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0

2000.02.03

무능한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 입력2006-07-06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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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능한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오늘밤도 편히 주무셨는지요.

    겨울이 더욱 모질게 다가왔습니다. 온몸을 몸서리치게 망가뜨렸던 산고를 치르시고 세상에 내놓은 저희 5남매.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지 못해 항상 죄송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어머니, 저는 무능합니다. 저는 짧은 시간에 돈방석에 앉은 수완좋은 사업가도 아니요, 단 몇분의 출연으로 수억을 거머쥐는 유명 연예인도 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어머니께 동사무소에서 차비를 타드리는 일뿐입니다. 세월은 우리에게 살아갈 것을 강요하며 덧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제 어머니께서는 사십줄에 접어든 저에게 사탕 한 꾸러미를 내미셨습니다. “아가, 이거 먹으련?” 하시며 쪼글쪼글 주름진 손으로 사탕을 주시던 어머니. 어머니께는 제가 아직도 코흘리개로 당신의 앞가슴을 주무르던 다섯살 소녀같이 느껴지시나요.



    두고 갈 것도 없는 이 한 세상 살아가는 것이 왜 이리 힘겨운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저는 어머니께 선물을 해드리려고 저금통을 뜯었습니다. 그리고 스카프 한 장을 샀지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 세월은 참으로 무상하지요. 사람들은 또 왜 그리도 간사한지요. 누가 외제명품을 몸에 걸쳤다 하면 나도 걸쳐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니…. 저도 한국의 전형적인 속물 아줌마인가 봐요.

    며칠전 어머니께서는 부족한 저에게 떡국을 끓여 주셨지요.

    “이 떡국 먹고 소설 열심히 써봐라. 혹시 아냐? 네가 노벨문학상이라도 받을는지….” 저는 와락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일찍부터 생활보호 대상 지원금으로 제 원고지 값을 꼬박꼬박 대주시던 어머니. 변변히 용돈 한 번 제대로 드리지도 못한 저로선 깊게 파인 어머니 주름살을 보노라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머니. 부디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오.

    오늘도 문틈으로 스며드는 겨울바람이 차갑습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요.

    어머니, 저의 헛된 글쓰기 작업도 언젠가는 햇빛을 볼 날이 올 겁니다. 그날 저는 외치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제 원고지 값 달라고 하지 않을게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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