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는 2000년과 2004년 모두 박빙의 ‘전쟁’이었으나, 결과는 달랐다. 2000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앨 고어 당시 민주당 후보보다 전체 득표수에서 40만표 뒤졌다. 또 ‘모든 표를 재검표하라’는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연방 대법원이 위법이라며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부시 대통령은 애당초 백악관 주인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1월2일 치러진 2004년 대선 결과는 부시 대통령의 정통성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지난 대선 결과와 대조적이다. 부시 대통령은 선거인단의 과반수(270명)를 넘는 성과를 올렸을 뿐만 아니라, 전체 득표수에서도 케리 민주당 후보보다 350만표 앞서 예상과 달리 낙승했다. 1992년 당시 무명인사에 가까웠던 빌 클린턴에게 백악관을 물려주고 떠나야 했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새 역사를 이룬 부시 대통령의 ‘무난한’ 재선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먼저 51%의 미국 국민들은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군 통수권자를 갈아치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라크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으며,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알 카에다가 관계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또 현재까지 1000명이 넘는 미군 사망자와 1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이라크인 사망자가 부시 대통령의 일방적이고도 성급한 결정 때문에 희생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과반수를 약간 넘는 유권자들은 부시를 계속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선거 전략가 칼 로브 일등공신
부시 재선의 공로자를 꼽자면 부시 진영의 선거 전략가 칼 로브가 아닐까 싶다.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수석정치고문인 그는 지난해 자신의 워싱턴 오두막집에서 열린 ‘조찬 클럽(the Breakfast Club)’에서 민주당 공략법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케리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flip-floper)’으로 몰아붙였고, 월남전 당시 케리가 구출한 것으로 알려진 고속정 선원들을 접촉해 케리가 전투 당시 도망가기 바빴다는 말을 퍼뜨려 그의 무공훈장에 흠집을 냈다. 이러한 부시 진영의 네거티브 전략은 유권자들에게 케리가 ‘전쟁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부적격자’라는 인상을 주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국민이 부시를 선택한 가장 중요한 배경은 미국 사회의 보수화 현상에서 찾는 게 정답일 것이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연방 상하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승리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미국은 보수화되고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투표에 영향을 준 가장 중요한 기준은 테러와의 전쟁도, 경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도덕적 가치관이었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22%가 도덕적 가치, 20%가 경제, 19%가 테러리즘을 가장 중요한 투표의 기준이라고 밝혔는데, 낙태·동성 결혼·줄기세포 실험, 가족에 대한 인식 등이 미국인들이 우려하는 주요 도덕적 가치관이다. 특히 불꽃 튀는 접전지였던 오하이오주 출구조사에서 스스로를 보수적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유권자가 24%였고, 이들 중 무려 73%가 부시를 지지했다.
머리 아닌 가슴으로 투표
미국 내에서 동성 간 결혼을 최초로 허용한 주가 매사추세츠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월 매사추세츠주가 주 대법원 결정에 따라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했을 때, 이에 대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반응은 완연히 달랐다.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은 연방헌법 부칙을 하나 더 제정해서라도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의미한다는 것을 헌법화하는 시도까지 했다. 그러나 케리 후보와 민주당은 이러한 헌법 개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또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소돔과 고모라’에 비교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거 케리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 또한 미국 중서부와 남부의 주민들에게 반(反)케리 정서를 심어주는 데 영향을 끼쳤다.
오사마 빈 라덴이 선거 열흘 전 TV에 모습을 나타냈던 사건보다 선거에 더 영향을 미친 사건은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 대법원장의 갑상선암 발병일 것이다. 보수 성향을 가진 미국 국민들은 케리 후보가 승리한 후 렌퀴스트의 후임으로 진보적인 인물을 새 대법원장으로 임명하고, 또 나머지 8명의 대법관들 중 80살이 넘거나 건강 문제로 자진 은퇴하는 판사들의 후임으로 민주당 성향 법조인들을 임명하는 상황을 염려했다. 현재 보수파 5명, 진보파 4명으로 구성된 대법원의 구성 비율이 크게 변화해 대법원이 탈바꿈하는 가능성을 두려워한 나머지 마지막 순간에 부시 대통령을 찍기로 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만큼 연방헌법의 의미를 해석하는 연방 대법원의 영향력은 미국 사회에서 막강하다. 1973년 로이 대 웨이드((Roe vs. Wade) 판례는 여성의 낙태 권리를 보장한다는 판결이었다. 이 판결 이후 해마다 150만건의 낙태 수술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30년간 한국 인구에 맞먹는 수의 태아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지금까지도 매해 이 판결이 내려진 1월22일 낙태 반대자들의 집회가 열리고 있으며, 이들은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자신들의 뜻을 관철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2004년 미 대선에서 미국인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투표했다. 