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2

2014.01.20

한탄강 ‘아이스캠핑’은 추워야 제맛

코끝 찡한 혹한기 얼음 트레킹과 겨울 풍광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

  •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입력2014-01-20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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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탄강 ‘아이스캠핑’은 추워야 제맛

    직탕폭포 아래에 있는 한탄강 모래톱에서 혹한의 겨울밤을 보내다.

    강원 철원은 ‘남한의 중강진’이다. 겨울 이맘때쯤이면 전국 최저기온을 기록하는 날이 다반사다. 혹한에 익숙한 철원 사람에게 영하 10도는 따뜻한 날씨다. 영하 20도 가까이 수은주가 내려가야 “좀 춥네”라고 말하지만, 그런 강추위조차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실 철원은 추운 겨울철에 더 매력적인 여행지다. 광활한 철원평야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한탄강이 꽁꽁 얼어붙어야 외지인 발길이 줄을 잇는다. 혹한기 한탄강에 생긴 얼음 트레킹코스를 걷기 위해서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한탄강 물길 위 얼음 트레킹코스는 물 위를 걷고 싶다는 사람들의 비현실적인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준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

    총길이 136km, 평균 강폭 60m쯤 되는 한탄강은 북녘땅의 평강 황성산에서 발원한다. 평강, 철원, 포천 등 방대한 용암대지 위로 굽이쳐 흐르다 경기 연천에서 임진강에 합류한다. 1억9000만 평(6억2800여만 ㎡)에 이른다는 이 광활한 용암대지는 약 27만 년 전인 신생대 제4기 유동성 풍부한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통해 흘러나오는 열하분출이 수차례 거듭된 끝에 만들어졌다. 용암대지는 풍화나 침식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한탄강 거센 물길은 수만 년에 걸쳐 넓고 평평한 용암대지를 깊숙이 침식시키며 ‘凹’(요) 자 모양 협곡을 만들었다.

    오늘날 한탄강 물길은 30~40m 깊이로 움푹 팬 협곡 아래로 흐른다. 그래서 먼발치 들녘에서는 강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강 양쪽 깎아지른 절벽에 올라서야만 물길을 굽어볼 수 있다. 이처럼 지형이 독특한 한탄강을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부르기도 한다. 옛날부터 큰여울, 한여울, 섬내, 대탄(大灘) 등으로도 불린 한탄강(漢灘江)은 ‘한탄강(恨嘆江)’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해방 이후 남북분단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해온 강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땅을 모두 적시며 흐르는 데다 6·25전쟁 당시 곳곳에서 격전이 벌어져 강물이 온통 붉은 핏빛으로 물들기도 했다.



    한탄강 얼음 트레킹코스는 대개 상류 쪽 직탕폭포에서 시작해 약 5.3km 떨어진 하류 쪽 승일교 아래에서 마무리된다. 얼음 상태가 좋을 때는 승일교에서 1.5km쯤 더 걸어가는 지점에 있는 고석정에서 끝나기도 한다.

    한겨울 직탕폭포는 얼음폭포다. 높이 3m, 폭 80m 규모의 폭포가 꽁꽁 얼어붙으면, 물 흐름은 보이지 않고 폭포수 소리만 우렁차게 들린다. 직탕폭포에서 다음 경유지인 태봉대교까지는 약 600m에 불과하다. 지척 거리지만 얼음 위를 걷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두 곳 사이 한탄강 물길은 웬만큼 추운 날이 몇 날 며칠 계속되지 않으면 단단하게 얼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는 강 동쪽 기슭과 위쪽으로 이어지는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태봉대교에서 직선으로 약 800m 거리에는 한탄강에서 가장 깊다는 송대소가 있다. 이곳이 한탄강 얼음 트레킹코스의 하이라이트다. 강 양쪽 기슭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수직절벽은 뜨거운 용암이 물을 만나 급격히 식으면서 형성된 주상절리로 뒤덮였고, 절벽 곳곳에는 크고 작은 얼음폭포가 군데군데 생겨나 독특한 풍광을 자아낸다. 우리나라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진풍경에 보는 사람마다 탄성을 연발한다.

    송대소에서 승일교 아래까지 이어지는 트레킹코스의 풍정은 매우 다채롭다. 단단히 얼어붙은 얼음 위를 걷는 구간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사각거리는 모래톱을 밟기도 하고, 잠깐 동안은 조붓한 산길을 지나기도 한다.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가파른 바윗길 구간도 있다.

    한탄강 ‘아이스캠핑’은 추워야 제맛

    1 맑고 차가운 한탄강 겨울 밤하늘. 2 한탄강 얼음 트레킹코스 출발지인 직탕폭포. 3 송대소의 주상절리 암벽에 형성된 얼음폭포.

    얼음 위 텐트 안전이 최우선

    얼음길 끝에서 만나는 승일교는 분단 아픔이 깊게 밴 다리다. 철원이 북한에 속했던 6·25전쟁 이전 시작된 승일교 건설공사는 철원이 남한 땅으로 수복된 6·25전쟁 이후에야 끝났다. 그래서 다리 이름을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름 가운데 한 자씩 따 ‘승일교’로 붙였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6·25전쟁 당시 큰 전공을 세운 박승일(朴昇日) 대령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도 하고, ‘김일성을 이기자’는 뜻에서 승일교(勝日橋)라 명명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승일교는 여전히 튼실하지만 이제는 사람만 통행할 수 있다. 자동차는 바로 옆에 새로 놓인 한탄대교를 이용한다.

