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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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도 억! 억! 외제차 수리비

4억 원 물게 된 이모 씨 법정 싸움 … “나도 당할라” 대물 1억 이상 보험 가입 급증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06-07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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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쳐도 억! 억! 외제차 수리비

    종잇장처럼 구겨진 시가 4억5000만 원 람보르기니.

    2009년 6월 12일 오후 2시 경북 구미시 원평2동 산업도로. 자가용 NF쏘나타를 몰던 이모(43) 씨는 경북 김천에서 회사 교육에 참여한 뒤 부산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1차선에서 달리던 이씨는 무심결에 2차선 3.5t 탁송차 앞으로 끼어들었다. 충돌을 걱정해 탁송차 운전자 남모 씨가 3차선으로 피했지만, 쏘나타는 결국 탁송차의 옆을 박았다. 탁송차는 충격을 받아 도로 우측 보호대를 들이받았고, 실려 있던 이탈리아제 고급 스포츠카 람보르기니는 방음벽을 뚫고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시가 4억5000만 원의 흑색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LP640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서졌다.

    당시 도로 아래 애견미용학원에서 수업을 받던 채성민(23) 씨는 “천둥 치는 듯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람보르기니에서 나온 비싼 부품이 학원 앞마당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현장 사진을 인터넷 인기 게시판에 올렸다. 누리꾼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구미경찰서 이정화 경사 역시 “워낙 흔치 않은 사건이라 당사자들도 당혹스러워했다”고 회상했다.

    사고 당해도 더 많이 피해 보상

    사고 직후 집계된 피해액은 람보르기니 4억5000만 원, 탁송차 2000만 원, 방음벽 550만 원 등 약 5억 원. 쏘나타 운전자 이씨가 가입한 대물보험은 한도가 1억 원이었다. 만일 이씨가 모든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면, 이씨 개인이 4억 원가량을 보전해야 하는 상황. 결국 합의를 보지 못하고 사건은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으로 넘어갔다.

    10개월 만에 판결이 났다. 올 4월 재판부는 이씨에게 람보르기니와 그 운전자에 5억2318만9520원, 탁송차와 운송회사에 2820만 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집행유예 2년, 금고 8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에 불복하고 대구지방법원에 재소한 상태. 1심 당시 사건을 맡았던 부산지방검찰청 한용희 검사는 “이씨로서는 다른 교통사고에 비해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외제차라는 이유만으로 부담이 과중돼 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에서 폴크스바겐, BMW, 도요타 캠리 등 유명 외제차를 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등록된 수입차는 총 6만993대. 2000년 4414대의 13.8배, 1990년 2325대의 26.2배다. 그러다 보니 외제차 관련 교통사고가 느는 것도 당연지사. 하지만 외제차는 그 몸값만큼 수리비도 남다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외제차 평균 수리비는 2008년 기준 263만 원. 80만 원인 국산차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이처럼 외제차 수리비가 국산차보다 높은 것은 수입업체가 해외 현지의 부품 구입가격에 관세, 부가세, 운임 등 부대비용 명목으로 30~40%를 부가해 공급가격을 매기기 때문이다.

    실제 외제차를 수리할 때 공임과 부품 마진율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했다는 법원 판결도 있었다. 서울 서부지방법원 민사1부는 2008년 2월 신호대기 중인 BMW 승용차 뒷부분을 들이받아 수리비로 4916만 원을 배상한 택시기사에 대해 “3040만 원만 적정 수리비고 나머지는 과잉청구”라고 판결을 내렸다. 사고가 난 BMW는 1억6000만 원 상당으로 직접적인 충격을 받지 않은 앞좌석 시트까지 모두 교환했다. 재판부는 “외제차 수리를 맡은 회사가 부품 마진율을 부품 공급가격의 10배로 매기는 등 부당이익을 챙겼다”라고 판단했다.

    한편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외제차 관련 시비는 안 걸리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 운전자 대부분의 생각이다. 기아K5 운전자 유지환(30) 씨는 올 2월 올림픽대로 잠실 방면에서 뒤에서 달리던 외제차 아우디 A6 3.2와 쌍방 과실 접촉사고를 냈다. 국산차 과실비율이 30%, 외제차 과실비율이 70%로 결론 났지만, 유씨는 과실이 적은데도 상대방 차가 워낙 비싸 자신이 더 많은 비용을 보전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았다. 유씨는 “값비싼 외제 승용차에 받히는 것도 손해라는 말을 온몸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보험개발원 수리비 인하 방안 추진

    그러다 보니 외제차 공포증까지 생겼다. 15년 무사고 운전자 박정숙(51) 씨는 “주변에 외제차가 있으면 피해간다”고 말했다. 이젠 ‘남들이 알아서 피해주니 외제차 운전자들은 운전이 편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 BMW 750Li를 운전하는 김재용(28) 씨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면 옆 차가 상당히 간격을 두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외제차 ‘사고폭탄’이 두려워 고액 보험을 드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가장 많은 가입자가 선택하는 대물 보장기준은 2005년에는 3000만 원(49.6%)이었으나 2009년에는

    1억 원까지 늘려 보장받는 가입자가 76.5%로 가장 많았다. 1억 원 이상 보장해주는 보험을 가입한 사람도 전체 가입자의 7.9%나 된다. 2005년 2.7%보다 5.2% 늘었다. 대물 보장 1억 원 이상 가입자 김진수(52) 씨는 “1, 2만 원만 더 내면 되므로 이왕이면 안전하게 1억 원 이상 가입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액이 보험에서 보장해주는 금액 이상이면 그 폭탄을 그대로 덮어쓸 수밖에 없는 현실. 그래서 보험개발원은 외제차 수리비 자체를 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개발원 정채웅 원장은 5월 “외제차 보험금의 지급 기준인 차량 기준가액 제공을 늘리고, 협력정비공장 제도를 활성화해 보상비용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외제차 수리비 기준을 표준화하기 위해 미국 미첼사가 개발한 수리비 전산견적 시스템을 참고하고, 차량수리용 대체부품 사용을 활성화하겠다는 것.

    또한 자기 차량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인 자차보험료를 외제차는 큰 폭으로 올리고, 국산 자동차는 인하하는 방안도 도입했다. 수리비와 부품값이 높은 도요타 렉서스ES는 보험료가 기존 대비 최대 45% 오르고, 기존 보험료에 비해 수리비와 부품값이 낮았던 제네시스, 뉴 렉스턴 등 국산차는 최대 30%까지 인하 혜택을 보게 되는 것. 보험개발원 이재원 선임은 “그동안은 국산차 운전자가 수입차 수리비를 대신 내주는 구조였다면, 이번 등급 개선으로 합리적인 보험료 책정이 가능해졌다”고 해석했다.

    스쳐도 억! 억! 외제차 수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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