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0

2007.11.13

비정규직 슬픈 자화상 다시 생각하는 지속가능 기업

  •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

    입력2007-11-12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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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동아’ 609호 표지에 있는 한 노동자의 눈물 맺힌 두 눈이 내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렇게 깊은 슬픔을 안고도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의 심정과, 그들을 투사로 만들고 이제는 점점 잊어가는 우리의 무관심이 몹시 원망스러웠다. 편집장의 글에서처럼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에 주어진 과제이며, 이 과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달려 있다.” 편집장은 장밋빛 미래를 그토록 힘주어 약속하는 대선후보들의 견해란 상투적일 뿐이며,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어 그들의 생각과 약속을 정리하자는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다고 밝힌다. 참으로 많은 울림을 남기는 커버스토리였다. 어쨌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구현한다는 청교도적 기업가로 알려진 인물이 ‘악덕 기업주’로 성토되면서 그 부도덕성을 지적받는 현실에 살고 있다. “‘위선’이 ‘떼법’보다 훨씬 커 보인다”는 기자의 마무리가 과연 약자를 동정하는 그의 편향적 시각에서만 비롯된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기업과 기업가를 두고 벌어지는 각종 논쟁들을 생각하자니, 세계 로하스 기업을 소개한 기사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윤추구를 최선의 가치로 삼는 자본주의와 기업의 속성상 모든 일에서 착한 일만 행하는 천사 같은 기업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외국의 시사주간지에 닮고 싶은 사례로 소개되는 우리 기업이 과연 몇 개나 될까를 생각하니 커버스토리에서 남은 울림이 더욱 슬픈 메아리로 퍼진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공정무역’이나 ‘지속가능 기업’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그런 화두를 던져준 ‘Special Report’에 감사한다.

    중국 공산당의 차기 지도자를 소개한 기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낯설 수밖에 없는 중국 특유의 정치문화를 느끼게 해준 읽을거리였다. 하지만 그들이 흔히 사용하는 ‘권력서열’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해줬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권력서열의 기준이고, 그러한 서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려줬다면 우리와 다른 체제와 권력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독도함과 관련된 기사는 중국이 문제삼았다는 로고를 판독하기가 쉽지 않았다. 군웅이 힘을 겨루는 화려한 무협지를 보는 듯한 느낌의 한구석에서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밀리터리 마니아들에 대한 우려가 피어오르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비정규직 슬픈 자화상 다시 생각하는 지속가능 기업
    미술품 위조 기사를 보며 “돈이 예술보다 우선시되는 사회 탓”이라는 전문가의 탄식에 공감하면서, 표지에 등장한 어떤 이의 눈물을 다시 떠올렸다. 나중에 찾아올 ‘주간동아’에서는 탁 트인 건청궁처럼 정말 가슴이 상쾌해질 만큼 활짝 웃는, 그 사람의 환한 얼굴을 볼 수 있게 되길 고대해본다.



    그날이 빨리 오면 우리는 참 행복할 텐데….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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