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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자’는 인간의 타락인가 진화인가

‘주홍글자’는 인간의 타락인가 진화인가

‘주홍글자’는 인간의 타락인가 진화인가

호손이 일부러 생략한 헤스터와 딤스데일의 러브신을 되살려놓은 영화 ‘주홍글씨’는 소설 ‘주홍글자’를 애정소설로 둔갑시킨 죄로, 사과(Apology)를 의미하는 주홍빛 A자를 달아야 한다는 비판을 듣는다.

17세기 초 청교도에 대한 영국 국교회의 탄압을 피해 남편과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건너온 헤스터. 이후 그녀는 남편보다 먼저 그곳을 떠나 뉴잉글랜드(미국) 보스턴에 도착한다. 그러나 2년 넘도록 남편에게서 소식이 끊기자 그녀는 교회의 젊은 목사 딤스데일과 사랑에 빠지고 사생아 펄을 낳는다. ‘간음하지 말라’는 출애굽기의 일곱 번째 계명을 어기고 만 것이다. 결국 그녀는 청교도 법에 따라 사형을 당할 처지에 놓이지만, 남편의 사망 가능성이 참작돼 극형만은 면한다.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손이 1850년에 펴낸 ‘주홍글자’(The Scarlet Letter·민음사)는 헤스터가 태어난 지 3개월 된 펄을 가슴에 안고 감옥 문을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감옥 생활을 마친 뒤 몇 시간 동안 처형대에서 공개적으로 치욕당하는 형벌을 받은 헤스터의 웃옷에는 간통(Adultery)을 상징하는 ‘A’자가 화려한 주홍빛 헝겊에 금실로 꼼꼼하게 수놓아져 있다. 때마침 어느 노학자가 우연히 처형대에 서 있는 그녀를 목격한다. 남편인 프린 영감이었다.

간통 상징하는 ‘A’ 그리고 신산한 헤스터의 삶

인디언에게 납치됐다 돌아온 그는 칠링워스라는 가명으로 의사 행세를 하며 아내 헤스터에게 자신의 정체를 남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협박한다. 또한 펄의 아버지를 밝히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복수를 다짐한다. 한편 죄의식으로 점점 쇠약해지는 목사 딤스데일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교회 일과 학문에 열중하기 때문이라면서 더욱 그를 숭배한다. 이런 딤스데일에게 접근한 칠링워스는 그의 주치의로 한집에서 살며 간통의 확증을 잡는다. 그러나 즉시 복수하지 않고 집념 깊은 복수의 유령처럼 딤스데일이 양심의 가책과 고뇌를 오랫동안 느끼도록 하면서 그 모습을 관찰하는 악취미를 즐긴다.

주홍글자 A를 평생 달고 다녀야 하는 헤스터는 공개적으로 ‘왕따’를 당한 채 변두리 오두막에 살며 바느질로 생계를 잇는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간통 사실이 폭로되는 것을 당당하게 견디면서 융통성 없는 청교도의 권위에 도전하며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산다. 그래서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딤스데일의 무덤 곁에 묻힌 그녀를 ‘청교도적 파우스트’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종교적 계율과 사회적 규범의 쇠사슬을 박차고 인간으로서의 본능에 충실하며 개인의 참다운 자유를 구하려 한, 다시 말해 사회법보다는 자연법(인간의 본성)을 따른 자유주의자 헤스터야말로 구대륙 유럽을 등지고 신대륙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던 아메리카 그 자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물론 헤스터는 딤스데일에게 도둑맞은 칠링워스의 사유재산, 한낱 남성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녀는 이러한 현실에 저항한 페미니스트였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 헤스터는 딤스데일이 사망한 뒤 청교도 사회를 떠나 유럽에 머물다 뒷날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와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남녀 간의 모든 관계가 상호 행복이라는 좀더 굳건한 토대 위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으로’ 아버지 없이 혼자서 자식을 기른 최초의 편친모(偏親母)일 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여성 상담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소설 ‘주홍글자’가 언어와 존재 사이의 긴장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는 평론가도 있다. 숲에서 딤스데일을 만난 헤스터는 칠링워스가 남편임을 밝히고 그의 복수에서 도망칠 것을 간청한다. 그리고 주홍글자 A를 옷에서 떼내버린다. 그런데 펄이 어머니를 거부한다. 할 수 없이 헤스터는 A자를 다시 옷에 단다. 그제야 펄은 어머니 품에 안기는데, 이것은 한갓 기호에 그치는 A자가 헤스터의 삶을 송두리째 규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명칭과 실재 사이의 괴리라고 할까. 헤스터의 본질이 무엇이든 주홍글자 A는 그것을 은폐하고 추방하거나 억압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기호학을 창시한 소쉬르는 기호(언어)를 구성하는 기표(記標·소리 이미지)와 기의(記意·개념이나 뜻)가 상호의존적이라고 했지만, 라캉은 ‘존재는 글자’라면서 자아나 주체도 심지어 무의식까지도 글자에 의해 재구성된다고 주장한다. 라캉식으로 해석하면 소설 ‘주홍글자’는 존재(헤스터)가 글자(A)에 의해, 주체가 언어에 의해, 기의(헤스터)가 기표(A)에 의해 형성되고 조작되고 억압당한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헤스터는 주홍글자 A에 의한 치욕과 박해를 견디며 삶의 선택과 성숙을 통해 치욕을 자긍으로 변화시키고, 그 글자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주홍글자 A와 헤스터의 긴장관계에서 헤스터라고 하는 존재가 결국 터부의 글자인 A를 ‘또 다른 A(Angel, Art, Able)’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헤스터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 추악한 죄가 되는 청교도 법의 경직성과 비인간성에 반항하면서 결국 스스로 공인된 성녀(聖女)로 정화되는 비극적 숭고미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그리스 비극과 닮았다. 경직된 인간의 법에 저항한 자연법의 상징인 ‘제2의 안티고네’라고 할 수 있다.

경직된 법에 저항한 ‘제2의 안티고네’

영국 작가 D. H. 로렌스는 ‘호손과 주홍글자’라는 논문에서 “모든 것은 A로 시작된다”며 주홍글자 A는 “간부(Adulteress)! 위대한 알파(Alpha)! 새로운 아담(Adam)! 미국인(American)! 아벨(Abel·카인의 동생)! 숭배(Admirable)”라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피들러는 딤스데일과 헤스터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추방당한 아담과 하와를 닮았다며, 소설 ‘주홍글자’는 바로 아담의 타락(Adam’s fall)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했다.

기독교적 해석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인간을 깨끗하고 순결한 상태에서 추락하게 만든 근본적인 타락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원죄’라 했고, 이 때문에 남자는 지겨운 밥벌이의 노동, 여자는 아이를 낳는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국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인식의 나무인 선악과나무의 열매를 따먹는(선악을 아는 것) 불경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아직도 에덴동산에서 멍청한 아이처럼 살고 있을 것”이라며 결국 인류의 삶을 일군 것은 여자인 하와라고 말한다. 미국 철학자 켄 윌버는 ‘에덴으로부터의 도약(Up from Eden)’에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잃은 것은 ‘타락’이 아니라 ‘인간의 진화’, 즉 ‘도약’이라고 주장한다. 선악과를 먹은 뒤 인간이 ‘스스로 세상을 인식하는 힘’인 ‘자의식’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상징하는 헤스터와 딤스데일의 주홍글자식 삶도 ‘진화일까, 타락일까’라는 자못 진지한 토론거리를 던져준다.



주간동아 2008.02.19 623호 (p110~111)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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