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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25) 천더밍(陳德銘)

쑤저우 특급 발전 일구고 승승장구

최첨단 기술공업단지 조성 새 모델 창출 … 국무원 상무부장으로 새 역할 주목

쑤저우 특급 발전 일구고 승승장구

쑤저우 특급 발전 일구고 승승장구
‘원원얼야(溫文爾雅·온문이아).’ 태도가 온화하고 행동거지가 우아하다는 뜻으로, 지난해 12월29일 국무원 상무부 수장에 임명된 천더밍(陳德銘·59·사진) 상무부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다.

주위 사람들은 남에 대한 비판도 천 부장이 하면 ‘화풍세우(和風細雨)’ 같다고 한다. 산들바람과 보슬비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워 상대방이 잘못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상무부장에 임명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막대한 무역흑자, 미국 유럽과의 무역 마찰, 위안화 절상, 외국 자본의 인수합병(M·A) 등 화약내 풀풀 나는 문제들을 협상과 타협을 통해 원만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응, 편하게 해. 물 마실래? 담배 피워도 돼. 나 상관하지 말고.”

차를 탈 때마다 그가 운전사에게 하는 말이다. 이처럼 그는 주위 사람을 아주 편하게 대한다.



새로운 수장을 맞이한 상무부 직원들은 전임자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당서기와 천 상무부장을 자주 비교한다. 나이는 같지만 성격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천더밍’ 하면 중국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쑤저우(蘇州) 발전모델의 창시자’다. 자칫 잘못하면 실패할 뻔했던 쑤저우공업원구를 그는 연간 무역액 500억 달러가 넘는 최첨단 기술공업단지로 바꿔놓았다.

쑤저우시는 1992년 서부에 국가급 개발구를 설치했다. 이어 1994년 5월부터 싱가포르 정부와 합작으로 동부에 쑤저우공업원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시에 2개의 개발구가 존재하다 보니 기업과 자금 유치에 경쟁이 붙었고, 크고 작은 마찰이 계속되자 싱가포르는 1997년 12월 철수를 선언했다.

당시 쑤저우 시장이었던 그는 양측 협상이 1년을 끌어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직접 싱가포르로 날아갔다. 천 상무부장의 집요하고도 저돌적인 담판 자세에 싱가포르는 결국 철수 결정을 접었고, 매년 40%가 넘는 성장을 거듭한 끝에 쑤저우공업원구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6000달러가 넘는 개발구로 발전했다.

하지만 쑤저우공업원구가 유명해진 것은 눈부신 경제성장률 때문이 아니다. 바로 친상(親商), 애상(愛商), 부상(富商)이라는 친(親)기업적 3상 서비스 정신과 전혀 중국 관리 같지 않은 쑤저우시 공무원들의 행정서비스 때문이다.

공무원들 대민 서비스 정신 개선

싱가포르와의 협상 과정에서 싱가포르 행정제도의 우수성을 깨달은 그는 쑤저우시는 물론 산하 현(縣)의 주요 간부들까지 모두 싱가포르로 보내 직접 경험하고 배우게 했다.

“국가간 합작은 어느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쑤저우공업원구 개발을 통해 싱가포르의 선진적 행정관리 제도와 서비스 정신을 배웠습니다. 정부 차원, 특히 인재 배양 차원에서의 협력은 일찍이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는 후일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자평했다.

경제가 가장 발달한 동부 연해지역 장쑤(江蘇)성에서 21년 남짓 일했던 그는 2002년 5월 중국 서부 산시(陝西)성의 상무부(副)성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부에서의 성공 경험을 서부로 확산시키라는 중앙지도부의 의도가 담긴 인사였다.

하지만 그는 동부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추진하지 않았다. 산시성은 쑤저우시와 달리 자원과 과학교육, 지리적 위치에 따른 경쟁력이 있었고 이를 잘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가 동부에서의 경험 중 가장 강조한 것은 관리들의 대민(對民) 서비스 정신이다.

“정부는 주민이 스스로 생활을 개선하고 기업을 일으켜 수입을 늘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주민이 정부를 향해 손을 벌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산시성 관리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그리고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정부 투명도를 높이는 일도 병행했다.

이런 변화를 지켜본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사는 2006년 5월 시안(西安)에 2억5000만 달러를 들여 반도체 공장을 세웠다. 영국의 엔진 생산업체 커민스는 2005년 12월 산시(陝西)자동차그룹과 합작으로 산시성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했다.

