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악재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리더십이 의심받고 있다.
물론 LG측은 “전자, 화학, 생활건강 등 건재한 쪽이 더 많다. 일부 계열사의 실적 부진을 두고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그 ‘위기의 일부 계열사’가 1995년 2월 구회장 취임 후 가장 역점을 둬온 사업 분야라는 것, 아울러 그 상황이 그룹 전체의 위기를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는 점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재벌그룹의 위기는 곧 오너 리더십의 위기를 뜻한다. 총수가 그룹의 색깔, 문화, 의사결정에 끼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LG그룹이라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역점 사업 분야가 ‘위기의 계열사’
구회장은 3세 경영인이다. 구인회 창업주, 구자경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총수가 됐다. 취임 초 구회장은 ‘준비된 경영자’란 세간의 평에 걸맞게 안정적인 행보를 보였다. 특히 1996년 ‘1등주의’ ‘공격경영’을 표방한 장기 비전 ‘도약 2005’를 선언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구회장 취임 전 LG의 이미지는 보수적, 안전지향적이었다. ‘인화’와 ‘정도경영’이 트레이드 마크. 이는 LG가 구씨, 허씨 일가 간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어온 것과 관련이 깊다. 무엇이든 공평하게, 토론을 통해 결정하고 투자·수익·손실에 있어서도 정해진 비율을 정확히 지킨다는 게 LG의 경영 원칙이다. ‘구씨가 주도하고 허씨가 보조한다’, ‘경영권은 구씨의 장자가 상속한다’는 것 또한 60여년 가까이 지켜온 불문율이다.
사정이 이런 만큼 “이제 LG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공격경영으로 간다”는 구회장의 선언은 긍정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구회장의 공격경영 선언은 속 빈 강정이 되고 말았다. 통신·금융 등 특정 사업 분야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자금을 투여한 것은 사실이나 전략과 비전의 부재, 그룹 체질 변화 실패로 엄청난 손실만 보고 만 것이다.
먼저 구회장은 ‘혁신’을 부르짖었으나 정작 자신은 가부장적 사고에 바탕한 장자의식과 정에 이끌리는 ‘인본주의적’ 색채를 버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LG는 “문화지체(구성원의 의식이 조직구조의 객관적 변화 및 기술발전을 따라가지 못함)에 빠졌다”는 혹평까지 들어야 했다. LG의 한 임원은 “보통 집안에서도 장손은 웃어른들의 심기를 살피는 게 가장 큰일 아니냐. 구회장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이쪽 저쪽 눈치 보느라 뭔가를 소신껏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싱글 골퍼인 구회장과 함께 라운드해본 사람은 예외 없이 그 매너와 품성, 유머감각과 주량에 두루 감탄한다고 한다. 그만큼 소탈하고 인간적이라는 것. 한 재계 인사는 “구자경 명예회장이 선 굵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스타일이라면, 구회장은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문화지향적 사람이다. 스스로도 ‘난 학창시절에 줄반장도 안 해봤다’거나 ‘장남이니 하는 거지 원래 (기업경영이) 내 취향은 아니다’라는 말을 종종할 정도다”라고 전했다.
지난해 5월, LG인화원에서 임원들과 함께한 구회장(맨 앞).
이에 대해 한 재계 원로는 “그룹 총수의 힘은 인사권에서 나온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평가하는 정확한 눈’이다. 임원들이 총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행태가 빚어지면 걷잡을 수 없다. 삼성그룹의 경우 살벌하다 싶을 정도의 가차없는 평가로 조직을 관리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구회장이 “삼성을 제치고 1등주의 실현에 성공했다”며 이헌출 전 LG카드 사장에게 7억원의 보너스를 지급하고, 타계열사 경영진들에게도 틈만 나면 “LG카드처럼만 하라”는 ‘압력’을 행사한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LG의 한 전직 임원은 “외환위기 때도 다른 그룹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다 뭐다 하며 정신없이 밀어붙였다. LG는 워낙 안전지향적 경영을 해온 탓에 리스크가 적기도 했지만 구회장이 나서서 ‘획일적 인원감축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별 풍파 없이 지나갔다. 그때 느슨하게 굴었던 대가 지금 치르는 것”이라 진단했다.
