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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검찰’ 다 이유가 있었네

“정치권이 검찰 인사’ ‘김진태 녹취록’은 사실 … 인사철 마다 정치권 줄대기 고질화

  •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정치 검찰’ 다 이유가 있었네

‘정치 검찰’ 다 이유가 있었네
정치권에서 끝까지 노((No)하면 안 되는 거야.” 벤처기업 C사 주식 분쟁과 관련해 공개된 녹취록에서 김진태 전 서울지검 동부지청 형사4부장검사가 했다는 말이다. 그는 “어떤 사람은 몇백억 번다는 것이 목표라면 검사들은 인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면서 인사에 목을 매는 검찰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정치권과 검찰 인사 사이에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지난 98년 정권교체 직후 지방에서 근무하던 A검사는 모처럼 만난 친척에게 “서울로 가고 싶다”는 인사청탁을 넌지시 건넸다. 이 친척이 평소 여권 인사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알고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얼마 후 이 검사는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입을 벌리고 말았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대검 쭛쭛쭛으로 발령난 것. 이 자리는 검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고 싶어하는 요직이다. 이 검사는 나중에 친척이 밝힌 로비 대상을 듣고 또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 전국구 예비후보군에 속한 모 인사를 로비 창구로 거론한 것. 이 검사는 정치권의 영향력에 대해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전국구 예비후보까지 막강한 파워를 행사할 줄 몰랐기에 충격은 더했다.

정치권력이 검찰 인사에 영향을 미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부정권 시대는 물론이고 현 정부에서도 정치권력의 검찰 인사 개입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인사철이 되면 정치권 실세, 대통령 친인척 등의 ‘꼬리표’ 논란이 검찰 주변에 흘러다닌다. 꼬리표란 유력 인사들이 인사 때 어느 검사를 잘 봐달라며 건네는 인사청탁을 의미한다.

꼬리표와 관련해 최근 검찰 내부에서 나온 한 에피소드도 청탁으로 얼룩진 검찰 인사의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검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한 사석에서 “20여 명쯤 되는 대검 쭛쭛들 중 꼬리표 없이 온 사람은 2~3명뿐이다”고 밝혔다고 한다. 90% 이상이 꼬리표를 달고 왔음을 의미한다.

최경원 법무장관과 신승남 검찰총장은 지난 6월 “정치권 등에 인사운동을 한 검사들에게 엄중 경고하고 다음 인사에서 반드시 불이익을 줄 것이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현 정부 초대 법무장관을 지낸 박상천 의원(민주당)도 같은 말로 장관직 취임 일성을 대신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검찰에 출입한 한 일간지 기자는 “검찰 인사 분위기가 구호로 바뀌지는 않는다”며 “현재 내부가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한다. 지금도 인사철이 되면 어김없이 학연 지연 혈연 등을 총동원한 전방위 인사 로비가 횡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 정부 출범 이후 한때 강남에서 술집을 경영하며 검찰 관계자들과 어울렸던 A씨는 인사에 죽고 사는 검찰의 자화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A씨는 평소 고위층 인척인 C씨와 가깝게 지냈다. 별달리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C씨를 용돈 줘가며 챙겼다. 정권 교체 후 C씨는 A씨 술집에 몇 차례 술을 마시러 왔고 이 소문이 퍼진 뒤 몇몇 검사들이 이 술집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검사들이 이 술집을 찾은 것은 술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C씨를 만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C씨 주변으로 몰려든 검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A씨의 지인이 밝힌 이유는 간단하다. “검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사인데 C씨가 이들의 인사청탁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 검찰’ 다 이유가 있었네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서라도 좋은 보직, 높은 자리를 잡겠다는 검사들의 출세욕은 다른 조직보다 훨씬 치열하다는 것이 전직 부장검사 출신인 한나라당 C의원의 지적이다. 이 같은 검사들의 출세욕이 검찰을 통제, 궁극적으로 권력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정치권력의 의지와 맞물리면서 인사 난맥상으로 이어진다.