일과 휴식 조화 새로운 지도자 유형

쑤저우 특급 발전 일구고 승승장구

쑤저우공업원구

1949년 3월 상하이(上海)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무선전파 분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스스로 TV를 조립할 정도였다. 지금도 집에 있는 가전제품이 망가지면 직접 고친다고 한다. 고치는 일이 즐겁기도 하지만, 평소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천 상무부장의 설명이다.

대도시에서 평안한 생활을 누리던 그에게 천지개벽 같은 삶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문화대혁명 때다. 1968년 12월22일 마오쩌둥(毛澤東)은 “지식청년은 농촌에 가서 빈한한 농민에게 재교육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이듬해 그는 267만명의 청년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산간 오지인 장시(江西)성 루이진(瑞金)현 셰팡(謝坊)진으로 하방됐다.

그는 매일 농민들과 함께 일했지만 늘 쪼들리고 배고파 남몰래 오이를 훔쳐 먹기도 했다. 천 상무부장은 지금도 중국의 유명 문호 루쉰(魯迅)의 단편소설 제목이자 그 주인공인 쿵이지(孔乙己)처럼 “책을 훔치는 것은 절도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5년간 농사일을 한 그는 1974년 장시 공산주의노동대학(현 장시 농업대학) 농기계과에 들어가 3년간 공부한 뒤 장시성 농기국에 배치됐다.

그의 관운이 트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 11월 장쑤성 식품공사로 배치되면서부터다. 이후 거의 2년을 넘기지 않고 승진할 정도로 그는 순조롭게 달렸다.

1988년 천 상무부장은 난징(南京)대 국제상학원에서 수량경제 석사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가 어려워질 무렵 그를 지도하던 저우싼둬(周三多) 교수는 그에게 일을 잠시 중단하고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난징대 중미문화센터에서 매일 외국인 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하며 영어실력이 부쩍 향상된 것도 이 시기였다. 1996년 그는 관리학 박사까지 취득하며 몇 안 되는 박사 관원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일할 땐 집중하지만 근무시간이 끝나면 홀로 자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산시성장 시절에도 주말만 되면 아내와 함께 조용히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이 같은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서양물을 제대로 먹은 중국 관리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역시 조만간 일과 휴식의 조화가 일반화되는 중등사회로 변모할 것이다. 천 상무부장은 이런 사회에 걸맞은 중국의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인 셈이다.

천더밍 프로필

·한족(漢族)

·1949년 3월생

·상하이 출신

·1974년 9월 중국 공산당 입당

·난징(南京)대 국제상학원 관리과 기업관리 전공

·경제학 석사, 관리학 박사

·1969년 4월 사회 입문

1969. 4~1974. 9 장시(江西)성 루이진(瑞金)현 셰팡(謝坊)공사 지식청년으로 근무

1974. 9~1977. 9 장시 공산주의 노동대학 총교(總校) 농기(農機)과 졸업

1977. 9~1980. 11 장시성 농기(農機)국 기술 간부

1980. 11~1985. 10 장쑤(江蘇)성 식품공사 가공냉장과 과원, 부(副)과장

1982 장쑤성 타이저우(泰州) 육련창(肉聯廠) 부공장장

1984 장쑤성 상업청 판공실 부주임, 상업청 당조(黨組) 성원, 성 식품공사 경리

1985. 10~1993. 6 장쑤성 상업청 부(副)청장, 당조 성원

1993. 6~1996. 8 장쑤성 정부 부비서장

1996. 8~1997.11 장쑤성 정부 부비서장, 판공청 주임

1997. 11~1998. 1 장쑤성 쑤저우(蘇州)시 부서기, 대리시장

1998. 1~2000. 6 쑤저우시 부서기, 시장

2000. 6~2000. 12 쑤저우시 부서기, 시장, 쑤저우공업원구공위 서기

2000. 12~2001. 11 쑤저우시 위원회 서기, 쑤저우공업원구공위 서기

2001. 11~2002. 5 장쑤성 상무위원, 쑤저우시 서기, 쑤저우공업원구공위 서기

2002. 5~2004. 10 산시(陝西)성 위원회 상무위원, 부성장

2004. 10~2005. 2 산시성 위원회 부서기, 대리성장

2005. 2~2006. 5 산시성 위원회 부서기, 성장

2006. 5~2007. 11 국가발전 및 개혁위원회 부주임, 당조 부서기(정·正부장급)

2007. 11~2007. 12 국무원 상무부 당조 부서기, 부부장

2007. 12. 29~현재 국무원 상무부장, 당조 서기

               제17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주간동아 2008.06.24 641호 (p52~54)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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