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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대학 재건의 불씨 타오르다

동문회, 2001년 폐교 직후부터 꾸준한 재건운동 … “구조조정 아닌 부처 알력 탓 희생” 주장

세무대학 재건의 불씨 타오르다

세무대학 재건의 불씨 타오르다

세무대 재건 1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한 세무대 동문들(왼쪽). 세무대생들이 세운 상징탑 아래 동판에는 세무대 재건의 의지를 담은 글이 새겨져 있다.

2002년 12월24일 오후 3시 경기 수원시 파장동에 자리잡고 있는 국세공무원교육원.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세무대 학생들로 분주했던 이곳은 인적이 드문 데다 간간이 찬바람까지 불어와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이곳은 2001년 2월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으로 국립세무대학이 폐교되고 대신 국세공무원 교육시설로 운영되고 있지만, ‘세무대학 재건’이라는 불씨가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정문에서 정면으로 50m 남짓 거리에 우뚝 선 상징탑이 그 불씨의 근원지. 10여년 전 세무대 학생들이 세운 이 상징탑은 날개를 펴고 고개를 곧추세운 채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거대한 새의 조각상인데, 그 아래 동판에는 ‘세무대학의 빛나는 업적을 기리며 재건의 뜻을 담아 그 이름을 여기에 적는다’는 글씨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세무대학 총동문회의 이름으로 세운 이 동판에는 학교가 폐교되던 바로 그날인 2001년 2월28일자가 각인(刻印)돼 있다. 정부의 폐교 조치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세무대 동문들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

법적 투쟁에 재건기금 모금 운동

그런데 이 상징탑에서 불과 10여m 뒤에는 ‘국세인의 배움터를 새로이 마련하면서 오로지 조세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시는 안정남 국세청장님의 뜻’에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기념 석비가 세워져 있다. 2001년 5월10일이라는 날짜도 선명하다. ‘조세정의 구현’이라는 거대한 기념 석비 휘호 역시 안정남 전 청장의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현재 외국에 체류중인 안 전 청장은 재임시절 “누구도 해낼 수 없었던 오랜 숙제인 세무대학을 폐지했다”면서 주요 세정개혁의 치적으로 세무대 폐교 조치를 내세운 당사자. 세무대학 재건운동이 그리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듯한 표석이다.

세무대학 재건의 불씨 타오르다

겉모습은 교육원이지만 건물과 내부구조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구 세무대학.

사실 이곳은 국세공무원교육원으로 이름만 바꿔 달았을 뿐이지, 건물과 내부구조는 세무대 시절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이곳에서 8년째 정문 경비를 맡고 있다는 한 직원은 “학생들이 있을 때는 항상 왁자지껄하고 분주했는데 요새는 마치 빈집 같아서 내 마음도 쓸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교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 찾아오는 졸업생들이 적지 않아 지금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국세공무원교육원으로 변한 학교를 한바퀴 돌아본 후 축 처진 모습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그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무대학 재건운동은 폐교 조치를 당한 바로 그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세무대동문회측은 정부의 폐교 조치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세무대학재건추진위원회(이하 재건위)를 결성, 헌법재판소에 ‘세무대학법률 폐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법적 투쟁을 벌이는 한편으로 세무대학 재건기금 모금운동을 벌여왔던 것.

2002년 4월17일에는 세무대학총동문회와 재건위가 합동으로 국세공무원교육원에서 ‘세무대학 재건을 위한 10만인 서명운동 출정식’을 하기도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재정경제부(구 재무부·이하 재경부)와 국세청의 1급 공무원 자리 다툼으로 인해 세무대학이 폐지됐다”면서 서명 결과를 토대로 정부에 세무대학 재건을 촉구하고 국회에 세무대학 재건을 청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세무대 출신들은 자신들의 모교인 세무대 폐교 조치가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란 대의보다는 공무원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빚어진 어처구니없는 결정으로 여긴다는 것. 이는 세무대 탄생의 역사적 배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무대 총동문회장이자 재건위 위원장인 이정국씨(세무대 2기, 감정평가사·경영지도사)의 말.

