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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극의 땅 동티모르에도 봄은 오는가

깊은 상흔 딛고 독립국가 건설 열기 후끈 … 석유탐사 프로젝트에 큰 기대

참극의 땅 동티모르에도 봄은 오는가

참극의 땅 동티모르에도 봄은 오는가
23 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동티모르가 독립에의 길로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현재 동티모르는 오는 8월30일의 제헌의회 선거를 앞두고 술렁거리는 분위기다.

지난 99년 8월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묻는 찬반투표 직후 유혈사태를 겪은 이곳에는 불탄 채 파괴된 집들이 곳곳에 버려져 있다. 부서진 집들이야 다시 세운다지만, 고아문제 등 인도네시아 철권통치가 남긴 후유증과 정신적 상처가 아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한다. 우리 나라 상록수부대 440명을 비롯, 7000명 규모의 유엔평화유지군이 들어와 안정을 되찾아가지만, 서티모르 접경지대에서는 아직도 총격전이 벌어진다.

80만 동티모르의 중심도시는 인구 15만의 딜리다. 시골역 같은 분위기의 딜리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건물들에는 동티모르 유혈사태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불에 타서 지붕이 내려앉은 건물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독립을 반대하며 지난 99년 가을 동티모르를 학살과 방화의 혼란 속에 빠뜨린 친인도네시아계 민병대원들이 저지른 짓이다. “99년 당시 딜리 시내를 비롯, 동티모르 곳곳의 마을에서 민병대들이 난동을 일으켜 번듯한 건물 하나 변변한 게 없다”고 이스트티모르 대학 빈센테 파리아 교수(정치학)는 말한다. 딜리에서 만난 한 유엔 구호요원은 “마치 2차 대전 당시 부서진 격전지 마을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다. 유엔 발표로는 당시 600명 쯤이 살해되었다. 그러나 동티모르 현지에서 만난 이들은 이같은 발표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파리아 교수는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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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 외곽에 있는 산타 쿠르즈 공동묘지는 이들의 원혼이 떠도는 곳이다. 필자가 그곳을 찾았을 때인 99년 9월 초 민병대원들에게 살해당한 친구의 넋을 기리려 이곳을 찾은 넬리오 소아레스(38)를 만났다. 그는 “내 친구 안토니오 페르난데스는 그때 목이 잘려 나간 시체로 거리에서 발견되어 이곳에 묻혔다”고 몸서리쳤다. 동티모르 사람 가운데 인도네시아 철권통치 시절 피해를 보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다. 지난 75년 수하르토 군부가 동티모르를 강제점령한 뒤 많은 사람을 살해하였다. 75~78년의 3년 간 60만 동티모르 인구가 3분의 2로 줄어들었을 정도다. 인도네시아군에게 살해당한 사람을 묻는 장례의식은 동티모르의 일반적인 풍경이 되어 버렸을 정도다. 인도네시아군의 조직적인 살육을 피해 산으로 들어간 이들은 굶거나 병들어 죽었다.

동티모르의 노인들은 지금도 얼룩무늬 전투복(위장복)을 입은 군인만 보면 몸이 움츠러든다고 한다. 한국군 최초의 전투부대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된 우리 상록수부대원들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현지 주민은 또 다른 인도네시아군이 들어온 줄 알고 접촉을 피했다고 한다. 라스팔로스 성당에서 만난 아데리토 다 코스타 신부는 “많은 사람이 지금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한다”고 귀띔한다. “어린이들이야 5년쯤 지나면 지난날을 잊어버릴지 모르나 어른들이 입은 정신적 상처를 잊기엔 10년 또는 15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고 말한다.



현재 동티모르는 국제사회의 지원 아래 독립국가의 길을 밟아가고 있다. 곳곳에서 유세 열기가 한창이다. 모두 18개 정당이 난립한 가운데 오는 8월30일 제헌의회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국회를 구성하면, 그곳에서 정하는 법에 따라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늦어도 내년 봄이면 신생 독립국가가 들어설 예정이다. 동티모르 독립투쟁의 대부인 사나나 구스마오가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다. 그는 유엔과도행정기구(UNTAET)에게서 전권을 넘겨받게 된다. 8·30선거를 맡은 독립선거위원회의 위원장이 손봉숙 한국 중앙선관위원이다. 손위원장은 “이곳 사람의 교육 정도는 낮지만, 독립국가를 지향하는 높은 정치 관심도 때문에 투표율도 높을 것이다”고 전망한다(동티모르의 문맹률은 36%다).

현재 서티모르에는 10만 명에 이르는 동티모르 난민이 머물고 있다. 상당수가 친인도네시아계 민병대원들에게 강제로 떠밀려 온 사람이다. 이들은 그곳 난민수용소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해 9월 이들에게 국제구호기관들의 물자를 전하던 유엔고등난민판무관(UNHCR) 요원 3명이 사무실을 습격한 민병대원들 손에 무참히 죽고 모든 국제기관이 그곳에서 철수한 뒤 상황은 크게 나빠졌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현재 이 난민들을 상대로 “동티모르로 돌아갈 것인가, 인도네시아에 남을 것인가”를 조사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난민들은 민병대원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필자는 동티모르 동쪽 라사 마을에서 이제 갓 서티모르에서 돌아와 트럭에서 짐을 부리는 난민 사비나 로페스(54, 여)를 만났다. 그녀는 “돌아가겠다는 말을 꺼냈다가는 민병대원들의 칼에 맞아죽기 십상이다”고 그곳의 살벌한 분위기를 전한다. 서티모르에 억류된 이 난민들이 오는 8·30 제헌의회 선거전에 고향으로 돌아와 유권자 등록을 마치고 선거에서 한표를 던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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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8·30선거를 앞두고 동티모르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친인도네시아 민병대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도네시아군의 비호 아래 다시금 동티모르 선거를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필자가 동티모르에 머물던 기간(7월26~31일)에도 동·서티모르 접경마을인 틸로마르 근처에 친인도네시아 병력이 침입, 유엔평화유지군 소속 뉴질랜드군과 총격전 끝에 인도네시아 군인 한 명이 죽었다.

현재 7000여 명에 이르는 동티모르의 평화유지군은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점차 안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유엔 안보리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엔과도행정기구의 우두머리인 서지오 드 멜로는 “평화유지군의 섣부른 철수가 그동안 국제사회가 동티모르에 공들여온 것들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밝혔다.

서티모르엔 아직도 난민 10만 명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신생 독립국가인 동티모르가 기댈 것이 하나 있다. 동티모르 남쪽 바다, 티모르 협곡(Timor Gap) 밑에 묻혀 있는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이다. 호주는 일찍부터 그곳 해저자원에 눈독을 들여 지난 89년 인도네시아와 개발협정을 맺은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최근의 사태로 무효화했고, 동티모르와 호주 사이에 지난 6월 다시 협정을 맺었다. 지난 7월 초 호주와 동티모르는 향후 30년 동안 티모르 협곡에서 나오는 원유를 함께 나눠 쓰는 협정을 맺었다.

채광 기술을 제공하는 호주가 10%, 동티모르가 90%를 나눠 갖는 조건이다. 원유 채굴을 본격화할 경우 동티모르 건국의 주요 자금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티모르 협곡 석유탐사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2004년부터 20년 동안 50억 달러어치의 원유를 얻어낼 것으로 예상한다. 이 프로젝트는 21세기 최초의 신생 독립국가로 기록될 동티모르의 유일한 희망이다.





주간동아 2001.08.16 297호 (p42~44)

  • < 동티모르=김재명/ 분쟁지역전문 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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