구회장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전문가 등용과 적재적소 배치에 무심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그룹 통신 부문을 이끌어온 박운서 회장은 통상산업부 차관 출신이며, 남용 LG텔레콤(이하 LGT) 사장은 구명예회장 비서 출신이다. 통신업계 출입기자들이 “LGT에는 조언을 들을 만한 통신전문가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 또한 이 같은 상황과 관련이 깊다. 이는 LG가 통신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데이콤의 한 전직 임원은 “통신산업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벤처기업처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공식이 통하는, 빠른 결단과 과감한 투자가 필수적인 분야다. 또 규제산업인 만큼 정교한 전략·전술이 필요하다. LG는 그 모두에 두루 약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통신 관련 주요사항은 그룹 통신전략회의에서 결정됐다. 그런데 그 구성원이라는 것이 박운서 회장, 남용 사장, LG석유화학 회장 출신인 성재갑 LGCI 대표이사, 재무부 장관을 지낸 정영의 회장, 허창수 LG건설 회장 등이었다. 구회장 또한 통신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운 까닭에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구회장은 ‘해당사 사장들끼리 잘 의논해 결정하라’는 ‘처방’을 내리는 데 그칠 때가 많았고, 결국 사업방향이나 투자 여부는 재무전문가가 대부분인 구조조정본부의 손에 넘어가기 일쑤였다. 재무전문가들에게 ‘얼마를 투자하면 얼마를 벌 수 있다’는 식의 말은 통하지 않는다. ‘얼마를 넣으면 꼭 얼마가 나온다’고 해야 한다. 그러니 어땠겠는가. 구조조정본부 손에 가면 되는 일도, 되지 않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통신산업에 뛰어든 것 자체인지도 모른다. LG반도체 매각대금 2조원을 데이콤, 파워콤 인수 등 정보통신 부문에 집중투자했으나 시너지 효과를 보기는커녕 부실업체만 양산했기 때문이다. 비전과 전략 부재가 낳은 뼈아픈 결과다.
잘못된 상황판단은 종종 근거 없는 낙관주의로 이어졌다. IMT2000 사업권 획득에 실패했을 때도, 하나로통신 인수 실패 때도 LG측 인사들은 끝까지 “잘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버리지 않았다. “전략이 너무 허술한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도 “우리의 모토는 정도경영이다. 우회적인 방법은 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세 수, 네 수 앞을 보는 ‘노회한 경쟁자들’ 앞에서 LG의 ‘순진함’은 약점일 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거듭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LG의 ‘정도경영’에 대한 금융시장의 신뢰도가 극히 낮다는 점이다. 한 재계 인사는 “LG는 경영상의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원인에 대한 진실한 접근과 자구노력은 하지 않은 채 정부와 금융권에 지원을 요청하기 바빴다. 2001년 유동성 위기설에 휘말린 것도 부당 내부자거래에 의한 금융시장에서의 신뢰 상실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2000년 5월 LG는 LG화학이 LG칼텍스 정유와 LG유통 등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고가 매입, 저가 매각하는 수법으로 비상장회사 특수관계인에게 부당이익을 제공해 LG화학, LG전자, LG정보통신, LGT, LG캐피탈 등 5개 계열사가 부당 내부자거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이후에도 LG는 구씨, 허씨 일가의 복잡한 주식거래로 인해 여러 번 구설에 오르거나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데이콤 인수 또한 위장계열사를 동원한 지분 매집을 통해 이뤄진 것이었다. 데이콤에 DMI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LG인터넷을 인수토록 한 과정 또한 문제였다. LG인터넷에 시세보다 높은 270억원의 가격을 매겨 결과적으로 그 지분을 보유한 LG전자와 LG전선의 투자 손실액을 데이콤이 보전토록 한 것이다.
현재 구회장은 불법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 출국금지 대상에 올라 있다. 조만간 검찰소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구회장은 과연 한꺼번에 쏟아져내리는 악재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리더십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시장은 더 이상 LG의 ‘문화지체’를 봐줄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