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1

2016.06.08

사회

소규모 수학여행의 불편한 진실

교육부 여행 지침에 교사, 학부모, 업자 울상…리베이트 여지 오히려 늘어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6-03 17: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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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충남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 2014년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 사태 여파로 크게 줄었던 중고교 수학여행이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건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형태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 수학여행이 학년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형태였다면, 최근에는 100명 이하 소규모 여행이 주를 이룬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교육부의 지침 때문이다.

    소규모 수학여행은 기존 한 학년 전체가 함께 가는 대규모 여행에 비해 학생들이 원하는 체험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여행 인원이 줄면서 인당 비용은 늘어나 학부모 부담이 커지고, 인솔교사가 떠안는 업무와 책임도 크게 늘었다. 더욱이 숙박이나 교통수단의 계약 금액 규모가 줄면서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도 크게 늘어 학교와 업체 간 리베이트 차단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학여행 모습이 지난 2년간 크게 변한 것은 올해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 내린 ‘현장학습 매뉴얼’에서 비롯됐다. 수학여행, 소풍 등 현장학습 관련 지침서인 이 문서에는 ‘교육과정과 연계한 계획적인 소규모·테마형 수학여행을 원칙으로 추진한다’고 명시돼 있다. 게다가 세부 내용에는 대규모 수학여행의 경우 학부모 동의 절차, 안전요원 확보, 교육청 점검 등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사실상 교육부가 소규모 수학여행을 강제하는 셈이다.



    수학여행 비용도, 교사들의 부담도 증가

    교육부가 파악한 최근 3년간 학교별 수학여행 현황을 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수학여행을 떠난 학교는 전국 1만1612개 가운데 5247개(45%)에 불과했다. 대규모 인명 사고로 그해 수학여행이 대부분 취소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다시 수학여행을 가는 학교가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전국 1만1741개 학교 가운데 6928개(59%)가 수학여행을 갔다. 올해는 1만1803개 학교 가운데 8017개(68%)가 수학여행을 다녀왔거나 앞으로 갈 예정이다.  



    과거 수학여행은 한 학년, 소규모 학교인 경우 학교 전체가 같은 날, 같은 곳으로 움직이는 대규모 여행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100명 이하 소규모로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수학여행을 간 학교 6928개 가운데 150명 이상 대규모로 진행한 곳은 895개(13%)뿐이었다. 수학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A여행사 관계자는 “소규모 수학여행이 확실히 늘고 있다”며 “대규모로 가도 숙소와 동선을 다르게 해 별개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소규모 여행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가 충족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만큼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단체로 같은 여행사의 관광버스를 타고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며 같은 숙소에서 잠을 자는 기존 수학여행에 비해 소규모 수학여행은 숙소도 따로, 동선도 따로 해 그만큼 비용이 늘어난다. 서울 강남지역 한 고교 교사는 “소규모 여행으로 바꾼 뒤 비행기를 타고 제주나 일본에 가는 경우가 많다. 학년 전체가 같이 가되 동선과 숙소만 달리 잡으면 소규모로 인정된다”고 했다. 강원 고성의 한 중학교 교사도 “소규모 여행이라도 학사 일정 때문에 대부분 같은 날, 같은 장소로 가서 동선만 다르게 진행한다”며 “그렇게 해도 과거보다 비용이 많이 늘었다”고 밝혔다.

    늘어난 것은 여행비용뿐이 아니다. 학생들이 팀을 이뤄 소규모로 움직이다 보니 그만큼 인솔교사도 더 필요해졌다. 과거에는 각 반 담임교사와 전체 인솔교사가 학생들의 안전을 관리했으나, 교육부의 강화된 지침에 따르면 학급당 두 명의 인솔자를 둬야 한다. 게다가 기존에 한 번이던 사전답사도 계약 전후로 한 번씩 총 두 번으로 늘어났다. 교사들은 이에 더해 수학여행 관련 안전교육까지 받아야 한다. 인천의 한 중학교 교사는 “수학여행 인솔교사들에게 학교 측이 안전 전문요원 연수를 받으라고 권고하는 등 업무가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 현장에서는 수학여행에 대한 부담 때문에 1학년 담임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서울의 한 고교 3학년 담임교사는 “소규모 여행이라도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통솔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수학여행을 가는 게 싫어서 오히려 일이 많은 3학년 담임을 지원했다”고 털어놨다. 



    수의계약 증가, 리베이트도?

    소규모 수학여행의 증가로 학교와 학부모가 부담해야 할 총비용은 늘었지만 각 여행사나 숙박시설, 관광버스 사업자는 오히려 울상이다. 반별로 계약하기 때문에 계약당 매출이 현저히 줄고, 수의계약이 늘어 각급 학교에 ‘인사할’ 대상 또한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2000만 원 이하 계약은 경쟁 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진행할 수 있다. 각 반마다 여행에 드는 비용이 2000만 원에 미치지 못할 경우 수학여행도 경쟁 입찰 없이 수의로 진행할 수 있게 된 것. 업자들 처지에선 학년 전체로 계약하면 계약 금액이 크고, 경쟁 입찰이라도 ‘인사할’ 곳이 정해져 있어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았다는 것.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2010년 7월 수학여행 등 학교 행사를 치르며 관련 업체로부터 총 6억8000여만 원 금품을 받은 초중고교 교장 138명이 경찰에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학교와 업체 간 뒷거래를 차단한다는 취지로 전체 예산이 2000만 원을 넘는 수학여행 및 현장학습의 경우 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을 통해 입찰 계약을 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과거 대형 수학여행이 많던 시절에는 2000만 원 이하 계약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반별로 계약 형태가 바뀌면서 이제는 2000만 원을 넘는 계약이 오히려 드문 상황. 교육부 관계자도 “수학여행이 소규모로 바뀌어 수의계약을 채택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소규모 계약이 늘면서 리베이트 등 비리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에 대해 “심의 규정이 있기 때문에 리베이트 등의 위험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한 업체만 견적을 제출하는 수의계약의 경우에도 ‘수학여행·수련활동 활성화위원회’(활성화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활성화위원회는 교사와 학교운영회 학부모 위원, 각 학년 학부모 대표 등으로 구성된 내부 심의위원회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의계약이라도 활성화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만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어 리베이트 같은 뒷거래가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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