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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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만큼 밭 잘 가는 닭, ‘치킨 트랙터’의 워낭소리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04-16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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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소만큼 밭 잘 가는 닭, ‘치킨 트랙터’의 워낭소리

    문밖의 낯선 세계. 두려움보다 새로운 걸 추구하고자 하는 닭들이 주변을 조심스레 살핀다.

    우리는 시골 살면서 여러 짐승을 키워보았다. 개, 염소, 토끼, 논에 넣는 오리…. 그런데 10여 년 세월이 흐르면서 삶도 자꾸 달라진다. 짐승이 주는 장점보다 단점을 더 크게 느낀다. 짐승에게 매이니 하루라도 집을 비우기가 어렵다. 또한 사람이 어딘가에 매이는 걸 싫어하듯 짐승 역시 매인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차츰 짐승을 줄여가다가 이제는 닭만 몇 마리 키운다. 닭 역시 키우기는 번거롭지만, 거름과 달걀을 주니 그나마 키우지 않을 수가 없다. 닭 말고는 고양이가 있지만 이놈은 사실 사람이 키우는 게 아니라 제 발로 들어와 집 둘레를 근거지로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저 알아서 산다.

    짐승을 키우다 보면 ‘짐승에게 최선의 환경이란 뭘까’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에게도 좋고 짐승에게도 좋은 환경이 있을까. 짐승이 괴로우면 이를 먹는 사람에게도 그리 좋을 것 같지 않다. 닭만 해도 그렇다. 닭장이 좁으면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수탉끼리 영역 싸움은 기본이요, 암탉끼리도 먹이 싸움에 주도권 다툼이 일어난다. 텃세도 보통 심한 게 아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닭장이 좁다 보면 알을 낳는 둥지도 네 것, 내 것이 없다. 알이 모여 있는 곳에다 같이 알을 낳는다. 품는 것도 그렇다. 한 놈이 품고 있으면 그 속에다 다른 놈이 알을 낳으려 하니, 이래서는 병아리를 제대로 까기가 어렵다. 자급자족 삶에서 어미닭이 품어서 깐 병아리는 보물에 가깝다.

    고민 끝에 이동식 닭장을 만들기로 했다. 알 품는 어미닭과 수탉 한 마리만 고정식 닭장에 남기고 나머지 닭을 옮겨본 것. 이동식이니까 되도록 작고 가볍게 짓는다. 비닐집을 짓는 파이프를 4m 길이로 잘라 돔 모양으로 한 뒤, 파이프 두 개를 열십(十)자로 고정했다. 그 다음 횟대를 만들고, 철사가 든 철망으로 두른 뒤 비닐을 지붕 삼아 씌워 비와 해를 가릴 수 있게 했다. 가로와 세로가 2m 남짓, 높이는 1m20cm 정도.



    ‘이동식 닭장’에서 착한 닭 키우기

    이동식 닭장은 그 이동성만큼이나 새로운 영감을 준다. 그중 하나가 밭갈이다. 요즘은 논밭을 대부분 기계로 간다. 기계는 규모화, 대량화에 알맞다. 작은 규모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기름값에다 유지관리비가 많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동식 닭장은 작은 규모 밭갈이에 안성맞춤이다. 닭은 발로 땅을 파는 습성이 있다. 한 발을 들고 갈퀴처럼 앞에서부터 뒤로 땅을 파헤친다. 풀은 뿌리가 뽑히고, 땅속에 살던 벌레는 닭 먹이가 된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닌 듯하지만 슬렁슬렁하는 이 몸짓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많이 팔 때는 10cm 넘게 판다. 또 구석구석을 파니 닭장을 자주 옮겨줘야 한다. 앞뒤 사정이 이러하니 이동식 닭장을 ‘치킨 트랙터(Chicken Tractor)’라고도 한다.

    닭은 사람이 넣어주는 알곡보다 벌레를 더 좋아한다. 사람이 주는 먹이보다 제 스스로 땅을 파헤쳐 나오는 것이 더 싱싱하고 영양가도 높고 믿을 수 있을 테니까. 유기물이 많은 땅은 그 속을 뒤지면 온갖 벌레가 나온다. 굼벵이, 거세미 애벌레, 지렁이…. 심지어 겨울잠에서 깨어나려던 개구리까지 나오면 냉큼 쪼아 먹는다.

    이렇게 닭장 구석구석을 파헤쳐 먹이를 잡아먹지만 이것들이 무한정 많은 게 아니기에 풀이나 미처 발아하지 않은 풀씨를 먹는다. 이런 닭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니 이거야말로 ‘완전한 밭갈이’가 아닐까 싶다. 만일 기계로 땅을 간다면 그 순간에 돋아난 풀은 잡을 수 있지만, 땅 표면에 떨어져 아직 싹트지 않은 풀씨에게는 아주 좋은 조건이 된다. 즉 기계로 땅을 갈아엎으면 방치된 풀씨를 땅에 골고루 심는 꼴이 된다. 여기에 견줘 닭은 풀씨도 알뜰히 먹지만 닭똥은 거름으로도 좋다. 기름 대신 생체에너지로 밭을 가니 일석삼조다.

    또한 닭은 흙이나 모래 목욕을 좋아한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한쪽 날개를 펴고, 한쪽 발로 땅을 세차게 긁는다. 그러면 흙과 모래가 깃털 사이로 들어간다. 그런 다음 온몸을 마구 흔든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깃털 사이에서 사는 벼룩 같은 벌레를 털어내기 위해서다. 그야말로 닭의 흙 목욕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그리고 닭은 모래나 작은 돌도 먹는다. 닭을 비롯한 조류는 이빨이 없기에 작은 돌을 먹어 모래주머니에서 음식을 부수게 한다.

    그렇다고 3000㎡ 되는 밭을 다 닭으로 갈기는 어렵다. 시기도 곡식을 본격적으로 심는 5월 초까지만 가능하다. 길게 보면 가을걷이 끝나고 이른 봄까지다.

    황소만큼 밭 잘 가는 닭, ‘치킨 트랙터’의 워낭소리

    <b>1</b> 완성한 이동식 닭장. 좁은 환경에서는 텃세가 심하다. <br> <b>2</b> 암탉이 먹이 활동으로 땅을 파헤치고 있다.<br><b>3</b> 사람이 다가가면 방목 중인 닭은 찔레덩굴 속으로 몸을 숨기거나 나무 위로 날아오른다. 사람에게 길들여지기 전, 야성의 모습이다.<br><b>4</b> 수탉 다리. 길고 날카로운 발톱 하나는 며느리발톱으로 싸움이나 교미용이다.

    야생으로 돌아가려는 몸놀림이 생명의 본성

    이동식 닭장을 하면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닭장을 이동하는 순간이다. 닭장을 옮긴다고 한 뼘 정도만 움직여도 닭은 잽싸게 새로운 흙을 파헤친다. 새로운 먹이와 환경을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그야말로 짠하다.

    사람도 그렇지 않나.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려는 욕구는 어쩌면 모든 생명의 속성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닭과 교감을 나누면서 저녁 해 지기 전에 가끔 한 시간 정도는 닭을 닭장에서 내놓는다. 그럼 처음에는 닭장 바로 앞에서 먹이 활동을 한다. 점차 멀리 간다. 그러다 보면 먹을거리는 다양하고 많지만 그만큼 천적도 많아진다. 땅에서는 고양이나 사냥개가, 하늘에서는 매가 노린다. 그럼에도 닭은 그냥 내버려두면 야생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생명의 본성은 익숙한 환경에 길들여지기보다 조금 위험하더라도 새로운 걸 추구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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