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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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앗 뜨거워 국민은행”

국민銀-LGT 제휴 ‘뱅크 온’에 직격탄 … e-커머스 주도권 확보 ‘발등의 불’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3-12-04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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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T “앗 뜨거워 국민은행”

    ‘뱅크 온’ 제휴식에서 휴대전화로 현금을 인출하는 방법을 시연 중인 남용 LG텔레콤 사장(왼쪽)과 김정태 국민은행장.

    요즘 서울 서린동 SK텔레콤(이하 SKT) 사옥이 전에 없는 긴장에 싸여 있다. 내년 1월1일 시행에 들어가는 번호이동성제 때문이다. 번호이동성제는 011-XXX-XXXX라는 번호를 그대로 유지한 채 LG텔레콤(이하 LGT)이나 KTF로 가입회사를 바꿀 수 있는 제도. LGT와 KTF의 총공세만도 부담스러운데, 지금 SKT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날아온 직격탄 때문에 노심초사 중이다. 복병은 국민은행이다.

    휴대전화 고객들이 회사를 바꾸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단말기 교체다. 아무래도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 그런데 국민은행이 단말기를 바꿔야만 하는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주었다. 모바일 금융거래, 즉 현재 국민은행과 LGT가 손잡고 진행 중인 ‘뱅크 온’류의 서비스를 받을 기회다. 매년 이동통신 가입자의 약 30%가 단말기를 바꾸는 것을 감안할 때 그를 포함한 상당수의 고객들이 ‘요금 절약+모바일뱅킹 서비스’가 되는 쪽으로 회사를 옮길 가능성이 크다. 아직까지 SKT는 ‘뱅크 온’ 스타일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9월1일 시작된 국민은행-LGT의 ‘뱅크 온’ 서비스를 통해 약 25만명이 LGT의 신규고객이 됐다. 번호이동성제 시행으로 011 식별번호를 가진 고객들이 현재 번호 그대로 LGT로의 이동이 가능해질 경우 그 수는 대폭 증가할 것이다. 양사의 ‘뱅크 온’ 서비스는 내년 2월 말까지 계속된다. 이후 LGT는 똑같은 스타일의 서비스를 제일은행과 손잡고 펼치게 된다. 다른 몇몇 은행과의 협상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국민은행은 LGT와의 제휴가 끝날 내년 3월1일부터는 KTF와 손잡고 비슷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KTF측은 “이미 4개 이상의 단말기 제조업체에 전용단말기를 주문해놓았다. ‘뱅크 온’보다 한발 앞선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TF 모바일뱅킹의 폭발력은 LGT보다 더 강할 것으로 보인다. LGT의 경우 ‘통화품질’에 대한 고객의 불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지만 KTF의 그것에 대해선 별 문제제기가 없는 까닭이다.

    내년 3월엔 KTF와 손잡을 예정



    사실 이렇게만 보면 어떻게 국민은행이 SKT에 직격탄을 날렸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SKT의 상대는 KTF고 LGT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모바일뱅킹의 주도자는 통신서비스사가 아니라 국민은행이다. 서비스를 위해 휴대전화 단말기에 부착하는 전용 칩이 국민은행 것이요, 이 칩을 통해 이루어지는 금융거래 정보 또한 LGT나 KTF가 아닌 국민은행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다. KTF, LGT가 앞으로 제휴할 은행들도 국민은행이 개발·배포 중인 칩을 그대로 갖다 쓸 것으로 보인다. 결국 모바일뱅킹에서 은행권은 ‘국민은행 칩’이라는 표준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반면 SKT는 어떤가. SKT 역시 오래 전부터 ‘e-커머스’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가입자 1800만명. 더 이상의 확대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존 고객을 지키고 새 수익원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 진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1년 11월 시작한 것이 ‘모네타’(모바일 신용카드)와 ‘네모’(모바일 전자화폐) 서비스다. 가상계좌를 만들어 제휴를 맺은 각 은행 및 카드사와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 아울러 휴대전화를 신용카드 대신 쓸 수 있도록 막대한 자금을 들여 30여만개의 주요 가맹점에 전용 리더기(reader)인 ‘동글이’를 깔았다.

    SKT “앗 뜨거워 국민은행”

    SK텔레콤의 ‘모네타’서비스는 야심찬 출발에도 불구하고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오른쪽).

    그러나 실적은 저조했다. 사용하기 불편한 데다 이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전용단말기를 따로 구입해야 했기 때문. ‘뱅크 온’의 경우 버튼 세 개만 누르면 바로 국민은행에 있는 자신의 계좌와 연결되는 반면, ‘모네타’는 네이트에 접속한 뒤 해당 은행과 또 접속해야 하고 다시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신용카드 서비스 사용자도 거의 없다. 마그네틱 카드 사용 소비 패턴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치명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SKT가 ‘뱅크 온’류의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는, 또는 하지 못하는 이유는 금융권과의 헤게모니 쟁탈전 때문이다. 2~3년 전부터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우리의 가장 큰 적은 SKT”라는 말을 공공연히 해왔다. 금융과 통신의 만남은 시대의 대세다. 그 와중에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양대 산업의 미래가 결정될 수도 있다. 금융거래 정보는 은행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자산이자 사실상 유일한 부가가치 창출원이다. 그런데 SKT가 바로 그 영역 침범을 선언하고 나선 것. 엄청난 고객을 거느리고 있는 만큼 SKT로서는 큰소리칠 수도 있는 문제이겠으나 은행·카드사라 해서 호락호락 당할 만큼 어수룩하지는 않았다. 통신시장에는 SKT 외에도 LGT, KTF라는 게임 상대가 더 있기 때문이다.

