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을 방문한 '6·25 전쟁 영웅' 고(故) 워커 장군의 손자 샘 워커 2세 부부(가운데)가 워커힐 임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SK 제공]
한미동맹 70주년이자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올해 워커 장군가와 SK그룹의 각별한 인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SK그룹은 1953년 4월 최종건 창업회장이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직물공장을 재건하면서 시작됐다. SK 관계자는 “SK의 역사와 한미동맹의 역사는 궤를 같이한다”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굳건한 한미동맹이 있었기에 전쟁 폐허 위에서 SK와 같은 기업이 태동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미동맹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SK
6.25 전쟁 영웅인 워커 장군은 초대 주한 미8군 사령관으로 6.25전쟁 때 일명 ‘워커 라인’으로 불린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한 주역이다. 당시 워커 장군이 남긴 외침 “지키느냐, 죽느냐(Stand or die)”는 지금도 군인 정신의 표상으로 회자된다. 한국 정부는 이런 워커 장군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1963년 워커힐 호텔을 개관했다. 당시 워커힐 호텔은 주한 미군 및 외교관 등을 위한 휴양 단지로 인기를 끌었다.직물공장으로 출발한 SK그룹은 1973년 창립 20주년을 맞은 해에 워커힐 호텔을 인수했다. 워커 장군의 희생이 밑바탕이 돼 기업을 일으킬 수 있었던 SK그룹이 워커 장군을 기리는 워커힐 호텔을 인수한 것이다. SK그룹으로서는 종합섬유기업이라는 틀을 깨고 사업 다각화의 첫 발을 내딛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워커 장군의 손자인 샘 워커 2세 부부는 1981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지킨 대한민국을 처음 찾아 할아버지를 기리는 워커힐 호텔에서 휴가를 보냈다. 당시 샘 워커 2세 부부는 “서울이 찬란하게 변했다. 거대한 변혁이란 단어는 바로 한국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샘 워커 2세 역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1987년 한국 근무를 자원해 1991년 걸프전 발발 전까지 주한 미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SK그룹도 워커 장군가의 한국 사랑에 감동해 워커 장군을 비롯한 6.25참전용사들의 헌신을 기리고자 1987년 워커힐 산책로에 장군의 기념비를 세웠다. 그러자 워커 장군가는 워커 장군의 서거 70주년이 되는 2020년 워커 장군의 유품인 청동 불상을 워커힐에 기증했다. 위기 속에서도 미래를 꿈꿔온 한국 역사를 함께 기억하길 바란다는 취지였다.
고(故) 워커 장군의 손자 샘 워커 2세 부부가 조부의 애장품이던 청동불상이 전시된 것을 보고 있다. [SK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7년 7월 미국의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 6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미간 경제 협력과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밴플리트상’을 수상했다.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수상한 바 있어 최초로 부자가 밴플리트상을 받은 기록을 남겼다.
‘추모의 벽’ 건립에 100만 달러 기부
2021년 5월 SK그룹은 한국전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의 벽’ 건립에 100만 달러(약 13억 원)를 한국 기업 최초로 기부한 바 있다. 추모의 벽은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세워진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조형물로, 한국정부 예산 지원과 SK그룹 등 기업과 민간 모금 등으로 건립됐다.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 한국전쟁 정전일을 맞아 열린 ‘추모의 벽’ 제막식에 직접 참석해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와 추모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 기념공원 건립을 이끌었던 고(故) 윌리엄 웨버 대령의 부인 애널리 웨버 여사를 만나 희생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위로했다. 최 회장은 이날 행사 직후 취재진과 만나 100만 달러 기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추모의 벽은 한미동맹의 큰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며 “미국의 심장부인 이곳에 추억의 벽이 건립되면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계속해 남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준공식에 참석해 고 윌리엄 웨버 대령의 부인을 만나 추모의 뜻을 전하고 있다. [SK 제공]
샘 워커 2세 부부도 7월 24일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13년 65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제1회 백선엽 한미동맹상 수상자로 선정된 워커 장군을 대신해 방한한 이후 2020년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는 거의 매해 한국을 찾았고, 그 때마다 워커힐을 방문했다. 샘 워커 2세 부부는 7월27일 부산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과 7월 28일 칠곡에서 열린 워커 장군 흉상 제막식에 참석한 뒤 사흘간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 머물며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워커힐 호텔 내에 조성된 워커 장군 기념비를 찾아 헌화와 함께 고인을 추모하고, 본관 로비에 전시 중인 청동불상도 관람했다.
70년 전 전쟁의 폐허 속에 창립한 SK그룹과 3대에 걸쳐 한국을 지켜낸 워커 장군가와의 인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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