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뻥튀기를 팔다가 그의 집에 들어오게 된 여자는 진지하게 그를 쳐다본다. 그러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그의 아들은 너무나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한참 쳐다보더니 일어서면서 말한다.
“권위 없어.”
배우로 영화 ‘귀여워’ 사이비 무당 장수로 역 소화
영화 ‘귀여워’에서 배우 장선우가 맡은 역은 사이비 무당 장수로다. (영화 속 대사에 따르면) 비록 한때 유행하던 것이지만 세상을 뒤엎겠다는 생각으로 여자들에게 자신의 씨를 열심히 퍼뜨리던 그는 배다른 아들 셋과 함께 황학동 철거 아파트에 산다. 홀아비 불쌍하다고 래커 기사인 둘째가 길에서 데려온 순이에게 말을 ‘깔’ 것을 제안하는 이 모습은, 배우 장선우가 아니라 인간 장선우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감독 장선우의 퇴장으로 한국 영화는 세대교체를 이루는 듯했다. 1986년 선우완 감독과 함께한 작품인 ‘서울 예수’로 데뷔한 이후 장선우는 ‘성공시대’ ‘우묵배미의 사랑’ ‘경마장 가는 길’ ‘화엄경’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나쁜 영화’ ‘거짓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을 만들었으며, 그의 작품은 모두 우리 시대의 문화적 담론이 되었다. 근교 농촌 우묵배미에서 포스트모던의 하일지 소설로, 다시 해탈과 초월을 이야기하는 불교의 화엄경을 들고 나오더니 포르노그래피를 표방하는 장정일의 소설로, 그러고는 광주의 비극에 연유한 꽃잎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의 갈‘지’자 행보는, 한국 사회의 극과 극을 종횡무진 유린하는 것이었다. 그 작품들은 당시로서는 모두 모험적이었지만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11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제외한다면.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신촌 한 술집에서였다. 93년, 그가 막 ‘화엄경’을 만들었을 때다. 그는, 당시는 한겨레신문 문화부 영화담당 기자였으며 나중에 ‘씨네21’ 편집장을 지냈고 지금은 전업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선희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그날 일종의 화해의 술자리를 벌이고 있었다. 조선희가 비판적 시각에서 ‘화엄경’의 영화평을 썼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나는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카메오로 출연할 뻔했다. 서울 남산 영화진흥공사 스튜디오에서 여관 신을 찍고 있을 때, 나는 방송 취재차 촬영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출연하기도 한 여균동 감독과 머리를 맞대더니, 정선경이 물주전자를 들고 여관방 손님에게 가는 신에서, 나더러 손님 역을 하라고 제의했다. 나는 손사래를 쳤지만 지금은 후회된다. 그때 그냥 데뷔해버릴 것을. 그것도 정선경 상대역인데.
