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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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고 빠른 의사결정 필요

우연에 대처하는 법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gmail.com

    입력2015-12-22 14: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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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하고 빠른 의사결정 필요

    미국 육군 야전교범 3-0 ‘작전(OPERATIONS)’.

    ‘전쟁에서 모든 것은 매우 간단하다. 하지만 가장 간단해 보이는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들이 모여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자는 알 수 없는 전장의 마찰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마찰은 우연과 맞물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세계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1950년대 초반 당시 미국 뉴욕 최대 백화점이었던 메이시스(Macy’s)는 가정용품 판매량의 폭발적인 증가로 혼란에 빠졌다. 기존 추세는 패션상품이 총매출 70%를 유지하는 가운데 나머지 상품이 꾸준히 판매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비심리 변화로 가정용품 판매가 60%까지 늘어났다. 이에 R. H. 메이시 회장은 가정용품 판매를 줄이고 다시 패션상품이 판매 상위에 오르도록 다양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이전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리고 예측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현상에 당황했던 것이다.
    그사이 뉴욕 백화점계 4위였던 블루밍데일스(Bloomingdale’s)가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가정용품 판매 증가를 중요한 징후로 판단하고 이후 백화점 주력 사업에 포함시킨 덕분이었다.

    변화의 수용과 회피, 무척이나 다른 결과

    두 백화점은 코앞에 닥친 우연(chances)을 처리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 메이시스 백화점이 갑작스러운 가정용품 판매 증가를 위험한 현상으로 보고 이를 회피하려 했다면, 블루밍데일스는 이를 기회로 보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갔다. 가정용품 판매 증대를 중요한 징후로 보고 즉각적으로 상황을 분석해 대응책을 내놓은 블루밍데일스와 달리 메이시스는 이를 이상한 예외적 사태 정도로밖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메이시스가 이렇다 할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때 블루밍데일스는 소매 구조를 패션용품 중심에서 가정용품 중심으로 재빠르게 전환했다. 1950년대 가정용품 판매 붐과 함께 블루밍데일스는 뉴욕에 지점을 확장하고, 가구전문점을 열었으며, 디자이너 브랜드 가방을 판매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반면, 전통을 지키기 급급했던 메이시스는 그 자리에 정체돼 한때 부도 위기까지 겪어야 했다.
    메이시 회장은 변화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 필요한 경영자로서의 결단력을 제때 발휘하지 못했다. 이 같은 판단 착오가 그 후 20년 동안 메이시스를 퇴보케 했다. 이전 같은 명성을 다시 되찾은 것은 1970년대 새로운 경영자가 나타난 이후였다.
    미국 육군 기본교리 ‘작전(OPERATIONS)’에서는 ‘우연’을 위기 징후로 본다. 우연은 발생과 동시에 작전을 복잡하게 만들고 예측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군사작전에서는 현장 지휘관의 정확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사건의 발생과 그로 인한 복잡성의 증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작전은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그리고 부하들의 생명이 거기 달려 있다).
    동시에 ‘작전’은 우연을 기회로 보기도 한다. 이 우연의 파장은 아군에게만이 아닌, 적 또는 경쟁자에게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연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 적 또는 경쟁자보다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혁신 기회 잡으려면 분석 잘해야

    ‘작전’은 ‘새로운 작전환경과 위협 속에서 육군을 조직, 훈련, 전력화해 전장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미군의 핵심적 지식을 담은’ 일종의 장교를 위한 교과서다. 사관생도 같은 양성 과정의 학생과 고등군사반이나 지휘참모대 등 보수교육 과정에 입교한 고급장교들은 이 교범을 거의 외우다시피 한다. 즉 ‘작전’은 장교가 평시 교육훈련과 전시 작전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결심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사고체계의 기준이다.
    미 육군은 우연으로 증대되는 마찰, 복잡성,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다음과 같이 명시해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훌륭한 리더십이다. 그중에서도 지휘관의 결단력은 악조건 속에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눈이 된다. 둘째는 융통성 있는 조직이다. 예상치 못한 위기에 처했을 때 돌처럼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조직은 예상하지 못한 기회가 왔을 때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셋째는 믿을 수 있는 기술의 보유다. 이는 이전의 ‘작전’ 버전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군사과학기술의 첨단화로 무인항공기(UAVs) 같은 수단이 전장 패러다임을 바꾸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넷째는 시기적절하고 정확한 정보다. 군사 분야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정보라도 시기를 놓치면 ‘죽은 정보’로 간주하며, 아무리 믿을 만한 것이라도 지휘관의 판단을 느리게 하는 정보의 홍수는 없는 것이 낫다고 본다.
    피터 드러커 역시 저서 ‘위대한 혁신’에서 우연과 기회의 상관관계에 대해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성공은 경영자의 판단력을 시험하는 도전이기도 하다. (중략)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기회로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기존의 보고 시스템이 그런 사실에 대해 경영자가 주의를 기울이도록 경종을 울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징후나 현상을 잘 알아차리기 어렵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중략) 예상하지 못한 성공이 가져다주는 혁신의 기회를 잡으려면 분석을 잘해야 한다.’
    고수들은 극에 달하면 서로 통한다고 했는데 역시 그렇다. 전쟁을 헤치고 나온 미 육군과 현대 경영의 마스터로 일컬어지는 드러커의 우연에 대한 통찰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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