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앞서 4월14일 개봉하는 영화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역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작품. 이 영화는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갈채를 받았다. 이 영화에도 뜻밖에 손안에 굴러 들어와 놓치고 싶지 않은 막대한 현금이 등장한다. 그 돈을 손에 넣고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젊은 커플은 렌터카 업소의 점원으로 일하는 남자와 순진한 간호사. 무기력한 일상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던 그들은 갑자기 큰돈을 소유하게 되면서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에너지가 폭발하게 되고 신나는 ‘연애 폭주 활극’을 벌인다. 역시 만화를 보는 듯 코믹하면서도 질주하는 느낌이 넘치는 작품. ‘비밀의 화원’의 은행원 사키코와 ‘아드레날린…’의 간호사 시즈코는 모두 돈을 좇아 눈물겨운 고생을 감수한다. 그들은 외모나 직업상으로 볼 때 한없이 평범하지만, 목적을 이뤄내고야 마는 잠재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야구치 감독은 여주인공을 고생시키는 걸로 유명한데, 그의 영화 속 여주인공들은 곤경에 빠지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멍이 들면서 목표를 위해 투쟁하고 장애물을 극복해 간다. 야구치 감독은 “내 영화의 여성들은 언제나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섹시한 여성보다 순박한 여주인공을 선호하는 편인데, 중산층의 평범한 여성들이 열심히 노력하면서 외부적인 힘과 맞닥뜨렸을 때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신비스럽고 알 수 없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감독. 그래서 그의 영화 속 여성들은 우리 영화의 일반적인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활기로 가득 차 있다. 국내에서는 만화로 출판되어 인기를 얻은 ‘플리즈 프리즈 미’(Please Freeze Me)의 만화작가로 인기를 얻게 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TV, 비디오, CF, 인터넷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면서 자기세계를 구축한 일본 영화계의 ‘무서운 아이’. 67년 생의 젊은 감독으로 동경 조형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블랙유머, 예측 불가능한 비틀기와 반전, 손수 만든 미니어처, 기발한 아이디어로 관객을 즐겁게 만드는 감독이다. 경쾌한 스피드와 만화 같은 샷이 야구치 영화의 특징. 그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삶에 대한 의욕이 무럭무럭 솟아난다.
일본문화 3차 개방 후 일본영화가 무더기로 유입되고 있지만 흥행성적은 그리 신통치 않은 지금 우리 극장가에서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똘똘 뭉친 야구치의 두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주간동아 279호 (p8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