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2

2002.02.14

부위마다 색다른 맛 ‘49가지 진미’

  • 시인 송수권

    입력2004-11-15 1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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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위마다 색다른 맛 ‘49가지 진미’
    마지막 고래잡이배를 동해로 떠나보내며

    해부장 김씨는 눈물을 보인다

    김씨의 눈물 방울방울 속으로

    스무 살에 두고 떠나온 고향 청진항이 떠오르고

    숨쉬는 고래의 힘찬 물줄기가 솟아오른다



    고래는 김씨의 친구며 희망

    청진항 고래를 이야기할 때마다

    육십 나이에도 젊은 이두박근이 꿈틀거리고

    통일이 되면 통일이 되면

    청진항으로 돌아가 고래를 잡겠다던 김씨

    누가 김씨의 눈물을 멈추게 하겠는가

    이제 마지막 배가 돌아오면

    장생포여, 고래잡이도 끝나고… (후략)

    울산에 사는 정일근 시인의 ‘장생포 김씨’란 시다. 이 시는 1988년 지역문학의 메타비평지 ‘민족과 지역’ 창간호에 실렸다. 현재 밀양연극학교 촌장(村長)인 이윤택과 필자 등이 중심축을 이루고 고(故) 이성선 시인, 나태주 시인, 정일근, 최영철, 서지월, 문충성 등 지역 시인들이 참여한 게릴라적 성격을 지닌 잡지였다. 중앙의 집권문화(문학)를 뒤집자는 잡지였는데 3호까지 나오다 절판됐고, 이윤택은 다시 밀양연극촌을 세워 ‘게릴라-관점21’을 지금까지 내오고 있다.

    요즘 강준만(‘인물과 사상’ 발행인)이 쓴 ‘문학권력’이란 단행본이 나온 것도 그로부터 16년 만의 쾌거다. 분단 50년 만에 수평적 정권은 교체됐어도 ‘수평문화(문학)’ 운동의 갈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모든 지식인이 전리품을 앞에 놓고 쿨쩍거리게 된 시대상황을 뛰어넘어 이윤택 그만이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기둥을 뿜고 뛰노는 동해 고래 떼의 장엄한 광경, 신년하례의 도하 신문에서 이 모습과 함께 동해 일출을 보여줬으면 했는데 혀꼬부라진 축시 몇 줄로 대신한 것을 보고 언제부터 우리 삶이 이렇게 왜소해졌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부위마다 색다른 맛 ‘49가지 진미’
    음식기행을 하다 보니 신년 벽두엔 먹어도 고래고기를 먹자 싶어 떠난 곳이 장생포였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할매집(대표 나미자ㆍ017-581-8081, 052-265-9558)의 고래고기를 먹고 나서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그림’까지 보고 오자는 욕심이었다.

    태화강 지류의 대곡리 암각화에다 뛰어난 주변 절경을 더한 ‘원시문화 산책로’를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기막힌 일이겠는가. 선사인들의 어로문화 특히 고래와의 싸움, 거기다 공룡그림까지 겸한다면 바다와 육지의 왕자를 한눈에 아우를 수 있는 어로문화의 산책로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유네스코 문화유산 목록에도 빠져 있으니 한국인의 의식구조는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닐까.

    할매집에 앉아 고래고기를 먹으면서도 이 산책로를 필자의 여정때문에 뒤로 미룰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차림표를 보니 가장 맛있는 부위인 우네(뱃살) 한 접시에 3만원, 오배기(꼬리살) 3만원, 생고기 2만5000원, 육회 2만5000원, 수육 3만원이었다. 인근의 원조할매집, 골목할매집, 왕경, 고래막 등 여섯 곳의 고래집과 울산 시내의 장생포전통, 강남 김포수집 등이 아직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래야말로 장생포의 신화이자 전설이고 삶이다. 그중에서도 귀신고래(鬼鯨)의 회유면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귀신고래 고기 있어요?” 했더니 무슨 잠꼬대냐는 듯 주인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알고 보니 장생포 귀신고래는 1966년에 5마리가 잡힌 것을 마지막으로 맥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요즘 동해에 넘치고 있는 고래는 밍크고래이기에 밍크고래 고기가 식탁에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지 사정이기도 하다. 광복 후 장생포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부자 동네였다. 그것이 1986년부터는 IWC의 규제 때문에 맥이 끊어졌다.

    고래고기는 마흔아홉 부위 정도 맛이 각각 달라 한 번 맛을 보면 일반 육류에 대한 선호도가 뚝 떨어지기 쉽다. LA갈비살이 어찌 이 생고기의 순후한 맛을 당해낼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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