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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禪 이야기

‘좋은 집착’과 ‘나쁜 집착’을 아시는가

‘좋은 집착’과 ‘나쁜 집착’을 아시는가

‘마음이 어느 한곳에만 쏠려 떠나지 못하는 심리 상태’를 집착이라 한다. 사랑에 빠졌다 이별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집착이라는 감정의 짜릿함과 허무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집착은 “인간을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자 연구에 ‘집착’했다”는 황우석 교수의 말처럼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상대나 자신을 파멸시키는 ‘독’이 되기도 한다. 특히 불가(佛家)에서는 집착을 고통의 원인으로 보기 때문에 이것을 끊어내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다. 심지어 깨달음을 얻겠다는 집착까지 버려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도 한다. 과연 집착은 오로지 버려야만 할 무엇일까.

중국 명나라 때의 이름난 선승이자 고승인 운서주굉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고 자신의 수필집 ‘산색(山色)’(연관스님 옮김·호미 펴냄)에서 말하고 있다. 보통 선승들은 열이면 열 집착을 끊으라 했는데, 이 스님은 다른 이야기를 던진다. 스님은 “학문이란 좋아함으로써 성취되는 것인데 좋아함의 극치가 곧 집착”이라고 운을 뗀다. “바둑에 집착하는 이는 병풍이나 장막·담·창문에 모두 검고 흰 돌이 널려 있는 것으로 보이고, 독서에 집착하는 이는 산중의 나무나 바위가 모두 검은 글자로 보인다. 그러나 이쯤 되어야 그가 이룬 예술이나 학문이 천하를 울리고 후세에까지 명성이 남는다.”

도(道)를 배우는 일도 예외가 아니다.

“참선하는 이라면 차를 마셔도 차인 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인 줄 모르며, 걸어가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줄 모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 뜻이 지극하고 공력이 깊어지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문득 삼매(三昧)에 들게 되니, 이는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는 사람이 비비는 작업을 멈추지 않아야만 불꽃이 일어나며, 쇠를 단련하는 사람이 담금질을 쉬지 않아야만 강철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집착을 마냥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집착을 하되, 유의해야 할 것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 한마디로 ‘좋은 집착’과 ‘나쁜 집착’을 구별하라는 것이다.

그는 ‘좋은 집착’의 전제조건으로 “만법이 모두 ‘환(幻)’인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 세상 모든 것은 언제나 변하고 변하며 또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자각(自覺)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법이 모두 환과 같은 것인 줄 모르고 이루려는 마음이 너무 급하거나, 모양을 탐하는 마음이 깊으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집착을 꺼려 느슨한 마음으로 마치 물이 바위를 뚫기를 기다리듯 공부하면 몇 겁을 지낸들 무슨 얻을 것이 있겠는가.”

‘버리면 얻는다’ ‘집착을 끊어라’는 말을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삼는 경우가 간혹 있다. 운서주굉의 “깊이 고집하여 잊어버리지 못하는 집착은 갖지 말아야 하지만, 늘 간직해 잊어버리지 않는 집착은 꼭 필요하다”는 조언을 기억할 일이다.



주간동아 2005.08.02 496호 (p52~52)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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