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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리포트

불량 지배구조, 두산 ‘형제의 난’ 불렀다

총수와 친인척 그룹 전체 지분 고작 4.95% … 4세들 급속 증가 예고된 경영권 분쟁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불량 지배구조, 두산 ‘형제의 난’ 불렀다

불량 지배구조, 두산 ‘형제의 난’ 불렀다

7월21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는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7월21일 저녁 8시 서울 강남역 부근 한국야구회관 7층 브리핑실. 기자 40여명이 대기한 가운데 대한야구협회 총재이기도 한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등장했다. 박 전 회장은 “질문은 일절 받지 않겠다”며 굳은 얼굴로 준비한 성명서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금번 박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 승계는 정당성이 없는 것으로서 원천 무효임을 선언하면서, …박용성·박용만 두 형제가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형을 회장직에서 축출하고 모함하는 등의 작태를 연출했음을 국민 앞에 밝히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회장은 동생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과 박용만 ㈜두산 부회장이 그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 사적으로 유용하고 해외에 밀반출해왔다고 주장했다(27쪽 상자기사 참조). 박 전 회장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자, 서로 공모해 일방적으로 그를 그룹 회장직에서 몰아냈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은 고 박두병 회장의 6남1녀 중 맏아들인 박용곤 명예회장과 차남 박용오 전 회장, 3남인 박용성 회장, 5남인 박용만 부회장 등 4인의 공동경영 체제로 운영돼왔다(표 참조). 박두병 회장의 뒤를 박용곤 명예회장이 이었고, 10년 전 박 전 회장이 형의 뒤를 이어 회장이 됐다. 7월18일 두산그룹은 박 전 회장이 그룹의 발전을 위해 동생인 박용성 회장에게 그룹 총수 자리를 “흔쾌히” 양보했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우애 경영’은 껍데기일 뿐, 속은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급기야 그룹 회장까지 지낸 총수 일가의 ‘어른’이 직접 나서 “우리 ‘패밀리’가 온갖 불법을 저질러 왔소” 하고 폭로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진 것이다.



겉은 ‘우애 경영’ 속은 ‘곪은 경영’

기자회견 전 박 전 회장은 측근인 손모 씨를 통해 같은 내용이 담긴 ‘진정서’를 검찰, 일부 방송사, 참여연대 등에 우송했다. 검찰은 진정 내용이 구체적인 만큼 곧 본격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참여연대도 “검찰은 두산그룹 총수 일가의 배임·횡령 혐의를 철저히 조사하라”는 논평을 냈다. 한편 두산그룹 측은 “박 전 회장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모함”이라며 7월22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박 전 회장의 두산산업개발 대표이사 및 ㈜두산 명예회장 해임안을 일사천리로 가결했다.

뉴스가 터짐과 동시에 현대그룹 ‘왕자의 난’에 비견할 만한 ‘형제의 난’으로 명명된 이번 사태는, 그러나 직접적 원인을 따져보면 ‘사촌의 난’에 가깝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불량 지배구조, 두산 ‘형제의 난’ 불렀다