장선우 ‘감독’과 그의 영화 ‘경마장 가는 길’ , ‘화엄경’
'거짓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가 한국 최고의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년 동안 그는 철저하게 놀았다. 처음 1년은 아무 생각 없이 놀았고, 이후 1년은 자신의 조감독 출신인 김수현 감독의 데뷔작 ‘귀여워’의 배우로 출연했으며, 촬영이 끝난 뒤에는 몽고 초원에서 말 타고 놀았다. 그 와중에 ‘이별의 노래’라는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시를 쓰려 해서 쓴 게 아니라 저절로 써져 한 권 분량의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그가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연애 때문이다. 그 역시 다른 연인들처럼 이별을 겪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거쳤는데, 내부에 고인 감정이 씻겨지면서 시로 표현되었다. 대학 때 김지하의 ‘황토’나 이용악의 시를 보면서 경외감을 느꼈지만, 자신이 시집을 낼 줄은 몰랐다. 영화는 시각적 상상력에서 시작하고, 문학은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므로 언어적 쾌감을 다루는 차이가 있다. “좋은 시절 다 간 것 같다. 지금까지는 배우로서 멋지게 영화 찍었다고 주변에 큰소리쳤는데 이제 개봉일이 다가오니 어디 숨고 싶은 마음뿐이다.” 시사회 시작 전 그는 부끄러워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표가 없어서 보지 못했고, 이제야 처음으로 영화를 본다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시사회가 끝난 뒤 그는 영화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게 아닐까 불안했다. 촬영할 때는 선배 배우님들이 잘 이끌어줘서 재미있게 찍었다. 참 다행이다. 망치게 하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여기까지 오게 되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내년 伊 페사로영화제서 그의 영화 11편 모두 상영
그는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했다. 아주 말 잘 듣는 배우가 되자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빨래를 개키고 찌개를 끓이고 순이에게 오일 마사지를 해주는 장수로라는 캐릭터가 부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옥상에서 순이가 부적을 태울 때 시가지에 불꽃이 터지며 축제 분위기로 바뀌는 장면을 보면서, 자신보다 훨씬 좋은 감독이 태어났다는 생각에 행복하기까지 했다. ‘귀여워’에는 혼돈을 미학으로 푸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귀여워’의 배우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하고 차기작 ‘천 개의 고원’ 프로젝트로 PPP(투자자를 찾는 부산영화제 섹션 중 하나)에 참여했다. ‘천 개의 고원’은 들뢰즈의 책 제목이다. 들뢰즈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글쓰기를 한 것이니까, 또 영화 내용도 지금 삶에 대한 얼터너티브한 것을 유목민들의 삶을 통해서 동화처럼 전해주려 한 것이니까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몽골의 마두금 전설을 바탕으로 한 ‘천 개의 고원’은 내년 봄부터 시작해서 눈 내리는 9월까지 몽골 올 로케로 촬영할 예정이다. 배우들은 현지 유목민을 캐스팅해서 몽골어로 촬영할 생각이다. 필요하다면 한국 배우들을 데리고 갈 수도 있다. 그는 영화에서 몽골·한국·일본·아메리칸 인디언까지 포함하는, 알타이계 민족이 갖고 있는 공통의 이상을 끄집어내려고 한다. 프랑스와 일본의 자본이 참여할 것 같은데 문제는 시나리오다. 지금까지 시나리오 한 번 쓰면 그만이었는데, 진행하면서 이렇게 다시 대본을 고쳐 쓰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그에게 ‘천 개의 고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몽골 초원에서 말을 타다가 그는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말 잘 타는 사람에게서 말타기를 배운 그는 하루 만에 칭기즈칸이 되었다. 만화가 박제동과 ‘바리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흉노시대에 대해 공부했는데, 몽골과 우리의 뿌리가 같다는 것도 영화 시작의 출발점이 되었다. “모든 고통은 애착에서 온다. 말을 너무 좋아하는 소년이 말을 잃고, 그 뼈로 악기를 만드는 이야기다. 애착을 통해서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몽골의 역사나 유목민은 배경에 불과하다. 영화 속에서는 그 애착을 어떻게 버려가는지 아이들도 볼 수 있게 쉽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즉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는 이야기다.”
지난번에 돈을 많이 까먹어서 ‘천 개의 고원’으로 많이 보태야 한다는 생각을 그는 한다. 눈높이가 아이들에게까지 내려가고 해외자본을 끌어오는 데다 관객층을 넓게 겨냥하니까 괜찮을 것 같다고, 사람들한테 신세진 것 갚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앞으로 배우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기회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6월 이탈리아 페사로영화제에서 열리는 장선우 회고전에는 그의 영화 11편이 모두 상영된다. 그는 다음에 술 한잔 사겠다며 내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그의 사무실이 있는 대학로까지 그가 운전하는 그의 여자친구 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최근 벌어진 그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이 지면에 옮길 일은 아니다. 다음에 만나 우리는 대취할 때까지 통음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끔찍하리만치 사실적이며 환상적인 영화 '꽃잎'
'배우' 장선우의 데뷔작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