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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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만상 기암이 반기는 ‘환상의 섬’

  • 입력2005-06-01 1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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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태만상 기암이 반기는 ‘환상의 섬’
    3년 만에 소매물도를 다시 찾았다. 세번째 찾아가는 길인데도 눈길 닿는 풍경마다 처음 본 듯 낯설고 마음은 초야(初夜)를 맞는 새색시처럼 설레기만 한다. 아마도 너더댓 해 전쯤에 처음 그 섬을 찾은 이후로 언젠가 다시 그 품에 안겨보기를 늘 고대해 왔기 때문이리라.

    여정(旅情)은 소매물도에 닿을 때까지도 시종 낯섦과 설렘으로 약간 들떠 있다. 서울에서 통영까지의 안개 낀 새벽길, 그리고 다시 통영항에서 소매물도로 향하는 뱃길조차도 꿈결처럼 몽롱하다. 그 꿈길 같은 바닷길을 한 시간 남짓 달려온 배는 이윽고 소매물도에 몸을 풀었다.

    소매물도는 면적이 2.51km2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소매물도 이외에도 대매물도 홍도 등대섬(해금도) 대구을비도 소구을비도 등이 모두 여기에 딸린 섬들이다. 소매물도의 북쪽으로는 맏형 격인 매물도가 약 500m 거리에 인접해 있지만, 남쪽으로는 80여km 가량 떨어진 일본 대마도까지 거침없는 창해(滄海)가 펼쳐진다.

    이렇듯 내해(內海)와 외해(外海)가 맞닿은 길목이다 보니 모진 바람과 거센 파도가 일년 내내 끊임없이 몰아치고, 억겁의 세월 동안 온몸으로 파도와 바람을 막아온 해안에는 천태만상의 기암들이 즐비하다. 특히 남쪽 해안 바위벼랑의 위용이 볼 만하다. 이곳에는 ‘고래등’이라 불리는 해벽(海壁)이 아찔한 높이로 솟아 있을 뿐만 아니라 고래등 해안과 몽돌밭 사이에는 마치 공룡의 등처럼 울퉁불퉁한 바위벼랑이 형성돼 있어 북녘 해금강의 일부를 옮겨놓은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소매물도를 ‘환상의 섬’이라 일컫게 만든 절경들은 거개 몽돌밭 건너편의 등대섬에 몰려 있다.

    본디 ‘해금도’(海金島)라 불리는 등대섬은 면적이 약 2000평에 지나지 않는 손바닥만한 섬이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샅샅이 둘러보더라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좁다. 하지만 천혜의 풍광만큼은 선경(仙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빼어나게 아름답다. 새하얀 암벽과 갖가지 형용의 바위들, 눈이 시도록 새파란 물빛과 아스라한 수평선,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초원과 우뚝한 등대 등의 어울림은 한 폭의 풍경화보다 더 그림 같다.



    이토록 놀랍고도 황홀한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신선처럼 늙지 않겠다”는 허황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소매물도 항로표지 관리소’ 소장인 최중기씨를 보면 그런 생각이 허황한 것만은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흔히들 ‘등대지기’라고 하는 ‘항로표지 관리인’ 업무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는 최씨의 나이는 올해 마흔일곱. 그러나 외모로는 30대 후반, 많아야 4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최씨 자신도 “젊었을 적부터 물 맑고 공기 좋은 섬에서만 살아온 덕택”이라고 말할 만큼 낯빛과 피부가 젊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타고난 심성조차도 여유 있고 느긋해 보인다.

    하지만 최씨와 그의 동료들은 이곳에서의 일상이 그리 한가하진 않다. 등대가 단 일초도 차질 없이 제 구실을 다하려면 늘 기계를 점검하고 작동 여건을 살펴야 한다. 또한 하루에 한번쯤은 등대 위에 올라가 등(燈)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불빛이 멀리 퍼져나가는 데에 지장이 없도록 유리창을 닦아주는 것도 그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게다가 등대섬을 찾는 관광객들이 폭증하는 여름철에는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수월찮다고 한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하얀 구절초가 만개한 등대섬의 풀밭에서는 쓰레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천태만상 기암이 반기는 ‘환상의 섬’
    평화롭고 여유 있어 보이는 등대섬 항로표지 관리인들의 삶과는 달리, 소매물도 주민들의 삶은 매우 치열하고도 각박하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말못할 아픔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곳 사람들의 서러운 사연과 곤고(困苦)한 삶은 이방인에게조차도 절망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소매물도에는 35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았다고 한다. 이 섬의 빼어난 풍광이 외지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때였으므로 주민들은 얼마 안 되는 남새밭을 일구거나 바닷가에서 돌미역을 채취하여 생계를 이었다. 더욱이 사방이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라고는 하나 제대로 된 방파제가 없어서 큰 배를 부릴 처지도 못되었다. 지금도 이곳 주민들 가운데 전업어부는 한 명밖에 없고 나머지는 관광객과 낚시꾼들을 상대로 하는 유선업(遊船業)과 민박으로 살림을 꾸려간다. 그러니 주민들은 늘 섬을 떠나고 싶어했고, 마침내 자기 집과 땅은 모두 이 섬과 등대섬에 대규모 관광단지를 개발하려는 어느 서울 사람에게 팔아버렸다.

    이후 주민들도 하나둘씩 뭍으로 떠나가는 바람에 지금은 14가구에 28명만 남았다. 그나마 제 땅과 집을 가진 주민은 한 가구뿐이다. 대부분 환갑을 넘긴 노인들인 나머지 주민들은 제집에서 남의집살이를 하는 셈인데, 집세 명목으로 민박수입의 반을 ‘서울주인’에게 건네준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이제 와서 어떡하겠능교? 남의 집에 사니께 돈 내라면 내야지. 가진 것도 없는데 이 나이에 어디로 나갈 수가 있소?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기라.”

    평생 동안 이 섬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한 노파는 절망과 체념으로 가득 찬 넋두리를 긴 한숨에 실어서 쏟아냈다. 통영항으로 내달리는 여객선에 몸을 실은 뒤에도 그 노파의 한숨과 넋두리가 내내 귓전에 맴돌았다. 그리고 안개처럼 부연 창 밖으로는 ‘환상의 섬’이 아닌 ‘절망과 분노의 섬’ 소매물도가 아스라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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