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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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 사람 마음 담아 써내려간 리본 글씨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3-12-05 1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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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낸 사람 마음 담아 써내려간 리본 글씨
    각종 경조사 때 보내는 난과 화환. 주빈을 대신해 참석(?)한 값비싼 꽃과 난초는 장식품에 불과할 뿐 결국 보낸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거기에 묶인 리본의 문구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율산(栗山) 조준열옹(77)이 쌓아온 이력은 남다르다. “돈 받고 팔아먹는 글씨가 뭐 대단할 게 있겠어? 보기 시원시원하게 써주면 그만인걸….”

    조옹은 1989년부터 14년 동안 서울 여의도시장 앞 영신꽃상가에서 화환리본 써주는 일을 도맡아왔다. 25개의 꽃가게가 모인 이곳에서 조옹은 절대적인 존재. 그는 공무원 생활을 한 경험을 살려 단순한 ‘글씨장이’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차츰 그의 글씨에 매료된 고객들에 의해 입소문이 퍼져 유명세를 탔다.

    “하루에 100여개 이상 글을 쓸 때도 있지만, 요즘은 컴퓨터로 출력해야 단정해보인다는 인식 때문인지 일거리가 많이 줄었어.” 몇 년 전까지는 퇴근시간 이후에도 출장을 나갈 만큼 바빴으나 최근에는 일거리가 없는 날도 많다는 게 조옹의 얘기다. 그러나 막상 행사장에 도착한 많은 화환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유려하고 힘찬 느낌을 그대로 전해주는 손으로 쓴 리본이 달린 화환. 리본글씨 이외에도 행사 식순, 집 지을 때 쓰는 상량문, 함을 주고받을 때 쓰는 사주혼서지 등 그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무궁무진하다. 1926년생으로 한국전쟁 때 개풍에서 월남한 실향민인 그가 붓글씨를 배운 것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3년 정도가 전부라고 한다. 아버지 강요에 못 이겨 서당에 다니면서 한학공부와 서예를 병행했던 것.

    “그때 억지로 붓글씨를 배우지 않았다면 이렇게 편안한 노후생활은 불가능했을 거야. 서예를 배우게 한 아버님께 감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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