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지인의 요청으로 대구 수성구에서 고교생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입시전략인지, 영재교육법인지 모를 특강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하지 않는다” “공부를 하면 잘할 수 있을 텐데 게임만 해서 속상하다” 등의 얘기를 했다. 전국 어느 모임에서나 듣는 말이다. 너무 똑같은 말이 반복돼 신기할 정도다. 왜 아이들은 공부를 하지 않을까. 사실 상당수 학생은 열심히 공부한다.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칠 뿐이다. 게다가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머리가 나쁘다는 것만 증명하는 셈이기에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는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하지 않아 성적이 나쁠 뿐이라고 말이다.
‘신이 내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을 천재라고 부른다.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노력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을 첫 번째 유형의 천재라고 해보자. 필자는 새로운 두 번째 유형의 천재가 더 많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다. 재능은 없지만 자신의 일에 열정과 소명의식을 갖고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업적을 남기는 유형이다. 건축가 가운데 예를 들면 르 코르뷔지에가 첫 번째 유형의 천재이고, 루이스 칸이 두 번째 유형의 천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대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나는 노력을 엄청나게 하지만 성적이 나쁜 학생을 좋아한다”며 “이런 학생들이 자주 성공하더라”고 빈번히 말한다. 이 유형의 학생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힘들지만 버틸 만하다. 가끔 재밌다”가 그것이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 딕 포스베리는 자신이 체육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새로운 점프 스타일인 ‘배면뛰기’를 만들었고 전설이 됐다. 이처럼 무엇을 잘하는 것보다 그 분야에 대한 열정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잘하려 하지 말고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야 한다. 창조는 절망에서 나온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에서는 세계기록을 세운 한 위대한 수영선수가 “사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며 “오래도록 배우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수영을 할 수는 있다”면서도 “내가 수영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카프카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인류의 미래는 재능 없는 사람들에게 달렸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한국에서 한 해 300명 이상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 톱 스쿨이나 프랑스 그랑제꼴 졸업자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소위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나 KAIST 출신 대학생, 의대생에 이 300명이 다 있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180명 정도 아닐까. 서울과 지방의 여러 학교에 최고 두뇌가 적어도 100명 이상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커트라인이라는 것은 최저 기준이기에 그 위의 분포는 알 수 없다. 한국 최고 명문대라는 서울대도 인도 공과대나 미국 톱 스쿨의 최고수 영재와 경쟁할 만한 인재를 50명 이상 갖추기 어렵지 않을까. 3500명 중에 50명이다. 나머지 서울대생은 21세기에 평범한 중산층이 되기도 어려울 수 있다. 로스쿨이나 의대를 졸업해 관련 자격증을 갖는 것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서열화는 극단적으로 진전된 상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 두뇌의 차이는 점차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대학 서열도 점차 무의미해질 테다. 아주 극소수의 슈퍼 두뇌와 비즈니스 천재에게 부가 극단적으로 집중될 수 있는 것이다. 중간 수준의 사람들이 갖는 두뇌 차이는 과거와 같은 소득 격차의 원인이 되기 어려울지 모른다. 오히려 감성적·육체적 역량이 새로운 중산층의 조건이 될 수 있다. 과거의 낙오자가 미래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지적 능력의 양극단이 부자가 되는 세상이 온다. 새로운 평등의 세상이 오고 있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를 지내고 있다.
딕 포스베리가 1968년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뉴욕 육상대회 높이뛰기에서 배면뛰기로 바를 넘고 있다. [뉴시스]
“힘들지만 버틸 만, 가끔 재밌다”
입시는 유전자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노력도 재능의 일부다. 필자는 고민을 토로하는 학부모들에게 “머리가 좋아야 노력도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인과관계는 다음과 같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댁의 자제들은 머리가 나쁘니까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정말 완벽한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하려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노력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인생은 운이기도 하다”고 말했는데, 더 긴 침묵이 이어졌다.‘신이 내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을 천재라고 부른다.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노력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을 첫 번째 유형의 천재라고 해보자. 필자는 새로운 두 번째 유형의 천재가 더 많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다. 재능은 없지만 자신의 일에 열정과 소명의식을 갖고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업적을 남기는 유형이다. 건축가 가운데 예를 들면 르 코르뷔지에가 첫 번째 유형의 천재이고, 루이스 칸이 두 번째 유형의 천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대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나는 노력을 엄청나게 하지만 성적이 나쁜 학생을 좋아한다”며 “이런 학생들이 자주 성공하더라”고 빈번히 말한다. 이 유형의 학생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힘들지만 버틸 만하다. 가끔 재밌다”가 그것이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 딕 포스베리는 자신이 체육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새로운 점프 스타일인 ‘배면뛰기’를 만들었고 전설이 됐다. 이처럼 무엇을 잘하는 것보다 그 분야에 대한 열정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잘하려 하지 말고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야 한다. 창조는 절망에서 나온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에서는 세계기록을 세운 한 위대한 수영선수가 “사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며 “오래도록 배우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수영을 할 수는 있다”면서도 “내가 수영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카프카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인류의 미래는 재능 없는 사람들에게 달렸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한국에서 한 해 300명 이상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 톱 스쿨이나 프랑스 그랑제꼴 졸업자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소위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나 KAIST 출신 대학생, 의대생에 이 300명이 다 있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180명 정도 아닐까. 서울과 지방의 여러 학교에 최고 두뇌가 적어도 100명 이상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커트라인이라는 것은 최저 기준이기에 그 위의 분포는 알 수 없다. 한국 최고 명문대라는 서울대도 인도 공과대나 미국 톱 스쿨의 최고수 영재와 경쟁할 만한 인재를 50명 이상 갖추기 어렵지 않을까. 3500명 중에 50명이다. 나머지 서울대생은 21세기에 평범한 중산층이 되기도 어려울 수 있다. 로스쿨이나 의대를 졸업해 관련 자격증을 갖는 것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두뇌 차이 의미 줄어들 것
숨어 있는 천재가 앞으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것이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다. 새로운 유형의 천재 등장은 적어도 600명, 많으면 2000명까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어디에서나 나올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배우는 교육방식이 그들을 발견하거나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라틴어와 한문을 동시에 배우기, 고전을 읽고 토론하고 글로 쓰기 같은 교육이 필요하다. 예술과 체육에 30% 넘는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 사실은 아주 오래된 생각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배우는 사람은 지구상 어디에나 있거나 다빈치스쿨 학생일 것이다.한국 사회에서 대학 서열화는 극단적으로 진전된 상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 두뇌의 차이는 점차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대학 서열도 점차 무의미해질 테다. 아주 극소수의 슈퍼 두뇌와 비즈니스 천재에게 부가 극단적으로 집중될 수 있는 것이다. 중간 수준의 사람들이 갖는 두뇌 차이는 과거와 같은 소득 격차의 원인이 되기 어려울지 모른다. 오히려 감성적·육체적 역량이 새로운 중산층의 조건이 될 수 있다. 과거의 낙오자가 미래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지적 능력의 양극단이 부자가 되는 세상이 온다. 새로운 평등의 세상이 오고 있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