“세무대학은 출범 때부터 여러 정부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세무대는 1980년 재경부 산하의 전문대학으로 출범했으나, 1981년 당시 김수학 국세청장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지금의 특수대학으로 변신할 수 있었는 데다 세무대 출신 대다수가 국세청 공무원으로 임명되는 상황이어서 국세청의 입김도 대단했다. 한편으로는 대학이라는 조건 때문에 교육부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세무대학 재건의 불씨 타오르다

세무대 재건 10만인 서명운동에 세무대 출신 교수들도 동참했다. 서명을 하고 있는 정규백 전 세무대 교수부장(왼쪽 사진 오른쪽)국세공무원들의 보금자리인 국세청 신청사.

이 때문에 국가공무원 1급인 세무대 학장 자리를 놓고 관계 부처에서 각축을 벌였는데, 1대(최진배)에서 5대(조관행)까지는 재경부, 교육부, 국세청의 고위 공무원들이 번갈아가며 학장직을 맡았다. 그런데 6대(권태원) 이후부터 마지막 19대(현오석)까지는 재경부 출신들이 독식하는 바람에 국세청의 불만이 대단했다. 그러다 IMF 사태가 터지면서 재경부는 구조조정의 희생양으로 세무대를 내세웠고, 국세청은 그 기회에 세무대 자리를 국세청 직속의 국세공무원교육원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세무대는 친아버지(재경부)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키워준 양아버지(국세청)한테서도 미움을 받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는 논리다. 세무대가 정부조직 개편의 일환으로 폐교됐다기보다는 재경부와 국세청의 관할권 싸움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먼저 재경부 쪽 사정. 사실 세무대학의 상급기관인 재경부는 97년에 중견 세무공무원을 양성하고 세무회계 전문인력을 산업계에 배출하기 위해 4년제 세무대학으로 승격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세무대학 설치법 개정안’까지 마련해놓고 있었다. 당시 재경부 장관은 국회에서 “4년제 대학으로의 승격이 필요하다”며 의원들을 상대로 그 타당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세무대학 재건의 불씨 타오르다

안정남 전 국세청장 시절 세무대 폐교 후 국세공무원교육원 개원을 기념해 세운 석비.

그러다 IMF 사태로 ‘시절이 변한’ 98년 3월 세무대학은 4년제로의 승격은커녕 정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그 존폐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도 재경부측은 국회 재정경제위에 출석해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세무대학의 존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국회 역시 정부측이 제출한 ‘세무대학 폐지 법률안’을 부결시킨 바 있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에 재경부는 돌연 태도를 바꾸었고 결국 세무대학은 99년 6월 세무대학설치법 폐지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후 국회에 상정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와 관련, 당시 재경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기획예산위가 주도하는 정부의 구조조정 작업에서 우리 부는 국세심판소와 세무대학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세무대를 버려야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경부는 세무대학을 폐지한 후 89명의 인원을 감축, 구조조정에 성공했다고 자찬하기도 했다.

여기서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세무대학 폐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보여준 국세청의 태도다.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 일부 서울과 수도권 지역 일선 세무서장들이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공동으로 국회에 제출한 ‘세무대학설치법 폐지법률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킬 목적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벌였던 것. 국세청 관계자는 “당시 일선 세무서장이 직접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을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 세무대 폐지법안에 반대하지 말라고 로비했고, 세무조사권을 가진 이들의 힘에 야당 의원들도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국세청이 세무대학을 없애려 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 공무원 중 세무대 출신 20%