    더하여 SKT는 타 이동통신사와의 제휴에도 실패했다. 은행권이 ‘국민은행 칩’으로 표준을 통일하듯 이동통신 3사도 ‘모네타 칩’으로 통일할 경우 산업 대 산업 경쟁에서 승리할 공산이 커진다. 그러나 SKT는 타 이동통신사와 협상하기 이전에 ‘동글이’를 먼저 깔아놓은 후 “같이 하려면 같이 하자”는 식의 제안을 했다. LGT의 한 임원은 “우수 가맹점 위주로 먼저 ‘동글이’를 깔아놓은 후 우리 보고 들어오라는 건 사용료를 내든지 자기들이 선점하지 않은 (비우수) 가맹점에서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라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묘한 구도가 형성됐다. SKT 대 ‘국민은행을 필두로 한 은행권+LGT +KTF 연합전선’의 싸움이 돼버린 것. 그런 만큼 국민은행-LGT 제휴에 대한 SKT의 평가는 싸늘하기만 하다. “LGT가 통신산업의 미래 수익원을 국민은행에 고스란히 헌납해버렸다. 그런 식의 서비스라면 해봤자 통신사에 돌아오는 건 소수의 가입자 수 증가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LGT와 KTF의 생각은 다르다. LGT측은 “번호이동성제가 시행되면 ‘뱅크 온’ 서비스로 인한 신규가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서비스사업의 핵심은 ‘고객 중심’이다. 고객에게는 통신사 중심이냐 은행 중심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그저 편하고 저렴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KTF측도 “윈-윈 전략을 구사할 줄 모르는 SKT의 오만함이 오늘의 상황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통신-금융 컨버전스 1차전 판정패?

    국민은행측은 시장 주도권 행사를 위해 필수적인 유효고객 수(Critical Mass)를 10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국민은행의 한 임원은 “고객이 은행 중심 서비스와 통신사 중심 서비스를 모두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동통신사로서) SKT의 관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방향도 존중하지만 결국 결판은 시장에서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SKT측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최근 LGT의 고객 증가는 ‘뱅크 온’과 약정할인(장기 사용계약시 요금을 할인해주는 제도)을 함께 실시한 덕분이다. 그런데 요즘 LG그룹의 자금사정이 좀 어려운가. 아마 2000억원 이상 쓰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가입자 증가세도 멈칫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KTF도 (번호이동성제 시행과 함께) 6개월간 우리 고객을 빼앗아갈 수 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LGT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견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SKT측은 “오히려 고객들이 국민은행 서비스를 통해 모바일뱅킹에 익숙해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런 트렌드가 금융-통신 간 제도적 벽을 허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며, 결국 SKT의 금융산업 진출에 발판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계의 한 유력인사는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라며 이같이 경고했다. “금융-통신 융합 국면에서 SKT가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그쪽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직접적으로든 우회적으로든 은행 소유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방향이 틀렸다’며 그냥 방치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금융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라는 것은 통신시장에서의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금융고객은 보수적이라 거래선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국민은행측에서는 크리티컬 매스가 100만명이라고 하지만 100만명이 500만명이 되는 것은 잠깐이다.”

    SKT이라고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밖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11월 초 SKT는 국민은행에 “당신들이 원하는 조건 그대로 제휴를 맺겠다”는 일종의 ‘투항선언’을 했다. 그러나 양사간 제휴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SKT가 “대신 LGT와의 독점계약 기간을 11월까지로 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SKT 담당 임원은 “그런 적이 없다. 나야말로 왜 국민은행이 제휴에 응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국민은행 담당자는 “(SKT의 요구조건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어찌 됐든 국민은행으로서는, 언젠가 손을 잡을 것이로되 지금 당장 SKT를 ‘키워주기’는 싫은 것이다.

    타업종과의 융합, 즉 컨버전스(Convergence)는 SKT 사업 전략의 핵심이다. 통신-금융 컨버전스 또한 그런 차원에서 추진돼온 것. 그러나 국민은행의 선점 전략과 그에 대한 은행권, LGT, KTF의 기민한 호응으로 인해 이제 e-커머스는 마케팅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 즉 발등의 불이 되고 말았다. SKT가 ‘모네타’ 서비스류의 ‘궁극적 사업모델’과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조화·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은행권은 물론 타이동통신사, 금융감독원·재정경제부 등의 금융당국을 어떻게 설득해나갈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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