7월22일 두산타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양측에서 모두 인정하듯 사태의 발단이 된 것은 두산산업개발의 경영권이다. 박용성 회장 측은 “박 전 회장이 선친의 ‘형제간 공동소유 공동경영’ 원칙에 반하는 두산산업개발 계열 분리를 요구해, 가족회의에서 회장직 이양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박 전 회장 측의 주장은 다르다. “2004년 상반기 박용성·용만 형제가 심각한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회사가 부실화하는 것을 두고 보기 힘들어 우량기업인 두산산업개발만이라도 독자 경영을 얘기했더니, 이를 마치 재산에 눈이 어두워 형제간의 의를 해친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박 전 회장의 측근은 “설령 계열 분리를 요구했다 한들 그게 무슨 잘못이냐”며 “지분율이 낮다고 나무라는데 그럼 누구는 뭐 얼마나 높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실제 박 전 회장 측이 가진 두산산업개발 지분은 차남인 박중원 두산산업개발 상무가 보유한 0.7%가 전부다. 박 전 회장이 장남인 박경원 ㈜전신전자 사장의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당량의 지분을 매각한 때문이다. 2002년 3월 당시 두산건설 상무로 재직 중이던 박 사장은 “벤처기업에서 뜻을 펼쳐보겠다”며 두산 계열사 지분을 모두 처분, 코스닥 기업인 전신전자를 인수했다. 그러나 사업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자리를 잡기까지 적잖은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박 전 회장의 장남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정원(7월22일 박 전 회장 퇴출과 함께 두산산업개발 회장에 전격 선임) 씨 등 다른 형제 오너의 자녀들은 지분을 착실히 늘려가며 4세 경영 체제를 준비해왔다. 박 전 회장으로서는 맘이 편치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두산은 전형적인 순환출자구조를 가진 그룹이다(표 참조). 총수 일가의 지분도 매우 낮다. 두산산업개발의 ‘지배’를 받고 있는 ㈜두산의 경우 박용곤 명예회장 3.16, 박 전 회장 1.38, 박용성 회장 2.19%에 불과하다. 그룹을 좌지우지해온 삼형제의 지분율을 다 합쳐봐야 고작 6.73%에 불과한 것이다. 그룹 전체로 보아도 총수와 친인척 지분은 4.95%밖에 되지 않는다(2004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박 전 회장 측에서 “누구는 지분율이 대단히 높아 큰소리치느냐”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아들 너무 많은 게 근본 불씨”

두산산업개발 또한 3세들 지분은 없다시피 하고, 4세들 또한 아주 적은 양의 지분만 갖고 있다. ㈜두산-두산중공업-두산산업개발 간 순환출자구조가 깨지고 나면 사실상 오너 일가로서의 ‘지배력’을 행사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럼에도 두산그룹은 회장을 바꾸고 지분 구조를 변경하는 등의 중요 결정을 ‘가족회의’를 통해 처리하는 ‘봉건성’을 보여왔다.

불량 지배구조, 두산 ‘형제의 난’ 불렀다


불량 지배구조, 두산 ‘형제의 난’ 불렀다

※괄호 안은 최대주주+특수 관계인 지분율

이제 공은 검찰 손에 넘어갔다. 두산그룹은 “돈에 눈이 어두워 형제애마저 저버린 자의 모함”이란 주장만 거듭할 뿐, 각 사안에 대한 구체적 해명은 아직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재계 일각에서는 “진정서에 언급한 두산 경영진이나 계열사, 관계사들이 모두 실재하고 내용 또한 상당히 구체적인 것으로 봐 사실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물론 두산그룹 측은 “외화 밀반출 건만 해도 2004년 참여연대가 진정서를 내 당국이 조사했으나 무혐의 처리된 사안”이라며 “검찰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협조할 것”이란 뜻을 밝히고 있다.

‘형제간 재산 싸움’이란 사안의 선정성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결국 취약하기 그지없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무역학)은 “우리나라 재벌 체제에서는 부자지간이건 형제나 사촌지간이건 경영권 분쟁을 피해갈 수가 없다. 창업주는 한 명이라도 2대, 3대, 4대로 넘어갈수록 자손 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량 지배구조, 두산 ‘형제의 난’ 불렀다

4월26일 그룹 연수원인 연강원 개원식에 참석한 두산그룹 6형제. 가운데는 어머니인 명계춘 여사다.

“불량한 지배구조는 기업의 존속과 성장만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총수 일가의 안위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 전 회장의 한 측근은 “두산도 아들이 너무 많은 게 근본 불씨가 됐다. 아마 4대 넘어 5대째쯤까지 가면 직계라도 상무 자리 하나 차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김상조 소장은 “그런 의미에서 LG그룹은 현명한 선택을 한 셈이다. 지주회사 체제가 최선은 아니지만, 그를 통해 소유·경영 간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고 구씨 허씨 간 잡음 없는 계열 분리에 성공함으로써 심각한 분쟁 소지를 없앨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8.02 496호 (p24~27)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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