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2

2017.01.18

문화

도깨비 vs 푸른 바다의 전설

김은숙  -  박지은의 자존심 대결

  • 배선영 스포츠조선 기자 sopiaphro@naver.com

    입력2017-01-13 18: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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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로맨스 드라마를 대표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김은숙, 박지은이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은 물론, 지난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태양의 후예’까지 모두 김은숙 작가의 필모그래피다. 박지은 작가도 만만치 않다. ‘내조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뒤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로 한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주인공이다.  

    정유년 벽두, 이 두 작가의 드라마가 동시에 방송 중이다. 이제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두 스타 작가의 동시 출격을 놓고 방송가는 ‘자존심 대결’이라 부르며 흥미롭게 지켜봤다.   



    전지현, 이민호로도 부족한 ‘푸른 바다의 전설’

    먼저 신호탄을 쏘아 올린 쪽은 박지은 작가다.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방송 중인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2016년 상반기부터 기대작으로 손꼽혀왔다. ‘별그대’ 신드롬을 함께 한 전지현과 다시 손을 잡은 데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스타 이민호까지 가세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제작비도 220억 원에 달한다. 12월 초 김은숙 작가가 추격에 나섰다. 케이블TV방송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는 공유, 김고은, 이동욱, 유인나 등이 출연 중이다. 전지현, 이민호 같은 초특급 한류스타는 없지만 ‘태양의 후예’를 제작한 콤비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PD의 합작 소식이 시청자의 기대에 불을 지폈다.   

    그렇다면 두 작가 가운데 승자는 누가 될까. 섣불리 판단하긴 어렵지만 드라마 두 편이 모두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조심스럽게 김은숙 작가의 우세가 점쳐진다. ‘푸른 바다의 전설’은 박지은, 전지현, 이민호라는 이름값에 비해 다소 아쉬운 성적표를 내놓고 있는 반면, ‘도깨비’는 tvN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 자리까지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평균 15%(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 최고 17.2% 시청률을 보이며 ‘응답하라 1988’이 보유한 tvN 드라마 역대 시청률 1위 기록인 18.6%를 턱밑까지 추격 중이다.



    ‘푸른 바다의 전설’ 역시 동시간대 1위이기는 하지만 20% 벽을 넘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전작 ‘별그대’의 최고 기록인 28.1%는 뛰어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치로만 본다면 두 드라마의 시청률이 엇비슷하지만 케이블과 지상파 대결이란 점을 감안할 때 김은숙 작가가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다.  

    박지은 작가와 김은숙 작가의 희비가 더욱 극명해 보이는 까닭은 ‘푸른 바다의 전설’과 ‘도깨비’의 모티프나 전개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두 드라마 모두 인어와 도깨비라는 비현실적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들의 불가사의한 능력을 적절히 이용한다. ‘푸른 바다의 전설’ 속 인어 심청(전지현 분)은 인간의 기억을 지우고 남자를 힘으로 거뜬히 제압하는 괴력을 지녔으며, ‘도깨비’의 김신(공유 분)은 내킨다면 인간의 운명까지 바꿀 수 있는 신적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두 드라마의 공통된 주된 서사는 인간과 이뤄지기 힘든 비극적 로맨스다. 심청은 전생에서 비극적 인연이던 허준재(이민호 분)를 현생에서 다시 만나지만 이번에도 잘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김신은 불멸의 존재인 자신을 무의 존재로 만들 수 있는, 다시 말해 자신을 죽여야만 하는 운명의 도깨비 신부인 여고생 지은탁(김고은 분)과 사랑에 빠진다. 두 드라마는 모두 조선시대(푸른 바다의 전설)와 고려시대(도깨비)의 인연이 현생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는 설정을 내세우고 있다.

    서사가 비슷한 두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쉽게도 박지은 작가의 ‘푸른 바다의 전설’은 전작인 ‘별그대’의 동어반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심청은 ‘별그대’ 속 천송이에 인어라는 캐릭터를 슬며시 얹은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다. 비슷한 캐릭터를 같은 배우가 연기하니 신선함이 떨어진다.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던 조선시대 에피소드는 현재와 섬세하게 연결되지 못하고 예상 가능한 범주에 머물러 있다.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심청 캐릭터의 화려한 비주얼만큼은 눈길을 잡아끌지만, 이는 치명적인 단점으로도 지적된다. 전지현 외 주목받는 캐릭터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반성에서 탄생한 ‘도깨비’

    반면 ‘도깨비’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비극적 서사의 힘을 충실하게 살려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판타지 세계와 현실 세계가 충돌하면서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던 비밀들이 하나씩 벗겨지는 과정이 긴장감을 높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승사자나 삼신할매 등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개입하면서 이야기가 한결 풍성해지고 있다. 남녀 주인공 외 다양한 조연급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김은숙 작가의 특기로, ‘상속자들’의 김우빈, ‘태양의 후예’의 진구 등이 대표적 수혜자다. 이번에도 저승사자 역의 이동욱과 삼신할매 역의 이엘이 그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도깨비’는 김은숙 작가에게 자기반성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의 후예’가 눈부신 성공을 거뒀음에도 작품성에서는 박한 평가를 받았다. 김은숙 작가는 ‘도깨비’ 제작발표회에서 “이전 드라마에서 서사의 뒷심이 약한 것은 전적으로 작가 잘못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다양하게 넣었다. ‘어, 이런 것도 김은숙이 쓰네’라는 반응이 나오도록 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운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드라마에서는 김은숙 작가 특유의 ‘(기필코 유행어가 되는) 오글거리는’ 대사들이 담백한 수준에서 적정선을 타고 있다. 그만큼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결국 작가의 ‘진짜’ 이름값은 탄탄한 작품만이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새삼 입증한 셈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중국의 금한령(禁韓令)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콘텐츠는 살아남기 마련이다. 중화권 유명배우 수치(舒淇·서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도깨비는 모든 장면이 가슴 뛰게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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