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9

2009.06.09

자살, 범죄냐 명예로운 선택이냐

문화·사회적 인식 따라 뚜렷한 시각차 … 속죄, 자기희생, 징벌 등 다양한 의미로 수용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9-06-05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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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을 접하고 애도와 추모의 정을 감추지 못하는 한국인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의 ‘본질적 의미’와 관련된 해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주요 포털사이트와 언론사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볼 수 있는 두 가지 의견은 “얼마나 억울했으면 자살을 선택했겠는가”와 “끝내 자살까지 한 것을 보면 잘못한 건 사실인가 보다”이다.

    최근 인터넷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장은 서양에서는 자살을 ‘속죄’의 의미로, 동양에서는 ‘결백’의 의미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살의 의미와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 동서양의 차이라기보다 문화적, 사회적 인식의 차이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유일 신앙이 뿌리 깊은 나라에서는 자살을 죄악, 더 나아가 범죄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일부 문화권에서는 역사적으로 자살을 오히려 명예로운 선택으로 여겼다.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고대 로마에서는 철학자들이 삶의 허무함 등을 느꼈을 때 지인들을 초대해놓고 자살하는 것을 하나의 의식(儀式)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일본 봉건시대 무사들은 실수나 실패를 하면 할복(割腹)으로 명예를 회복했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등장한 자살특공대 ‘가미카제’로 이어졌다. 최근까지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큰 스캔들에 휩싸인 일본의 거물급 정치인과 관료 가운데 자살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1945년 이후 현직 의원이나 각료가 자살한 사례만도 8건에 이른다.

    유럽에서도 정치인의 자살이 큰 파문을 일으킨 사례가 적지 않다. 2003년 독일의 위르겐 묄레만 전 부총리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스카이다이빙 도중 스스로 추락해 숨졌고, 1993년 프랑스의 피에르 베레고부아 전 총리는 총선 전 한 기업인에게서 무이자로 100만 프랑(약 1억4000만원)을 빌린 사실이 보도되고 후폭풍을 맞는 과정에서 청렴한 이미지가 훼손되자 자살을 선택했다. 독일 나치당 당수 아돌프 히틀러 역시 전쟁 패배 후 1945년 자살했다.

    미디어 발달로 모방 자살 우려 커



    몸문화연구소 김종갑 소장(건국대 교수)은 “자살의 경우 종교보다는 계급적 전통과 귀족 문화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에 따라 사회적 수용도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유럽 일본 등에서와 달리 미국에서는 명예가 훼손됐다고, 또는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한 지도자급 인사들을 찾기 힘들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한 “공동체 문화가 발달한 집단적인 사회, 그리고 계급제적 전통이 강해 명예가 목숨보다 중요한 가치로 존중돼온 사회에서는 자살이 대중에게 쉽게 수긍되는 가치임에 반해, 개인주의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지극히 비경제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로 인식된다”고 덧붙였다.

    김양래 휴신경정신과 김양래 원장은 “자살의 원인은 자기 징벌(주로 남성의 경우), 자기희생, 속죄, 회피 등으로 다양하다”면서 “인터넷 등의 발달로 세계가 대개 공통된 가치를 갖게 된 현대사회에서는 시대에 따라 자살에 대한 시각도 달라져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특히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문화권에 상관없이 유명인의 자살이 모방사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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