을 챙기는 경향을 보인다.[GettyImages]

    사람들은 큰돈 앞에선 욕을 먹더라도 돈을 챙기는 경향을 보인다.[GettyImages]

    대다수의 사람 공정성 중시

    카를로스 알로스페레르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 연구팀은 금융기관, 대기업, 경제정책 결정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일반인에게 대규모 손실을 안기는 행태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일어나는지를 알아보고자 ‘대강도 게임(Big Robber Game)’을 고안했다.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이기심, 공정성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독재자 게임, 최후통첩 게임 등을 만들어왔다. 독재자 게임은 실험에 참가한 2명 중 1명에게 독재자 지위를 부여한다. 한 팀에 10만 원을 준 다음 독재자로 하여금 마음대로 돈을 분배하게 한다. 자기가 10만 원을 모두 갖고 상대방에게 0원을 줘도 된다. 자기가 5만 원을 갖고 상대방에게 5만 원을 줄 수도 있다. 독재자로 하여금 자기 마음대로 돈을 나누게 할 때 독재자 자신은 얼마를 갖고 상대방에게는 얼마를 줄까를 살펴보는 것이 독재자 게임이다. 사람이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 존재라면 독재자는 자기가 10만 원, 상대방에게는 0원을 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실험을 해보면 막상 자기가 돈을 다 가져가는 이기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 평균적으로 20~25% 돈을 상대방에게 준다. 반반 나누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다른 이에게 더 주는 사람도 나온다. 자기가 다 가져도 되는데 20~25% 돈을 나눠주는 것이니 사람이 아주 이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정도면 충분히 다른 이를 배려한다고 할 수 있다.

    최후통첩 게임은 한 사람이 돈을 나눌 때 다른 이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절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A가 10만 원 중에서 자기가 8만 원을 갖고 상대방 B에게 2만 원을 주겠다고 할 때 B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A는 8만 원, B는 2만 원을 갖고 집에 돌아간다. 하지만 B가 제안을 거절하면 A, B 모두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A는 B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금액을 제시해야 한다. 이때 A가 B에게 주겠다고 평균적으로 제시하는 금액은 40%가량이다. 자기가 6만 원을 갖고 상대방에게 4만 원을 주겠다고 하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A가 80%를 가져가겠다고 해도 B는 20%라도 가져가려면 이를 수락해야 한다. 하지만 제안자는 그렇게 야박하지 않다. 60% 정도만 자기가 갖겠다고 제안한다. 사람들은 공정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무조건 자기 이익만 챙기지는 않는다.



    액수가 적으면 배려하는 모습 보여

    독재자 게임, 최후통첩 게임은 경제학에서 몇십 년간 계속 실험돼왔다. 취리히대의 대강도 게임은 여기에 한 가지 게임을 추가했다. 지원자 몇십 명을 모아 2명씩 짝지어 독재자 게임과 최후통첩 게임을 했다. 그 실험이 다 끝나고 각 참가자에게 나눠줄 돈이 정해졌을 때 비밀리에 참가자 중 1명에게 대강도(Big Robber) 지위를 준다. 이 1명의 대강도는 다음 중 하나를 결정할 수 있다.

    ① 다른 수십 명의 돈 가운데 각 50%를 자기가 챙길 수 있음
    ② 다른 수십 명의 돈 가운데 각 33%를 자기가 챙길 수 있음
    ③ 다른 수십 명의 돈 가운데 각 10%를 자기가 챙길 수 있음
    ④ 다른 이들의 돈을 건드리지 않음

    이때 대강도 지위에 있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 총 320명이 대강도 지위에서 선택을 했다. 결과는 다른 게임에서 사람들이 관대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랐다. 56%의 사람이 ①번, 즉 다른 수십 명의 돈 가운데 각 50%를 자기가 챙기겠다는 선택을 했다. 이 사람들은 대강도 게임을 하기 전 독재자 게임, 최후통첩 게임을 했다. 그때는 보통 사람보다 특별히 더 이기적이거나 자기 몫만 챙기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수십 명의 돈을 가져올 수 있는 대강도 게임에서는 다른 이들이 소유한 돈의 절반을 자기가 챙기겠다고 나섰다. 선택지가 50%가 최대였기에 50%만 가져왔을 뿐, 그 이상 챙기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대다수 사람이 더 많은 돈을 가져가겠다고 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몫은 건드리지 않는 ④번을 선택한 사람은 2%에 불과했다.

    독재자 게임, 최후통첩 게임에서 자기 몫을 더 챙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약탈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강도 게임에서는 훨씬 더 자기 이익을 챙겼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가장 큰 차이점은 두 가지다. 첫째, 자기 몫으로 챙길 수 있는 액수의 차이다. 독재자 게임에서는 자기가 최대한 챙긴다 해도 10만 원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욕과 비난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과 적당히 나누고 욕을 덜 먹는 선택을 한다. 반면 대강도 게임에서는 몇십 명으로부터 돈을 가져오고, 자기가 챙길 수 있는 돈도 몇백만 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큰돈을 챙길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이 적을 때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정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큰돈일 때는 달랐다. 욕을 먹더라도 돈을 챙기려는 사람이 크게 증가했다.

    둘째, 독재자 게임, 최후통첩 게임은 2명이 한다. 자신의 결정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 상대방은 나 때문에 자기가 피해를 본다는 것을 바로 인지하며 그에 따라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이럴 때 사람은 관대해진다. 자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고 상대에게 어필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대강도 게임에서 상대방은 다수다. 누군지도 모르는 많은 이의 비난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눈앞에 있는 1명의 평가는 중요하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여러 명의 평가는 중요도가 떨어진다. 그런 이들의 평가보다는 그냥 큰돈을 챙기는 편이 낫다

    다수 앞에선 죄책감 적어져

    사람은 이렇듯 개인을 상대할 때와 여러 명을 상대할 때 달라진다. 개개인을 상대할 때는 공정하고 관대하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 쉽다. 하지만 무작위로 여러 명을 상대할 때는 다르다. 죄책감 없이 다른 이들의 돈을 내 것으로 취할 수 있다. 다른 이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훨씬 강해진다. 따라서 다른 이들에게 금전적으로 관대한 사람이 대중의 돈을 횡령하는 것은 일반인 사이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적은 돈을 대할 때와 큰돈을 대할 때, 그리고 몇몇 특정인의 돈을 다룰 때와 여러 사람의 돈을 다룰 때 사람은 달라진다. 대강도 게임은 그런 사람들의 이중적 면을 드러낸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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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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