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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어나니머스’ 너의 실체가 뭐냐?

전 세계에 퍼진 익명의 해커 집단… 정의의 사도 or 비겁한 무법자 극단적 평가

  •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어나니머스’ 너의 실체가 뭐냐?

‘어나니머스’ 너의 실체가 뭐냐?
요즘 프랑스 언론은 앞다퉈 ‘어나니머스(Anonymous)’ 관련 소식을 다루고 있다. 정의와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혜성처럼 나타나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이들의 정체와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나니머스란 본래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댓글을 달거나 자료를 게재하는 불특정 다수의 누리꾼을 가리켰던 말인데, 요즘은 전 세계에 퍼진 해커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일컫는다. 한때 어나니머스를 한 사람이 움직인다는 설이 있었으나, 지금은 인터넷 검열에 반대하고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누구나 어나니머스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어나니머스의 활동은 이제 인터넷을 벗어나 현실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어나니머스의 첫 번째 활동은 2006년에서 2007년에 걸쳐 있었다. 미국 앨라배마의 한 테마파크 내 수영장에서 두 살배기 유아를 에이즈 환자란 이유로 쫓아내자 수영장 측의 태도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소셜네트워크 게임의 일종인 ‘하보 호텔(Habbo Hotel)’에 접속해 회색 옷을 입은 흑인 아바타를 만든 뒤 ‘에이즈를 이유로 수영장 출입금지’라는 메시지를 남기고는 네트워크 폭주로 접속을 마비시킨 것이다.

16∼21세 평범한 누리꾼

‘어나니머스’ 너의 실체가 뭐냐?

2011년 11월 8일 유튜브에 올라온 어나니머스 참여 안내 동영상.

이 사건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어나니머스의 활약은 2008년에도 계속됐다. 그해 1월, 유튜브에 영화배우 톰 크루즈가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와 관련 있음을 보여주는 영상이 공개되자 사이언톨로지 측이 영상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며 유튜브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러자 어나니머스는 ‘사이언톨로지와의 전쟁’을 선언한 뒤 사이언톨로지의 공식 홈페이지를 마비시키고 사무실 전화와 팩스까지 차단했다. 그리고 사이언톨로지 교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때 한 멤버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하는 ‘브이’의 마스크를 쓰고 참여한 바람에 이 마스크가 어나니머스의 상징 이미지가 됐다. ‘어나니머스는 영혼을 조종하는 모든 것에 대항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시위는 3월과 4월에도 이어졌는데 매번 8000여 명의 지지자가 참여했다. 그리고 미국 시카고와 보스턴은 물론,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등에서도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같은 해 6월에는 어나니머스를 비방한 ‘SOHH(Support Online Hip Hop)’ 사이트가 공격을 받았다. 게시판 기능이 멈춘 데 이어 디도스(DDoS) 공격으로 사이트 전체 기능의 60%가 마비됐다. 이후 SOHH 설립자인 펠리시아 팔머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해커들의 신원 파악을 의뢰했는데 수사 결과 해커 대부분이 텍사스에 거주하는 16∼21세의 평범한 누리꾼으로 드러났다.

어나니머스는 중동권 국가를 뒤흔든 일련의 혁명에도 일조했다. 2009년 이란에서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에 반발해 수많은 이란 국민이 시위에 나서자 어나니머스가 현지 해커들과 합세해 ‘이란 어나니머스’ 사이트를 창설했다. 그 덕분에 이란인뿐 아니라 수만 명의 세계인이 접속해 이란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으며, 부패한 정치를 보고도 침묵했던 국민이 저항에 나서는 기회가 마련되기도 했다.

2011년에는 튀니지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그간 벤 알리의 독재로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던 튀니지 국민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월 2일 어나니머스는 튀니지 정부의 주요 홈페이지 8개와 시스템을 마비시킨 데 이어 TV7 채널을 해킹해 종일 정규방송 대신 자신들의 메시지를 아랍어로 내보냈다. “기자들 모두 튀니지 경찰의 탄압을 거부하고 블로거인 슬림 아마무의 자유를 원한다.”

어나니머스는 호스니 무바라크가 소속된 정당과 정부 관련 홈페이지를 모두 마비시키며 이집트 혁명을 돕고, 시리아 국방부 홈페이지를 해킹해 ‘시리아 국민이여! 세계인 모두가 그대들 편에 섰으니 알아사드의 정책에 대항하라’는 메시지를 며칠 동안 게시했다.

종교, 언론, 정부 네트워크 공격

진정 표현의 자유와 사회 정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로빈 후드를 가장해 무법 행위를 하는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프랑스 어나니머스는 2월 초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인터넷을 통해 퍼뜨렸다. 괴이한 마스크로 얼굴을 감춘 어나니머스는 변조된 음성으로 프랑스 청년실업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석사학위를 받은 젊은 인재가 수년째 실업자인 세상’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학교를 막 졸업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신입채용은 적고 경력채용이 거의 대부분인 프랑스 기업의 실태를 꼬집는 것은 물론, 면접 과정에서 인종차별과 성희롱, 인격적 비하 등을 일삼는 일부 고용자를 비난했다.

프랑스에서 공신력을 인정받는 ‘렉스프레스(L’express)’가 처음 발견한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은 “드디어 어나니머스의 새로운 공격 대상이 결정된 것이냐” “인적자원부를 해킹하려는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 정부와 기업은 초긴장 상태다. 그들이 염려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09년 프랑스 정부가 인터넷상의 P2P 다운로드로 인한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려고 ‘아도피(Hadopi)법’을 제정하자 어나니머스는 관계기관 벽면에 자신들의 로고를 새겨 위협했다. 또한 아도피법을 담당하는 고위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을 해킹해 공개하기도 했다.

어나니머스에 대한 프랑스 내 평가는 엇갈린다. 먼저 ‘렉스프레스’ 편집장인 크리스토프 바르비에는 “이름 없는 편지를 받으면 왠지 꺼림칙하다”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주장하려면 숨는 것보다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이와 더불어 디도스 등의 공격이 과연 표현의 자유를 방어하는 올바른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이러한 의견 표명이 그만 화를 불렀다. 어나니머스가 ‘렉스프레스’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것이다. 바르비에 편집장은 “우리는 국민에게 정보를 알릴 권리가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위한 단체라면서 정작 모두의 알 권리를 공격하는 행동은 이해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번 사건은 오히려 자사 홈페이지를 대폭 수정하는 계기가 됐다”며 “공격하고 싶으면 어디 한번 해보라”고 강경하면서도 여유롭게 대응했다.

반면 환경 정당인 유럽 생태 녹색당(EELV)의 2012년 대선 후보 에바 졸리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어나니머스를 두둔했다. “어나니머스의 대응책 일부가 과한 선택일 수 있지만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일깨워주는 바가 크다”며 “개인 신상 공개나 무차별적 공격은 염려스럽지만 어나니머스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어나니머스는 우스꽝스러운 마스크 뒤에 정체를 가린 정의의 사도일까, 아니면 단순히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위험조직일까. 피폐한 세상을 구할 슈퍼맨이 그리운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신기루는 아닐까.



주간동아 827호 (p58~59)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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