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8

..

싱가포르는 세계 금융허브로 간다

글로벌 투자은행에 이어 금 보관소까지… 내부 갈등에 따른 ‘중년의 위기’ 현상도

  • 최원근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pijepa@hanafn.com

    입력2013-10-14 11:5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싱가포르는 세계 금융허브로 간다

    싱가포르 금융가 전경.

    최근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쿠퍼스(PwC)는 이르면 2015년 싱가포르가 자산운용 시장에서 스위스를 추월해 최고 국제금융센터로 등극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양국 중앙은행 발표에 따르면, 자산관리 시장의 자산운용 규모가 2012년 싱가포르는 1조3000억 달러, 스위스는 3조 달러로 아직 절대적 격차가 2배 이상 난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계기로 싱가포르 시장의 성장세가 만만치 않다. 2012년에는 전년 대비 22% 급증했다.

    대외지향적 경제개발 기조 차별화 전략

    급성장의 주요 배경을 보면 첫째,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권에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의 경기가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며 민간 부문에서 창출하는 부(富)가 상대적으로 급성장했고, 싱가포르는 선진 시스템을 앞세워 이들을 대거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역시 세계적 컨설팅 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권 민간 부문 부가 2012년 28조 달러로 전년 대비 13.8% 증가해 다른 지역을 압도하는 성장률을 달성했으며(서유럽 5.2%, 북미 7.8%), 5년 후에는 70% 증가한 48조 달러의 부를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둘째, 많은 비(非)아시아권 투자자가 아시아권의 견조한 성장세를 보고 그 과실을 따먹으려고 아시아 시장에 새롭게 참여하거나 투자 비중을 높이는 데 필요한 거점으로 싱가포르 시장을 택하고 있다.

    싱가포르 자산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근래 글로벌 투자은행이 싱가포르에 경쟁적으로 금 보관소를 설치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이는 신흥 금 소비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과 인도의 금 수요에 대처하는 거점으로서 싱가포르의 강점을 인정한 결과다. 자산 유입의 높은 성장세에 따라 현재 싱가포르에는 주요 글로벌 금융기관을 포함해 다국적 자산운용사 6000여 곳이 영업 중이다. 반면 기존 자산관리 최대 시장인 스위스의 경우, 근래에 금융 비밀주의 원칙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판과 투명성 요구 추세로 수세에 몰리면서 시장 성장성이 적잖게 위축될 소지가 크다.

    싱가포르가 아시아 금융허브를 넘어 세계적 금융허브를 꿈꿀 수 있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싱가포르가 일찍이 개방체제와 대외지향적 경제개발 기조 하에서 차별적 경쟁우위 확보 전략을 구사한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천연자원 하나 없는 조그만 도시국가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지리적 특성을 활용하려는 생존 전략이었다. 싱가포르는 뚜렷한 경쟁력 확보 전략으로 기업친화적 경제환경 조성을 대표적으로 추진했고, 해외 자본 및 기업을 적극 유치하면서 수출과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갔다. 이를 위해 법인세율과 개인소득세율을 지속적으로 인하해왔으며, 사회와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려고 반부패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자원 빈국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조성한 개방경제 환경은 무역을 핵심 산업으로 만들었다. 이는 유통업과 금융업을 포함해 서비스산업에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했으며, 정부 역시 이를 중점적으로 육성해왔다. 특히 1980년대 세계경기 불황에 노출되고 노동집약적사업인 제조업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심화되자 정부는 대처 방안으로 서비스산업과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경제의 주력 엔진으로 삼는 정책을 지향했다. 이에 서비스산업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최근에는 국내총생산(GDP)의 7할을 상회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외자 직접투자의 경우 70%에서 90% 이상까지 서비스산업에 들어간다.

    특히 싱가포르는 금융산업의 고부가가치성을 인식하고 국제적 금융허브 육성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먼저 역외달러 중심으로 국제금융시장 육성 정책을 파격적으로 시행했다. 즉 1968년 유로달러 시장을 벤치마킹한 ‘아시아달러 시장’을 개설하면서 외환규제를 철폐하고 역외달러 예치금에 대해 지준의무를 면제했다. 허가된 역외은행은 아시아달러 시장에서 일반 은행과 같이 모든 금융업무 수행이 허용됐다. 이제 싱가포르 외환시장은 거래 규모에서 세계 4위,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가 됐다.

    국제적 친기업환경 조성

    싱가포르는 세계 금융허브로 간다

    싱가포르는 다국적기업 유치를 위해 외국인 자녀의 교육환경 개선에도 적극 나섰다. 대표적인 국제학교 UWCSEA 초등반의 수학시간 모습.

    2000년대 들어와서는 발전한 금융인프라와 인구의 15% 정도를 차지하는 무슬림을 활용해 이슬람금융 육성에 나섰다. 2004년부터는 이슬람금융허브 구축까지 노려 중동국가들과 연이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합작사업을 성사하는 등 적극 노력해왔다. 최근에는 중국 경제 확장세를 토대로 홍콩 못지않은 역외 위안화 금융허브를 조성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했다.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하는 중국 처지에서는 외연 확대를 위한 해외 거점 마련 차원의 윈윈(win-win)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싱가포르가 개방정책을 토대로 하는 차별적 경쟁우위 전략으로 기업친화적 경제 및 금융환경을 조성한 결과는 성공적이다. 이제 싱가포르는 장기간 고도성장을 실현하면서 부존자원 없는 열대권 국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선진경제권에 진입한 나라가 됐다. 경제환경은 국제 수준의 높은 기업친화성을 보여 2012년 기준 세계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국가 1위(세계은행 발표), 경제자유도 2위(미국 헤리티지재단), 국제경쟁력 2위(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4위(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청렴도 5위(국제투명성기구)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기업활동 관련 규제 완화, 정부의 과도한 개입 최소화 같은 직접적 요인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안정과 통화정책의 안정적 운영도 거시적으로 기여했다.

    금융산업 및 환경은 종합적으로 최상위권 수준이며, 특히 금융환경은 세계 1위 수준이다. 2012년 WEF 발표에 따르면 종합 세계 4위이며, 금융중개와 금융 접근성 수준 역시 상위권으로 각각 세계 10위와 14위를 기록했다. 이에 외국인 투자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도 크지 않은 편이다. 투자유치 최대 부문은 금융 및 보험서비스 산업으로, 특히 2005년 이후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그동안 국가적으로 강력하지만 단선적으로 추진해온 정책 기조의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복지 수요 급증, 빈부격차 심화, 출산율 저하에 따른 해외인력 의존 등 사회상의 변화에 따른 갈등이 표면화하면서 사회적, 정치적으로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이른바 ‘중년의 위기’ 현상도 나타난다. 이에 사회적 다원주의를 요구하는 여론이 일각에서 분출되면서 정치권은 정치 개혁과 소통 강화를 약속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를 도시국가 차원에서 실현하고자 쉼 없이 달려온 싱가포르가 이제 어떠한 명제와 전략을 만들어낼지 자못 궁금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