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걸이 9번째 미니앨범 ‘Golden Hourglass’를 발표했다. [WM엔터테인먼트 제공]
어쩐지 옛 생각이 나는 신작이다. 오마이걸의 9번째 미니앨범 ‘Golden Hourglass’와 타이틀곡 ‘여름이 들려(Summer Comes)’다. 밝고 화려하며 기운차게 킥을 밟아가는 이 로맨틱한 여름 댄스곡은 그야말로 코로나19 사태 전 여름 같기만 하다. 사랑스러움이나 솔직한 연애감정의 표현 등 그간의 K팝, 특히 걸그룹 음악의 트렌드 변화와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새다. 랩이 들어왔다가 멜로디와 주고받는 타이밍에서도 가요적인 친숙함이 여실하고, 심지어 좀비 등으로 분한 남성 배우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방법으로 귀여운 매력을 표현하는 뮤직비디오는 그야말로 예스럽다 하기에 충분하다.
뜨거운 여름 바닷가와 사랑을 노래하지만, 가사의 시선도 많은 부분 과거에 한 발을 딛고 있다. 노래는 ‘지난여름 둘이 타오르던’ 날들을 회상하며 ‘그날처럼 간절하게 기다린’ 인물을 담는다. ‘또 네가 들리잖아’나 후렴의 ‘널 떠올리면 또 설레’의 ‘또’는 ‘다시’로 바꿔 써도 의미상 무방하다. 이것은 여름에 이뤄지는 사랑노래가 아닌, 여름이 돼 되돌아온 사랑노래다. 오마이걸이 1년 4개월 만에 컴백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겠다. 말하자면 팬들이 느낄 반가움에 연동될 만한 서사라는 것이다.
오마이걸 특유의 사랑스러움 담아
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들 팬들의 반가움이 덜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엇박자로 밀어대는 도입부의 날렵한 리듬감부터가 오마이걸의 것이기 때문이다. 곡은 맹렬한 비트 위에서 오밀조밀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예쁜 멜로디로 신나게 들떠 오른다. 가사의 회고적 시선도 ‘비밀정원’ 등에서 완성된 특유의 서정적이고 속 깊은 감성적 인물상에 수렴한다. 보컬 음색의 조합과 교차는 미려한 색조로 기세 좋게 굴곡을 이루고, 보컬그룹으로서 오마이걸의 강점을 충분히 보여준다. 랩과 보컬 양면에서 활약하는 미미의 거친 듯한 음색이 역동성을 더하기도 하지만, 후반부의 거의 날카롭기까지 한 합창(chant)은 화룡점정을 이룬다. 청순형 걸그룹 중 하나로 이해되기도 하던 와중에도 이들을 ‘순’하게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으름장 놓는 일은 없으나, 스피커 앞을 향해 공격적으로 치고 날아드는 힘 말이다.그것은 ‘여름이 들려’가 트렌드와 일견 판이해 보이면서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이유다. 이들의 과거 곡들이 보여준 감성적 면모는 로맨틱한 상상과 신념이 뒤섞이며 복잡다단해진 마음을 다정하게 담아낸 데서 만들어진 입체성이었다. 이 인물은 물정을 모르거나 유약하지 않다. 이 미니앨범의 수록곡 ‘내 Type’에서 보이듯 때로 거만하거나 여유롭기도 하고, ‘Dirty Laundry’에서처럼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며 끊어낼 줄도 아는, 그러면서도 나쁜 기억도 끌어안고 소화해낼 수 있는 지혜로움도 있다. 이들의 ‘사랑스러움’은 무해함이나 무구함이 아닌, 차라리 선량함에 기초한다. 그래서 생겨나는 ‘친구로 삼고 싶어지는’ 마음이 곧 많은 청자가 K팝의 경쟁을 떠나 이들에게 애정을 품을 수 있는 이유라고나 할까.
이처럼 ‘여름이 들려’는 무엇보다 오마이걸이라는 구축된 세계의 정수를 밀도 있게 담아낸 곡이다. 오랜만의 컴백을 위한 정석적 선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미 몇 번의 지각변동을 거친 K팝 세계에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본래의 매력이 트렌드에 기댄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클래식한 지점을 건드리는 흔치 않은 것이었음을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면 말이다. 오마이걸 곡들이 표현하는 속 깊은 친구는 아무래도 보기보다 단단한 인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