만약 이성이 앞섰다면 이라크전쟁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서라도 케리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공공연히 독실한 신앙심을 피력하는 부시 대통령을 위태로운 미국의 도덕적 가치관을 회복시켜줄 구원투수로 선택했다는 점이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1월2일 치러진 2004년 대선 결과는 부시 대통령의 정통성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지난 대선 결과와 대조적이다. 부시 대통령은 선거인단의 과반수(270명)를 넘는 성과를 올렸을 뿐만 아니라, 전체 득표수에서도 케리 민주당 후보보다 350만표 앞서 예상과 달리 낙승했다. 1992년 당시 무명인사에 가까웠던 빌 클린턴에게 백악관을 물려주고 떠나야 했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새 역사를 이룬 부시 대통령의 ‘무난한’ 재선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먼저 51%의 미국 국민들은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군 통수권자를 갈아치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라크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으며,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알 카에다가 관계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또 현재까지 1000명이 넘는 미군 사망자와 1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이라크인 사망자가 부시 대통령의 일방적이고도 성급한 결정 때문에 희생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과반수를 약간 넘는 유권자들은 부시를 계속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선거 전략가 칼 로브 일등공신
부시 재선의 공로자를 꼽자면 부시 진영의 선거 전략가 칼 로브가 아닐까 싶다.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수석정치고문인 그는 지난해 자신의 워싱턴 오두막집에서 열린 ‘조찬 클럽(the Breakfast Club)’에서 민주당 공략법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케리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flip-floper)’으로 몰아붙였고, 월남전 당시 케리가 구출한 것으로 알려진 고속정 선원들을 접촉해 케리가 전투 당시 도망가기 바빴다는 말을 퍼뜨려 그의 무공훈장에 흠집을 냈다. 이러한 부시 진영의 네거티브 전략은 유권자들에게 케리가 ‘전쟁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부적격자’라는 인상을 주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국민이 부시를 선택한 가장 중요한 배경은 미국 사회의 보수화 현상에서 찾는 게 정답일 것이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연방 상하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승리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미국은 보수화되고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투표에 영향을 준 가장 중요한 기준은 테러와의 전쟁도, 경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도덕적 가치관이었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22%가 도덕적 가치, 20%가 경제, 19%가 테러리즘을 가장 중요한 투표의 기준이라고 밝혔는데, 낙태·동성 결혼·줄기세포 실험, 가족에 대한 인식 등이 미국인들이 우려하는 주요 도덕적 가치관이다. 특히 불꽃 튀는 접전지였던 오하이오주 출구조사에서 스스로를 보수적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유권자가 24%였고, 이들 중 무려 73%가 부시를 지지했다.
머리 아닌 가슴으로 투표
미국 내에서 동성 간 결혼을 최초로 허용한 주가 매사추세츠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월 매사추세츠주가 주 대법원 결정에 따라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했을 때, 이에 대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반응은 완연히 달랐다.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은 연방헌법 부칙을 하나 더 제정해서라도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의미한다는 것을 헌법화하는 시도까지 했다. 그러나 케리 후보와 민주당은 이러한 헌법 개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또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소돔과 고모라’에 비교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거 케리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 또한 미국 중서부와 남부의 주민들에게 반(反)케리 정서를 심어주는 데 영향을 끼쳤다.
오사마 빈 라덴이 선거 열흘 전 TV에 모습을 나타냈던 사건보다 선거에 더 영향을 미친 사건은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 대법원장의 갑상선암 발병일 것이다. 보수 성향을 가진 미국 국민들은 케리 후보가 승리한 후 렌퀴스트의 후임으로 진보적인 인물을 새 대법원장으로 임명하고, 또 나머지 8명의 대법관들 중 80살이 넘거나 건강 문제로 자진 은퇴하는 판사들의 후임으로 민주당 성향 법조인들을 임명하는 상황을 염려했다. 현재 보수파 5명, 진보파 4명으로 구성된 대법원의 구성 비율이 크게 변화해 대법원이 탈바꿈하는 가능성을 두려워한 나머지 마지막 순간에 부시 대통령을 찍기로 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만큼 연방헌법의 의미를 해석하는 연방 대법원의 영향력은 미국 사회에서 막강하다. 1973년 로이 대 웨이드((Roe vs. Wade) 판례는 여성의 낙태 권리를 보장한다는 판결이었다. 이 판결 이후 해마다 150만건의 낙태 수술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30년간 한국 인구에 맞먹는 수의 태아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지금까지도 매해 이 판결이 내려진 1월22일 낙태 반대자들의 집회가 열리고 있으며, 이들은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자신들의 뜻을 관철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2004년 미 대선에서 미국인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투표했다. 만약 이성이 앞섰다면 이라크전쟁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서라도 케리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공공연히 독실한 신앙심을 피력하는 부시 대통령을 위태로운 미국의 도덕적 가치관을 회복시켜줄 구원투수로 선택했다는 점이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