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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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프신가요? 다른 사람에게 관심 둘 때 치료되죠”

이혜민 기자가 만난 혜민 스님 - “대학교수와 스님 생활 병행 큰 인연”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0-06-07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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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아프신가요? 다른 사람에게 관심 둘 때 치료되죠”
    인연이라 부를 만한 만남이 얼마나 될까 싶냐마는 간혹 그러한 인연이 찾아온다. ‘젊은 날의 깨달음’(클리어마인드 펴냄)을 쓴 이와의 만남이 그랬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분과 나의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실은, 실타래처럼 이어지는 인연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좋은 이를 벗으로 삼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그분의 책을 읽으며 인연을 기다렸다. 되새기고 싶은 구절을 찾으면 밑줄도 그었다.

    “내가 승려가 된 이유는 이렇게 한 생을 끝없이 분투만 하다 죽음을 맞이하기 싫어서였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성공의 잣대에 올라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 나의 모습을 염려하면서 그들의 기준점과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평생을 헐떡거리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승복을 입게 된 후 가장 큰 변화라면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목표를 이룬 후에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내 주변을 살피면서 조건 없이 나누어줄 때 행복이 바로 나와 같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젊은 날의 깨달음’ 중에서)

    미국 매사추세츠 주 햄프셔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혜민(慧敏) 스님이 책 발간에 맞춰 한국을 방문했다. 조계사 부근 찻집에서 스님과 조우했다. 스님과의 대화는 역시 ‘이름’으로 시작됐다.

    “이름이 같네요. 은사 스님께서 지혜롭고 민첩하게 살라며 지어주신 법명이에요. 좋아하는 중국 천태종 큰스님들도 혜자 돌림이 많았는데, 같은 혜자를 쓰신 걸로 알고 있어요.”

    학문 갈증에서 삶에 대한 갈증으로



    혜민 스님은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 석사를 수학하던 중 출가를 결심했다. 2000년 봄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아 조계종 승려가 됐고, 후에 프린스턴대학원에서 박사를 마친 뒤 2007년부터 대학 강단에 섰다.

    “서부에 계신 작은아버지께 가면 제가 좋아하는 영화 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 싶어 미국에 갔어요. 그러다 우연히 기숙사로 돌아가던 길에 빨간색 승복을 입은 린포체 스님(티베트 승려)과 대화하면서 불교명상법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분이 잘해주시니까 고마웠는데 그것을 인연으로 스님에 대해 알고 싶고, 불교라는 학문을 더 깊게 배우고 싶어 종교학을 전공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학문에 대한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했는데, 여전히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더군요. 삶의 목적을 찾아 스님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학교수와 스님 생활을 병행하는 그의 일상은 촘촘하다. 주말에는 은사 스님 절(불광사)에서 종교 활동,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평일에는 학교에 머물며 강의에 전념한다. 천주교 수사와 함께 ‘비교종교학’ 수업을 맡아 학생들의 종교에 대한 이해를 돕고, ‘논어’ ‘도덕경’ 등을 읽으며 토론하는 현대불교 세미나를 꾸린다. 빠듯한 일정이지만 매일 ‘법화경’을 독경하기 때문인지 어려움도 모르고 지나간다. 불교에 대한 학생들의 열의가 높아서 지칠 새도 없다.

    “미국에서 불교 과목은 전공과 관계없이 학생들이 듣고 싶어 하는 과목입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불교학개론의 인기가 많아 한 반에 100, 200명이 기본입니다. 조교가 7명씩 들어오죠. 미국 학생들은 3, 4학년에 인턴십을 하며 취업을 준비하기 때문에 1, 2학년 때는 삶의 목적을 찾는 등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데 공을 들입니다. 달라이 라마의 영향 때문인지 불교가 평화적이고 실용적이라고 인식해 불교학 수업에도 열심입니다.”

    한국불교 알리기 남다른 노력

    “마음이 아프신가요? 다른 사람에게 관심 둘 때 치료되죠”
    아쉬운 것은 학생들에게 한국불교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한국불교는 몰라요. 1930년대에 다이세쓰 스즈키라는 일본 학자가 칼 융 같은 대학자들과 교류하면서 글을 많이 썼지요. 이제는 그가 전한 일본 선불교가 정통이 됐어요. 한국불교는 수행방법도 다이내믹하고 가르침에도 파워가 있지만, 밖에서는 한국에 하안거·동안거하면서 정진하는 큰스승이 계시다는 걸 몰라요. 전파할 만한 큰스님들의 사상과 건축양식이 있지만 한국불교를 모르니 아쉬울 뿐입니다.”

    한국불교를 알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 지원책 확충이다. 불교 연구자들은 공부할 인연을 어느 나라에서 맺느냐에 따라 후에 그 나라에서 승려 생활을 할 뿐 아니라 그 나라 불교를 연구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그들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스님이 “좋은 건물만 지어놓지 말고 인재불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래야 소프트파워를 갖춘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5월부터 내년 9월까지 안식년을 맞는 스님은 당분간 규장각에 머물 계획이다. 한국불교를 제대로 공부해 전파하고 싶다는 열의가 작용했다.

    혜민 스님은 이처럼 한국불교를 알리는 데 관심을 두지만 교육자이자 스님으로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고 했다(이 대목에서 스님에게 신바람이 전해졌다). 도움 전할 길이 많기 때문이다.

    “한 학생이 아랍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학생과 함께 인터넷 서핑을 하죠. 그러다 보면 좋은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되고, 추천서도 열심히 준비해주면 그 학생이 기회를 잡아요. 그런 과정에서 학생도 기쁘고 저도 기쁜 거예요. ‘교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들으면 일주일이 기분 좋거든요. 신도님도 똑같아요. 불자님이 이민국에서 추방당할 것 같아 이민 변호사 알아보고, 상원의원한테 편지 쓰고 해서 결과적으로 추방되지 않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분들의 밝은 웃음을 보는 게 정말 좋아요.”

    스님은 마음이 힘들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특효 처방전이 있다고 했다.

    “보살님들이 자꾸 내 문제, 내 안의 문제를 어떻게 풀까 하면서 자신의 마음만 살피는데, 그걸 놔야 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둘 때 내 문제도 해결되는 거예요. 좀 전에도 어떤 보살님께 문을 살짝 잡아드렸더니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 들으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요. 작은 것이라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고민을 풀어줄까, 생각하다 보면 자연히 나도 좋아져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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