    한탄강은 이른바 ‘아이스캠핑’을 즐기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 위에서 즐기는 아이스캠핑은 스노캠핑 못지않게 캠퍼들을 달뜨게 한다. 하지만 아이스캠핑은 어떤 형태의 캠핑보다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아무리 단단한 얼음도 언젠가는 녹거나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00% 확신이 서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고민되는 곳에는 절대 텐트를 설치해서는 안 된다.

    안전한 캠핑을 즐기기에는 얼음 위보다 물가 모래톱이 더 적당하다.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우려되는 여름철과 달리, 겨울철 강변 모래톱은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캠핑사이트다. 하지만 민가나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은 피하는 게 좋다.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 어려울뿐더러, 화장실이나 급수시설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들을 두루 감안하면, 겨울철 한탄강은 직탕폭포, 송대소, 승일교, 고석정 근처 강변에 형성된 모래톱이 추천할 만한 캠핑사이트다.

    겨울철 철원여행에서는 이른바 안보관광을 겸한 탐조여행을 빼놓을 수 없다. 맛 좋기로 소문난 오대쌀의 고향인 철원평야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겨울철새 도래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철원평야의 절반 이상은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 위치한다. 정해진 절차를 밟아 민통선 안에 들어가면, 철새를 관찰하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다. 비무장지대(DMZ)와 민통선 안팎 철원평야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 수가 워낙 많은 데다 비교적 몸집이 큰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1호), 큰기러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DMZ 안 철원평야에는 옛 태봉국 도성이 있었지만, 이제 풀과 잡목만 무성한 그곳에서 태봉국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남과 북을 가르는 철책만 견고히 설치돼 있다. 철원군 동송읍 중강리 민통선 내 철원평화전망대에 올라서면 옛 태봉국 도성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북녘땅이 된 평강고원과 6·25전쟁 당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수없이 되풀이됐던 백마고지, 김일성고지(고암산), 피의 능선, 아이스크림고지도 모두 가시권에 든다.

    민통선 탐조·안보여행

    한탄강 ‘아이스캠핑’은 추워야 제맛

    옛 경원선 간이역이던 월정리역사.

    철원평화전망대에서 직선거리로 2km쯤 떨어진 서쪽에는 옛 월정리역과 철원두루미관이 있다. 경원선 철로가 지나던 월정리역의 녹슨 철로에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 폭격에 부서진 인민군 화물열차 잔해가 남아 있다. 바로 옆에는 철의삼각지전망대 건물로 지어졌다가 지금은 철원두루미관으로 탈바꿈한 3층 콘크리트 건물이 우뚝하다. 두 곳까지 모두 둘러보면 탐조를 겸한 민통선 안보여행은 얼추 마무리된다.

    이제 옛 조선노동당사 옆에 있는 제5통제소를 통해 민통선 밖으로 나가는 일만 남았다. 월정리역과 제5통제소 사이 도로변에는 일제강점기 서울 중심가 일부를 옮겨온 것처럼 번화했다는 옛 철원읍 시가지 흔적이 남아 있다. 제2금융조합, 농산물검사소, 얼음창고 등의 건물 잔해는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제5통제소 근처 87번 국도변에는 옛 조선노동당사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 때까지 조선노동당의 철원 군당(郡黨)이 자리했던 러시아식 건물이다. 건립 당시 조선노동당은 리(里)당 쌀 200가마씩을 성금으로 거뒀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 건물 내벽은 거의 다 무너졌고, 6·25전쟁 당시 쏟아진 포탄과 총탄 자국으로 성한 데가 별로 없다. 게다가 외벽마저 칙칙해 흉가처럼 스산한 느낌이 든다. 전쟁 상흔으로 얼룩진 이 잔해를 보노라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분단의 아픔이 새삼 가슴을 무겁게 한다.

    여행정보

    ● 탐조를 겸한 안보여행 안내

    통행이 자유로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밖 철원평야에서도 재두루미, 두루미, 쇠기러기 같은 겨울철새를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대규모 철새 떼를 관찰하려면, 고석정관광지 안에 자리한 철의삼각전적지 관광사업소(033-450-5558)에서 정식 절차를 밟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민통선 안에서의 탐조를 겸한 안보여행은 주중에는 개인 승용차도 이용할 수 있지만, 주말이나 휴일에는 고석정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관광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든 안내자나 해설사가 동승한다.

    ● 숙식

    한탄강 ‘아이스캠핑’은 추워야 제맛

    어랑손만두국의 이북식 만둣국.

    직탕폭포와 고석정 사이 한탄강 물길 양쪽에는 모닝캄빌리지(010-2477-2005), 썬베네스트(033-452-5673), 금비펜션(033-455-4400), 디퍼펜션(033-455-7273) 등 펜션이 즐비하다. 고석정관광지 안에 위치한 한탄리버스파호텔(033-455-1234)에서는 온천욕도 즐길 수 있다.

    직탕폭포 옆에 위치한 직탕가든(033-455-6560)과 폭포가든(033-455-3546)은 민물고기매운탕을 잘하는 집으로 소문났다. 고석정주차장 앞 어랑손만두국(033-455-0171)은 크고 두툼한 이북식 손만두가 맛있는 집이다. 그 밖에 한우를 싸고 푸짐하게 맛볼 수 있는 민통선한우촌(033-452-6645)과 60여 년 전통의 막국수전문점 철원막국수(033-452-2589)도 철원의 대표적인 맛집으로 손꼽힌다.

    ● 가는 길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의정부IC→의정부 장암주공삼거리(우회전)→축석검문소삼거리(우회전, 43번 국도 포천 방면)→신철원 군탄사거리(좌회전, 고석정 방면)→한탄대교→고석정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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