“국세청으로서는 세무대 출신들을 대거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세무대학에 대한 기득권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못내 불쾌하게 여겼다. 87년 국세청 출신의 조관행 학장을 끝으로 재경부에 밀려 힘을 제대로 써보지 못했던 국세청은 국세청 휘하의 조직을 만들려고 별러왔고, 99년 세무대 폐지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마침내 국세공무원교육원 설립이라는 꿈을 이룬 것이다. 당시 안정남 청장이 ‘10년간의 숙원사업을 이뤄냈다’고 발언한 것이 무얼 뜻하겠는가. 바로 10년간 재경부에 빼앗겼던 밥그릇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국세청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세무공무원들의 평가다. 국세청은 교육원장직을 1급으로 승격시키려고 했으나 행정자치부의 반대로 결국 3급에 머물고 말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세청은 세무대 폐교 건과 관련해 “국세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는 상태. 국세청 공보 관계자는 “국가정책상 세무대 폐교 결정이 내려진 것이기 때문에 국세청이 이에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으며, 폐교 과정에 국세청이 개입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또 국세공무원교육원 설립과 관련해 교육원 관계자는 “국세공무원교육원은 국세청과 관세청 공무원의 교육과 신규 세무공무원 교육에 이용되고 있다”면서 교육원이 국세청만의 독립적 공간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나 국세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세무대 출신들은 국세청에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국세청 전체 세무공무원 중 20%를 차지하는 세무대 출신들이 마치 ‘군대의 하나회’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는 일부 국세청 관리들의 주장이 결국 세무대가 폐교되는 결정적 배경이 됐다고 여기기 때문.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대 출신들이 직업관과 업무 능력면에서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항이지만, 끈끈한 집단적인 유대가 다른 대학 출신에게 소외감을 유발하는 등 조직 융화 차원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무대 출신 재경부 공무원은 이렇게 항변했다.

세무대학 재건의 불씨 타오르다

세무대 재건 의지를 다지는 세무대학 총동문회 행사(위). 세무대 교정의 상징탑 아래서 고사를 지내고 있는 세무대 동문들.

“세무대 출신 사이에 남다른 유대감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따로 동기록을 만드는 등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 직원들 사이라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사실관계 확인 등도 세무대 출신들 사이에서는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정도 신뢰는 오히려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가능케 하는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 사시나 행시 동기들도 서로 관계를 지속하며 업무 효율성을 높이지 않는가. 세무대 출신에 대해서만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일선 세무서에서 근무하는 세무대 출신 한 공무원은 고위 간부들이 세무대 출신들을 폄하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세무대 출신들은 고교 졸업 후 2년 동안 기숙사에서 합숙하며 투철한 국가관과 직업관을 학습했다. 그래서 세무대 출신의 청렴함과 공무원 의식이 타대학 출신들과 확연히 비교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점은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사항이다. 일반 대학을 나와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에 비해 세무대 출신들의 이직률이 현저히 낮은 것도 확실한 직업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세무관리들 중에서는 예전의 관행대로 윗선에 상납이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세무대 출신들이 똘똘 뭉쳐서 자기들끼리 해먹는’ 것으로 오해해 하나회 조직이니 마피아니 하면서 폄훼하고 있다.”

그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세무대와 같은 전문 교육기관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반 대학에서는 할 수 없는 투철한 직업정신과 청렴성을 기르는 특수대학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무튼 세무대 재건운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거세고 활발해지고 있다. 박옥만 세무사(세무대 1기·전 동문회장)의 말.

“정부가 IMF로 인한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명목으로 특수대학의 폐교를 결정한 곳이 세무대와 간호사관학교다. 그런데 똑같은 이유로 99년 폐교됐던 간호사관학교의 경우 정부는 2001년 들어 사정 변경을 이유로 대학을 존속시키기로 결정하고 그해 가을부터 신입생을 뽑는다고 했다. 이를 보더라도 당시의 세무대 폐교조치가 얼마나 졸속적으로 결정됐는지를 알 수 있다. 세무대 역시 재건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투철한 직업관·청렴성 남달라”

경희대 최명근 교수(법학부) 역시 “지난 20년간 조세전문인 양성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세무대학을 구조조정 일환으로 폐지한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맞아 정의로운 조세행정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세무대학 같은 특수 교육기관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최교수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에서 왜 전문 세무대학을 설립했는지를 노무현 정권의 새 정책담당자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03.01.09 367호 (p50~53)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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