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4

2014.11.24

소박한 ‘와인 주막’, 맛 좋고 분위기 좋고

오스트리아 빈의 호이리게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4-11-24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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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렴한 가격으로 오스트리아 빈의 전통 음식과 와인을 맘껏 즐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찾은 호이리게(Heuriger)는 소박하지만 예쁘게 단장한 선술집이었다. 피처에 담긴 와인을 나르는 분주한 손길, 뷔페로 차려진 푸짐한 음식, 긴 탁자가 늘어선 그곳에서는 낯선 이와의 합석도 자연스러웠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어떤 손님이 가곡을 열창했고 다른 손님들은 갈채로 화답했다. 와인과 서민적인 주막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관이 한순간에 깨지고 오스트리아 빈이 더욱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호이리게는 독일어로 올해를 뜻하는 호이어(heuer)에서 유래한 말이다. 와인 주막을 부르는 단어이면서 갓 수확한 포도로 만든 신선한 와인을 뜻하기도 한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자 문화·예술의 중심지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같은 국제기구가 자리 잡은 빈 곳곳에 이렇게 수수한 와인 주막이 있는 것도 의외지만, 호이리게에서 파는 와인이 빈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사실은 더 놀랍다. 빈 외곽에는 700ha(7km2)에 달하는 포도밭이 있는데, 도시가 팽창하고 발전해도 없어지지 않고 전통을 유지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옛것 대부분을 버린 우리로서는 많이 부러운 일이다.

    호이리게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귀족이 와인 판매권을 독점하려 하자 농민들이 요제프 2세에게 이를 시정해줄 것을 청원했다. 이에 황제는 누구든 자기가 만든 와인과 음식을 자기 집이나 정원, 와이너리에서 팔 수 있게 허락했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호이리게는 베토벤과도 인연이 깊다. 빈 북쪽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에는 온천이 있었는데, 귀가 점점 더 들리지 않아 고통을 느낀 베토벤은 치료차 그곳에 머물며 교향곡 9번 ‘합창’을 완성했다고 한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소박한 와인과 정겨운 음식, 그리고 푸근한 인심에서 위안을 얻으며 작업에 더 전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베토벤이 잠시 머물렀던 집은 지금도 와인을 생산하면서 베토벤하우스(Beethovenhaus)라는 호이리게를 운영 중이다.

    빈 포도밭에서는 다양한 포도가 생산되는데 그중에서도 그뤼너 벨틀리너(Gru¨ner Veltliner)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유명하다. 그뤼너 벨틀리너로는 장기 숙성용 와인도 만들지만, 빈에서는 높은 산도와 상큼한 과일향으로 쉽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그뤼너 벨틀리너의 청량함은 음식의 기름기를 잘 잡아줘 호이리게에서 맛볼 수 있는 육류 요리, 호박씨 기름을 두른 샐러드 등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마치 우리가 기름진 음식과 상큼한 물김치를 같이 먹는 것과 비슷하다. 참고로 빈 전통 음식 슈니첼(schnitzel)은 돈가스의 원조인데, 슈니첼을 먹을 때 ‘고기에는 레드 와인’이라는 공식을 깨고 그뤼너 벨틀리너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느끼함 없이 즐길 수 있다.



    빈을 여행할 때 호이리게는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빈 관광안내 홈페이지(www.wien.info)에 접속하면 빈 곳곳에 자리한 호이리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빈에 굳이 가지 않더라도 돈가스를 만들어 그뤼너 벨틀리너 와인과 함께 즐겨보는 건 어떨까. 집 안에서 소박한 호이리게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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