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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심영섭의 ‘시네마 천국’

일상의 틈 사이로 불쑥 찾아온 불륜

실비오 솔디니 감독의 ‘사랑하고 싶은 시간’

일상의 틈 사이로 불쑥 찾아온 불륜

일상의 틈 사이로 불쑥 찾아온 불륜
남자는 여자의 머리를 말려주며 부드럽게 속삭인다.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걸.” 여자는 남자에게 되묻는다. “지금은 늦었을까?” 남자에겐 아이 둘과 조강지처가 있고, 여자에겐 자상하고 솜씨 좋은 동거인이 기다리고 있다. 숫자만 보면 안정이 되는 여자 안나와 숫자만 보면 머리가 아픈 남자 도메니코는 목하 연애 중이다.

금지된 사랑 이야기. 그중에서도 불륜의 역사는 유구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안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철로에 몸을 던진 또 다른 안나를 알고 있으며, 그 끝의 대가가 무엇인지도 이미 견적이 나와 있다. 그러나 영화 ‘빵과 튤립’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감독 실비오 솔디니의 손에서 이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 이야기는 ‘안나 카레니나’의 신화적 격정이 아닌 일상 속으로 침잠한다.

영화의 전반부에 걸쳐서 배치된 것은 남과 여의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일상의 비루함이다. 목욕탕을 고치는 비용부터 신발 수선비까지, 돈의 문제는 불한당처럼 불쑥 사람들의 삶에 개입한다. 도메니코의 아내 역시 끊임없이 남편에게 가불을 재촉하고, 딸은 발레를 배우고 싶다며 아빠를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본다.

그러나 이 일상의 그물망에 포위돼서도, 욕망은 죽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명함을 주고, 여자는 먼저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감독은 첫 정사를 분기점으로 그 전에는 안나의 시점에서 도메니코를 바라보고, 그 후에는 도메니코의 시점에서 안나를 바라보는 전략으로 남과 여의 미묘한 심리적 차이를 드러낸다. 영화의 원제 ‘What more do I want’처럼, 영화는 내내 관객에게 ‘당신이 무엇을 더 원하는가?’라고 질문한다.

안나는 직장 상사가 그의 세 번째 여자친구에게 이것저것 선물을 주려 하는 광경을 보고 도메니코에게 전화를 건다. 반대로 남자는 몇 푼 가불하려고 친형을 찾아갔다가 모욕만 느끼고 거절당하자 안나에게 전화 걸어 “내가 보고 싶지 않았냐?”고 묻는다. 부러움, 질투, 분노, 위안, 위로. 복잡다단한 마음의 지층에서 나오는 사랑의 문제. 대상이 누구든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들. “때론 한순간을 잊는 데 전 생애가 필요하다”와 같은 대사와 편집의 행간 사이에 박혀 있는 두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묘미. 이것이 바로 ‘사랑하고 싶은 시간’의 진정한 매력이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주인공들의 욕망은 직설화법을 애써 피하고 주의 깊게 화면 너머를 응시하지 않으면 수면 아래에 잠긴 욕망과 감정도 드러나질 않는다. 예를 들면 첫 장면, 동생의 출산을 돕고 밥을 하고 손님을 맞고 출근하는 안나. 무심히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그녀는 영화 내내 짙은 스모키 화장, ‘빨간색’ 드레스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하고 나타난다. 한편 스페인이 고향인 도메니코는 잠수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 밖에서는 초라한 출장 웨이터에 지나지 않지만, 물 안에서만큼은 물고기처럼 날래고 든든하다. 그런 도메니코에게 그의 딸은 “아빠는 어떤 물고기를 좋아하냐?”고 물어본다. 안나와 도메니코의 욕망 역시 일상의 표면 아래서 잠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의 만나고 헤어지는 도돌이표는 우리가 다 아는 절차를 밟는다. 미안함, 수치심, 드러남, 발각, 용서, 재결합의 의지. 실비오 솔디니는 시종일관 흔들리는 들고 찍기 화면으로 이 불안과 긴장, 격정과 열정에 흔들리는 두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뒤쫓는다. 그 끝은 무엇인가? 도메니코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해외여행을 감행했던 안나는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귀고리를 빼버린다.

안나 역의 알바 로르워처는 난니 모레티가 영화 ‘조용한 혼돈’에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상반되는 격정을 숨긴 중산층 여인을 온몸을 던져 소화하고 있고, ‘라스트 키스’ ‘언노운 우먼’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배우 피에르 프란체스코 파비노가 도메니코 역을 맡아 열연한다.



주간동아 2010.12.06 765호 (p88~88)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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