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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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개혁하면 급진 과격인가

새 대통령 아흐마디네자드 젊은 지식인 … 서방세계 포퓰리스트 취급 편견과 오해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5-08-04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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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이 개혁하면 급진 과격인가

    이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뒤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아흐마디네자드.

    ‘급진 과격’, ‘초강경 보수’, ‘이슬람 원리주의 신봉자’, ‘핵무기의 옹호자’, ‘포퓰리스트’.

    이상은 6월24일 치러진 이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를 설명하는 서방 언론의 수식어들이다. 이를 그대로 받아쓰는 한국 언론의 표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 같은 표현과 그에 따른 기사들이 아흐마디네자드가 누구인지, 이번 이란 대통령선거의 쟁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란의 정치 현실에 대한 이해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세심한 독자라면 ‘급진’과 ‘보수’가 상반되는 가치를 지닌 용어라는 점과 ‘과격’, ‘초강경’이 ‘포퓰리스트’와 부합되는 용어가 아니라는 점을 눈치 챘을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 신봉자’라는 표현은 그가 이슬람 성직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고, 여기에 ‘핵무기의 옹호자’라는 표현과 ‘1979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의 인질극’ 기사가 더해지면 ‘과격한 테러리스트가 이란 대통령이 되었다’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번 선거 쟁점은 ‘핵’ 아닌 ‘경제’

    올해 49세인 아흐마디네자드는 결선투표 일주일 전에 치러진 1차 예선투표에서 아야톨라 하셰미 라프산자니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 전까지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고, 아무도 그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 올해 70세인 라프산자니는 호메이니와 함께 1979년 이란혁명을 주도한 인물이자, 89년부터 97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직을 수행한 이란의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라프산자니의 이름 앞에 붙은 ‘아야톨라’라는 칭호는 쉬아 이슬람의 고위 종교지도자에게 주어지는 존칭으로, 그의 지위를 말해준다. 더욱이 라프산자니는 온건한 개혁주의 성향으로 서방세계가 선호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게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여론조사와 서방 언론 모두 라프산자니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대이변이 일어났다. 약 60%의 투표율을 보인 결선투표에서 아흐마디네자드는 라프산자니를 61.6% 대 35.9%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누른 것이다. 이는 이번 선거의 쟁점이 철저하게 ‘경제’에 있었기 때문이다. 라프산자니는 대규모 국가사업을 운영하는 가문 출신으로 부유한 지배 계층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가졌는데, 이에 착안해 아흐마디네자드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자신을 가난한 민중의 대변자라고 자처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실업률이 30%에 이르고, 실업자 중 상당수가 대학을 졸업한 청년 실업자라는 상황, 그리고 세계 2위의 석유생산 국가지만 석유로 축적된 부가 하위계층에까지 분배되지 않는 현실에서 그는 저소득층에겐 높은 임금, 농민들에겐 지원금 확대를 보장하고, 의료보험과 여성의 사회적 권익을 증가시키겠다고 약속함으로써 민심을 사로잡았다. “이란이 가진 진짜 핵무기는 청년 실업자다. 일자리 창출에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거리에서 폭발할 것이다”고 말한 한 젊은 유권자의 말은 이번 선거의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란이 개혁하면 급진 과격인가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위)는 주요 국가정책 결정과 군사통제권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아흐마디네자드를 지지하는 테헤란 시민들(아래 왼쪽)과 6월17일 치러진 1차 예선투표.

    아흐마디네자드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장 출신이다. 시장으로 재직할 때 그는 이슬람 사상에 입각해 여러 보수주의적 정책을 펼쳤다. 시청 구내식당의 자리를 성별로 분리했고, 젊은이들에게 단정한 머리 스타일을 강요했다. 패스트푸드 식당의 문을 닫게 했으며, 남자 직원들은 턱수염을 기르고 긴 소매 옷을 입도록 했다. 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광고에 등장한 첫 번째 서방 인사인 영국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나오는 광고판을 철거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이러하니 당연히 서구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밖에. 그에게 ‘초강경 보수’, ‘이슬람 원리주의 신봉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배경이다.

    그러나 아흐마디네자드는 종교지도자가 아니다. 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다. 따라서 국가의 고위직은 대부분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이 맡고 있다. 올 8월에 취임하는 아흐마디네자드는 대통령직이 생긴 81년 이래 최초로 비(非)종교지도자 출신 대통령이 된다.

    이란 정치제도 민주주의와 달라

    이번 선거의 쟁점이 ‘핵’이 아닌 ‘경제’였음에도 서방세계의 관심은 여전히 ‘핵’이었다. 이란과의 핵 협상은 유럽연합(EU)이 담당하고 있는데, 이란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우라늄 농축을 중단한 상태다. 이에 대해 아흐마디네자드는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비판해왔으며 “민간 차원의 에너지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핵 개발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에 미국의 심기가 대단히 불편했음은 불문가지. 아흐마디네자드가 한 번도 핵무기를 보유하겠다고 발언한 적이 없는데도 ‘핵 위기가 고조되었다’는 분석과 함께 그에게는 ‘핵무기 옹호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핵 정책은 이란 대통령의 독점적 권한이 아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 민주주의와는 다른 이란의 정치제도를 알 필요가 있다.

    이란에서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가 아니다. 대통령 위에 ‘최고지도자’라고 불리는 종교지도자가 있다. 대통령직은 4년 임기에 한 번 연임이 가능해 총 8년으로 임기가 제한되어 있지만, 최고지도자는 종신직이다. 현재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다.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90년에 최고지도자 지위에 오른 하메네이는 보수주의자로 분류되며 이번 선거에서 아흐마디네자드를 적극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장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주요 정책은 하메네이의 지시·감독·승인 아래 이뤄진다.

    군사통제권 또한 최고지도자의 권한이다. 97년 ‘개혁’을 무기 삼아 대통령에 당선된 싸예드 무함마드 하타미가 지난 8년간 펼친 각종 개혁정책이 실패한 것도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이끄는 보수파의 방해 때문인 측면이 크다. 이란의 핵 정책 또한 상당 부분 하메네이의 의중에 따라 결정된다.

    앞서 언급한 아흐마디네자드에 대한 수식어들은 그에 대한 서방세계의 이해가 정확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슬람 종교지도자도 아니고, 노회하고 부패한 독재자도 아니며, 손에 피를 묻힌 테러리스트도 아니다. 오히려 서방세계가 선호하는 젊은 학자 출신의 지식인이며, 경제 정책에서 투명성을 약속한 정당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다.

    이번 대통령선거의 결과로 이란은 최고지도자, 대통령,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가권력의 모든 고위직을 보수파가 장악하게 되었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고 믿는 미국의 강경론자들은 오히려 이 같은 결과를 반긴다. 이란 지도부의 성격을 분명히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좌에서 물러나는 하타미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온건 개혁정부는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경론에 맞서는 방패막이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아흐마디네자드를 선택함으로써 이란은 방패막이를 포기했다. 이란과 서방세계가 어떻게 갈등을 풀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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