역대 권력은 사정기관 중 영향력이 큰 검찰을 장악하는 권력운영의 수단화를 꾀했다. 이를 수행하는 주요 매개체가 바로 인사다. 특히 검찰 고위직일수록 지연과 학연, 혈연 등을 통한 믿을 만한 인사들을 발탁해 포진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검찰 인사가 끝나면 정치권에서 지역편중 인사라는 정치공세를 펼치는 것도 이 같은 권력 핵심의 정치적 잣대와 판단에 따른 인사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단행된 검찰 인사를 놓고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이른바 빅4로 지적되는 서울지검장, 대검중수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공안부장 중 절반이 호남 출신이고 검사장 승진 6명 중 3명이 호남이니 대통령 고향이 아니면 승진은 꿈도 못 꾼다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며 편중인사를 비난했다. 한때 검찰 내부에서 목포 출신 인사들의 요직 독점 현상과 관련해 ‘목포 검찰’이란 자조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

검찰의 한 관계자는 “과거는 물론 현 정권 들어서도 권력층이 특정인을 찍어 누구는 되고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식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녹취록에 나온 김진태 전 부장검사의 발언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지적이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권력의 요구를 무시하는 사람은 “살아남기 힘들다”고 단언한다.

검사 정기 인사를 앞둔 지난 2000년 7월 초 옷 로비 사건 수사와 임창열 경기도지사 부부 구속 때 수뇌부의 뜻을 거스른 검사들은 매우 긴장했다. 집권층에서 손볼 것이란 소문이 검찰 내에 파다했기 때문이다. 발표 결과 해당 검사들이 인사에서 크게 불이익을 받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요직에 진입한 인사도 없었다. 검찰 주변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희생 당한 것이란 시각이 팽배했다.

인사를 앞둔 검찰 관계자들은 자신의 정치인맥이 없을 경우 여권 실세들과 친분을 가진 제3의 인물을 끌어들여 활용하기도 한다. 또 기업인이나 특정 사건에 연루된 인사들이 자신과 통하는 특정 검사를 발탁해 자신의 사건을 맡기기 위해 로비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몰락한 기업인 C씨도 이 2가지 사안이 맞물린 경우다. 김대중 당선자 시절 언론기업을 소유하고 있던 C씨는 김대중 대통령과 가깝게 지낸 한 인사를 힐튼호텔로 불러내 만났다. C씨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모 검사를 청와대 법무비서관 자리에 발탁되도록 힘써달라고 부탁했다. 청탁을 받은 인사는 “나는 그런 일 모른다”며 발을 뺐다. 나중에 알고 보니 C씨는 자신이 경영하던 모 사학재단의 비리와 관련해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전에 수를 쓰기 위해 자신과 가까운 검사를 청와대 요직에 보내려 했다는 의혹을 갖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인사를 통해 검찰을 장악한 정치권력은 검찰을 마치 사유물처럼 활용한다. 95년 김영삼 전대통령은 ‘검찰청 총장’이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다. 12·12사건과 관련, 당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으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김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 지시로 재수사에 나선 것. 당시 검찰의 한 간부는 “(정권이) 물라면 문다”며 스스로 ‘견찰’(犬察)이라고 자탄하기도 했다.

여야 정치인이 관련된 선거법위반 사건 및 각종 명예훼손 사건 등에 대해 검찰은 비교적 소극적 수사원칙을 적용한다. 이 같은 흐름은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98년 9월 서울지검의 한 검사가 밝힌 검찰 내부 분위기. “아무리 작은 기업인이라도 뇌물을 준 정치인 이름을 한 사람이라도 불라고 요구한다. 정치인 한 명을 불면 불구속 기소, 두 명을 불면 벌금이라는 얘기도 검찰 주변에서는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것을 꼬집은 이야기다.

일부 소장검사들은 이런 분위기에 대해 “YS 정권에 이어 검찰이 또다시 정치에 이용당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면서 정권 교체에 따라 주요 보직의 인물이 바뀌는 관행을 개탄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건을 수사한 검사가 인사 때 혜택받는 모습에서 검찰 중립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치권은 이제 더 늦기 전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검찰 중립화 문제는 궁극적으로 제도적 장치보다 검찰 스스로의 의지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인사 때만 되면 정치권력을 찾아다니는 검찰 내부의 고질적 체질이 바뀌지 않는 한 검찰 중립화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주간동아 307호 (p16~17)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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